잇단 피살·피랍…조선족 범죄단 연계 가능성

‘중궈따루(中國大陸)’

중국인은 자신의 땅을 대륙이라 부른다. 한국인이 보는 중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대륙은 ‘기회의 땅’으로 비친다. 하지만 기회가 큰 만큼 위험도 크다. 경제적 리스크만 있는게 아니라 종종 목숨을 위협받기도 한다.

최근 사업차 또는 여행차 중국에 갔던 한국인이 잇달아 납치돼 대륙의 위험성을 새삼 환기시키고 있다. 더구나 이들 사건에 재중동포(조선족)들이 연루돼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나아가 상당수 납치사건에 술과 조선족 여성이 직간접으로 끼여든다는 사실은 조직범죄단의 소행임을 시사해 준다.

2월1일 베이징(北京)에서 발생한 조명철(41) 대외경제정책연구위원 피랍사건을 보자. 조씨는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으로 1994년 귀순한 인물.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발표한 사건경위에 따르면 조씨 피랍사건 역시 조선족, 술, 여자라는 3박자가 갖춰져 있다.

조씨는 1일 밤 9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동료인 정모씨와 함께 현대그룹 김모 부장의 안내로 베이징의 ‘경복궁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셨다. 이 자리에서 술시중을 들던 서모씨와 김모(25)씨 등 조선족 여종업원 2명을 알게 됐다.

술자리가 파한 후 현대그룹 김모 부장은 귀가하고 조씨와 정씨는 여종업원 2명의 안내로 ‘2차’를 갔다. 도착한 곳은 한 오피스텔. 이곳에서 조씨와 정씨는 서씨의 오빠를 자처하는 조선족 남자 2명에 의해 납치됐다.


조선족 범죄조직 연루 가능성

이들 납치범은 조씨에게 칼을 들이대며 한국의 가족에게 전화해 몸값 2억5,000만원을 송금하게 하도록 협박했다. 납치범들이 입금을 요구한 계좌는 한국인 한모씨 명의의 한빛은행 강남역 지점이었으며 몸값 전액은 2일 오후 1~2시께 입금됐다.

조씨는 납치범과 함께 돈을 찾는데 필요한 여권을 가지러 숙소인 호텔로 갔다가 1층 로비에서 격투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납치된지 18시간만이었다. 동료 정씨도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했다. 조씨는 탈출직후 피랍사실을 주중 한국대사관에 신고했고 한씨 계좌로 입금됐던 몸값도 조씨의 요청에 따라 지불정지됐다. 납치범 중 체포된 고용재(36), 최향란(23)은 베이징 공안당국에 체포돼 조사받고 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것은 몸값 송금의 경로. 베이징에서 환전상을 하고 있는 한국인 장낙일(32)씨가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조씨 가족이 몸값을 입금한 계좌의 주인인 한씨는 장낙일씨의 어머니다.

장씨가 관리하고 있는 계좌는 조씨에 앞서 중국에서 납치됐던 사업가 김모(41)씨와 재미동포 사업가 홍영태(48)씨의 몸값 전달에도 사용됐다. 경찰은 장씨가 납치사건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후 자진귀국한 장씨를 조사한 결과 아직 납치에 직접 연루됐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환전상 장씨의 주업무는 이른바 ‘환치기’. 이것은 중국내 거주자의 송금 요청을 받은 국내 거주자가 국내 환치기상을 찾아가 원화로 지불하면 이 사실을 연락받은 중국내 환치기상이 인민폐로 해당금액을 수금대상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환치기상은 일정액의 수수료를 챙긴다. 이것은 중국내 유학생이나 국내 조선족, 영세기업이 애용하는 송·수금 수단이다. 따라서 경찰은 장씨가 납치범의 몸값 송금에 이용됐을 뿐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조선족이 조씨를 납치한 뒤 환치기상을 통해 몸값을 송금받으려다 실패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있는척' 한국인이 원인제공 하기도

조씨 사건의 배후에 조선족 조직범죄단이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중국에서 상당수 조선족 조직범죄단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개연성은 있다.

베이징을 무대로 한 조선족 범죄단은 ‘지린파’‘수란파’‘헤이룽장성파’‘우창파’ 등 10여개 파로 조직원은 2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가라오케와 음식점 등에 음식과 술을 공급하며 한국인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왜 조선족이 같은 핏줄인 한국인을 노리는가에 있다. 우선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한국인의 중국 방문은 1998년 48만7,226명에서 지난해 82만4,427명으로 폭증 추세에 있다.

하지만 이것이 범죄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소식통들은 개혁·개방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국내 배금주의와 한국인의 ‘어글리(ugly) 행태’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일부 한국인 졸부들이 조선족 거주지역인 동북3성 등에서 재중동포를 멸시해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는 것이다.

특히 돈을 흔들며 노골적으로 매춘을 요구하는 사례가 잦아 조선족의 자존심을 꺾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불법체류중인 조선족을 착취, 멸시하는 사례가 빈번해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중국에 만연한 배금주의와 한탕주의가 한국인에 대한 조선족의 분노와 어우러져 범죄로 연결된 셈이다.

결국 한국인이 중국에서 같은 동포로부터 피해를 당하는데는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중국을 여행하거나 체류중인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살해사건은 1997년 17건, 98년 28건에서 지난해 8건으로 줄었으나 올들어 두달 사이에 5건이 발생해 다시 느는 추세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배연해·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