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김씨의 김장엄은 보문각(普文閣) 직학사 태명의 손자요, 문학종정 괴산판관(槐山判官) 김익기의 아들인데 벼슬이 동평장사(同平章事) 보문각 직학사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이르렀다. 고려가 망하자 스님이 되었으니 승명은 낭휘이며 나이 49세에 피살되었다.

아들 김둔은 무등산에 들어가 은거하다 명나라로 망명했는데 은의 증손자 유자는 명나라 예부시랑이 되었다. 은의 아우 장은 고려가 망한 후 스님이 되니 법명은 무본선이며 호는 화산대사다. 김명국은 전라판서로 있더니 고려가 망한후 은퇴하였다.

김휴는 벼슬이 명경박사 겸 승지 국자제주를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자 은퇴하니 장사에 유배되었다. 김저는 대호군 참지정사로 지냈고 당시 폐위된 우왕의 지시를 받고 정득후 및 곽충보와 더불어 이성계를 살해하려 했으나 곽충보가 이성계에게 밀고하여 순국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김만희는 고려가 망한후 제주로 유배되었고 좌정승공파 중시조가 되었다. 김탁은 벼슬이 문하시랑 보문각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으며 이성계의 세력이 커지자 나주에 은퇴하니 그 마을을 시랑동이라 보른다.

김불비는 호가 신묵제이며 영천군사를 거쳐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더니 고려가 망하므로 벼슬하지 않았다. 조선조때 문과 급제자는 1백30여명이다. 김조는 예조판서를 지내고 시호는 공간이다. 김용은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김계희는 한성부윤의 벼슬을 지냈다. 김자정은 연산군때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김극검은 황해감사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

김영견은 이조참판, 김영정은 전라감사(全羅監司) 대사간(大司諫) 대사헌(大司憲) 벼슬을 지냈다. 김영정은 연산군때 충신이며 시호는 안경(安儆)이다. 김일손(金馹孫)은 호가 탁영(濯纓)이며 연산군때 사관(史官)이며 충신이고 시호는 문민, 이조판서에 추증(追贈:죽은 뒤에 받음)되었다.

김익수는 중종때 문과급제하여 공조판서를 지냈다. 김대유(金大有)는 탁영 김일손의 조카이며 그는 정언 벼슬에 이르고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개혁정치를 하려다가 실패하여 청도에 은퇴하였고 호는 삼족당(三足堂)이다. 조선 초기 한국의 대표적인 효자이며 자는 절효공 김극일이다. 김연광은 상례 김이상의 아들이며 회양부사로 있던 중 임지왜란을 당하여 왜적에게 파살되었다. 김현성의 벼슬은 동돈녕(同敦寧)을 지냈고 호는 남창이며 명필로 유명하였다.

김흥복은 대사간 감사로 지냈다. 김우항은 청송부사 홍경의 아들이며 벼슬이 우의정 영중부사로 이르었고 호는 갑봉(甲峰), 시호는 충정이다. 갑봉 정승은 당파 싸움에 끼지 않는 명정승이다. 김경서는 본명 응서이며 임진왜란때 명장이다.

숭정대부(崇政大夫) 평안병사 부원수에 이르렸다. 평양 출신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이 청나라에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 절의를 지켜 시절하니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양의이다. 김계금(金係錦)은 사헌부지평 의성현령을 지냈고 단종 충신으로서 낙향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김세준은 승지로 있던 중 연산군에게 극간하여 유배된 충신이며 효자로도 유명하다. 김호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사육신의 변을 듣고 자살하였다. 김경추는 광해군(光海君)때 학자이며 호는 송정이다.

김호인은 문종때 호조참의를 지냈으며 세조가 단종을 죽이자 낙향하였다. 김수연은 칠도병사 중추원 부사를 지냈고 단종 피살후 자결하였다. 김우윤은 나주목사를 지냈고 임진왜란때 창의하였으며 정유재란때 모친을 모시고 피난했다가 파살되었다. 김인후의 문인이다.

김태경은 중종때 예조판서이며 명종때 별세하니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여준은 부사 우의 아들이며 금위천총을 지냈으며 봉림대군을 모시고 심양에 갔고 천하장사로서 벼슬이 황해감사 순찰사에 이르었다. 김완은 영암 출신이며 벼슬이 황해병사에 이르렀고 학성군에 봉해졌다. 이괄의 난을 평정한 명장이며 시호는 양무다.

김극조는 이성 현감을 지냈고 신장이 9척이며 3백근이나 되는 활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학천군에 봉해졌다. 김여수는 완의 아들이며 해성군에 봉해졌으며 벼슬은 함경남도 병사로 지냈다. 김일준은 담양 부사를 지냈고 그 공덕비가 순창, 담양, 흥해 등지에서 섰다. 김예직은 포도대장, 삼도 수군통제사를 거쳐 정헌대부에 이르렸다. 시호는 의헌이다. 김홍도는 정조 무렵의 유명한 화가다.

김대건(金大建)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며 나이 25세때 천주교 신부로서 처형(處形)되었다. 김재룡은 순조때 병조판서를 지냈다. 김봉은 임진왜란때 공신으로 영선군에 봉해졌으며 광해군때 인목대비 폐비에 반대하다가 자결하였다. 김중상은 조선 초기의 예조판서로서 이부상서 감의 후손이다. 김태희가 쓴 ‘가락의 역사와 왕손’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창의한 의병장과 충신을 3백여명을 배출했다.

김해 김씨 현재 인물은 내각수반을 지낸 김현철, 허정과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전총리 등이 우뚝하며 국회의원이 30여명에 달하는 대씨족으로 김씨 성씨를 가진 사람이 6백여만명이며 이씨가 5백여만, 박씨는 4백여만명이다.

* 가락 중앙종친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공덕동 6-6호에 있으며 전화는 (02)714-7459이다. 숭선정은 (0525)332-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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