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의 원흉은 항상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 빌미를 제공하는 재료는 지역편중 인사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은 37년만에 이뤄진 여야 정권교체이자 5·16 쿠데타이후 지속돼온 권력의 뿌리가 영남에서 호남으로 넘어간 역사적 사건이었다.

권력 중심축의 이동은 고위 공직자 및 핵심 요직의 인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야당은 ‘호남 편중인사’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고 여당은 ‘균형회복 과정’이라고 방어하고 있다. 과연 누가 맞는 이야기일까.

장관급 이상부터 살펴보자. 1월13일 새로 구성된 박태준 내각의 부처 장관과 장관급은 모두 28명. 이중 호남 출신은 이정빈 외교, 김정길 법무, 최인기 행자, 박지원 문화, 김성훈 농림, 진념 기획예산처 장관과 강기원 여성특위위원장,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이용근 금감위원장, 전철환 한국은행장 등 모두 10명(35.7%)으로 가장 많다.

반면 영남 출신은 박태준 국무총리, 박재규 통일, 김영호 산자, 차흥봉 복지부 장관과 배무기 중앙노동위원장, 최재욱 국무조정실장, 박순용 검찰총장 등 6명으로 21.4%를 차지하고 서울이 4명(서정욱 과기, 김명자 환경, 김윤기 건교부장관, 이종남 감사원장), 충청(조성태 국방, 이항규 해양)과 이북(임동원 국정원장, 박익수 국가과학위원장)이 각각 2명, 경기(안병엽 정통) 강원(최선정 노동) 각 1명 등이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은 중국 상하이, 문용린 교육부장관은 만주 출신이다. 이같은 분포는 노태우 정부 당시 영남 출신 국무위원이 50%에 육박하고 차관급 이상 정무직의 60%를 넘었던 것에 비춰보면 그다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차관급이상 호남 대약진

차관급이상 정무직으로 확대하면 2월15일 현재 호남이 33명(34%)인 반면 영남이 20명(20.6%)으로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8년 2월24일 현재 호남 10명(9.7%) 영남 43명(41.7%)에 비해 대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3급 이상 일반직 고위 공무원의 경우 1998년 2월 호남이 318명(21%), 영남이 569명(37.6%)에서 2000년 2월 현재 호남은 368명(24.9%), 영남은 485명(32.8%)으로 영남 출신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학계에서는 인사편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구편차와 권력핵심 요직 등 뿐만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수립후 1공화국때는 국무위원중 서울(28.4%)과 경기(9.2%) 등 수도권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2공화국때는 경북이 23.7%로 서울(19.1%)을 앞질렀으나 전남과 전북이 각각 14%로 인사상 지역편중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때 영남권 인사가 갑자기 많아지더니 국무위원의 30%를 넘기 시작했고 전두환 정권때는 차관급 이상중 영남 출신이 43.6%인 반면 호남은 9.6%에 불과해 지역차별이 두드러졌고 노태우 정권에는 차관급 이상 공무원중 영남 출신이 과반수를 넘어 60%에 이르러 불균형은 극심해졌다.

이같은 심한 차별을 감안한다면 김대중 정부 출범후 고위 공직자의 지역별 분포가 편중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여당의 주장처럼 지금까지 잘못된 편중인사를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있다.

사직당국의 경우 검사장급 이상 검사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8년 2월 호남 출신이 8명(20.5%)에서 올해 2월 11명(29.7%)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영남 출신이 16명으로 43.3%를 차지하고 있고 경찰의 경무관급 이상도 올해 2월 기준으로 영남 출신이 30명(44.8%)으로 호남 출신 21명(27.2%)보다 많다.


권력핵심요직 호남출신 대거진출

그러나 현정부의 인사에서 지역색 시비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청와대 비서실과 국정원, 국세청, 검찰, 경찰, 군 등 권력의 핵심 요직은 물론 그동안 영남 출신이 장악해온 각 부처의 노른 자위 자리에는 호남 출신이 눈에 띄게 늘어나 영남 출신의 불만을 사왔다.

청와대 비서실의 경우 비서실장을 비롯해 9명의 수석중 정무, 민정, 경제, 복지노동, 공보 등 6명이 호남 출신이다. 검찰의 경우 핵심라인인 총장과 대검차장, 법부부 검찰국장, 대검 공안부장과 중수부장, 서울지검장중 대검차장과 중수부장, 서울지검장이 호남 출신이다.

경찰 고위 인사는 다른 권력부서에 비해 비교적 지역색이 뚜렷하지 않지만 청장과 핵심 요직인 정보국장, 기획정보심의관, 사직동팀장이 호남으로 채워졌다. 올해 1월 총경급 인사에서는 38명중 37%인 14명이 호남 출신인 것으로 드러나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국내담당인 2차장과 기조실장, 대공정책실장, 공보보좌관이 호남 출신이며 국세청은 청장과 서울청장, 중부청장, 조사국장 등 핵심라인이 호남 출신이다.

국방부의 경우 각군 총장들은 지역안배가 철저히 지켜져 능력있는 사람이 ‘역차별’을 받는 사례가 나오기도 하지만 차기 육군총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3군사령관과 국군기무사령관은 호남 출신으로 채워졌으며 장성진급에서도 호남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정부 산하단체장과 공기업 사장, 임원 등 전통적으로 낙하산 인사가 심했던 자리에도 눈에 띄게 호남 출신이 늘어났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같은 현상은 권력 역학상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카터 대통령의 취임 이후 등장한 ‘조지아 마피아’를 비롯해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마피아’, 클린턴 대통령의 ‘아칸소의 친구들’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듯이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이 중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소위 ‘정치적 임명직’(Political Appointee)의 경우에 국한한다. 오랫동안 함께 일하면서 호흡이 잘맞고 능력이 인정된 사람만 선별될 뿐 단지 같은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직업공무원까지 덕을 보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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