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들이 권익찾기에 나서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장하성(47·고려대경영대 교수) 위원장이 1997년 1월 처음으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일 때 주위에서는 대부분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만 3년을 넘긴 장위원장의 활동은 이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골리앗으로 비유되던 재벌기업도 이제 장위원장이 주도하는 소액주주운동을 무시할 수 없게 됐고 정부도 소액주주의 권한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같은 활약으로 장위원장은 1998년 아시아판 비즈니스위크가 뽑은 ‘아시아를 변화시키는 인물 50’에 포함됐다. 경제민주화위원회가 올해 타겟으로 삼은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 SK텔레콤의 주총을 앞두고 결전의지를 다지고 있는 장위원장을 만나보았다.


-LG데이콤이 사외이사제를 1년 앞당겨 도입하고 그중 2명은 참여연대에서 추천하는 인사를 받아들이기로 하는 등 올해는 출발이 좋습니다.

“데이콤이 나스닥 상장을 겨냥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데이콤의 대주주인 LG그룹의 투명경영 의지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특히 구본무회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올해초부터 본격적으로 데이콤측과 협상에 들어갔는데 이 정도 성과가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데이콤은 이사진의 절반을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그중 한명은 우리사주 조합에서 추천한 인사를 선임키로 했는데 앞으로 사원이 회사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한국식 모델이 만들어진 겁니다. 소액주주운동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다른 대기업에게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그러길 바라는데 아직까지는 부정적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총에서 저희가 13시간이 넘게 싸웠고 그후에도 계속해서 협상을 했는데 이번에도 간교하게 뒷통수를 쳤습니다. 직원들은 정리해고를 하면서 비서실 출신에게 무려 900억원어치의 스톡옵션을 주겠다고 하질 안나, 사외이사로 서울 국세청장 출신을 임용하질 안나….

지금까지 무수히 삼성측 인사들과 만나 설득을 하면서도 단 한차례도 화를 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삼성전자는 더이상 말로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져 올해 주총에는 참석하지 않고 장부열람권 등 법이 보장하는 권리행사에 돌입할 겁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는 아직까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저는 밝게 보고 있습니다. 현대의 최고경영자가 투명한 경영이 아니면 살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삼성처럼 간교하게 대응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인 정몽준의원을 믿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정의원에게 치명타가 될 자료도 이미 확보해 놓았습니다.”


-이제 재벌의 생각도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 간판기업이라는 삼성과 현대는 아직도 한밤중이예요. 매일매일 좌절감을 느낍니다. 저희 팀이 이 운동을 시작할 때 다짐했던 것이 있습니다. 절차와 법을 지키고 절대로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겠다고요. 단 한차례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 때 길거리에 나가 시위를 한 것말고는 지켰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솔직히 역사에 왜 혁명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소액주주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해외에서 공부한 학자라면 우리나라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엉망인지는 다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다만 실천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인데, 마침 경기고 2년 후배인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이 이 운동을 맡아달라는 몇차례 권유를 했고 팀멤버도 너무 좋아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뭘 모르고 시작한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안했을거예요.(웃음)”


-주총준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합니까.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들과 참여연대 실무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자료도 준비하고 전략을 짭니다. 타겟으로 삼은 기업별로 팀을 꾸리는데 구성원이 몇 명인지는 전략상의 이유로 공개할 수 없습니다. 철저히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춰서 사전에 우리의 요구를 통보해주고 법절차에 따릅니다.

활동비용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이 많은데 전문가들은 모두 무료봉사하고 있고 참여연대와 별도로 후원금을 받아 자료수집, 소송비용 등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내는지도 확인이 돼야 받습니다. 한번은 대기업에 너무 시달린 중소기업 사장이 우리한테 알리지도 않고 돈을 보내 소동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누군지 추적해들어가니까 그때서야 연락을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는 ‘좋은 일에 쓰라’고 하더군요. 운동을 시작할 때는 수십만원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월 350만원 정도 들어옵니다.”


-이 일 하시다 보면 기업의 로비도 만만치 않을텐데 곤란한 경우는 없었습니까.

“처음에는 회유도 있고 협박도 있었는데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지금은 없어요. 한때 가족들과 서먹서먹해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이해해줍니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입니까.

“기업이 투명하게 바뀌도록 제도개선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국민에게 소액주주운동의 필요성을 알리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민간단체가 계속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도 아니고 실질적으로도 무리입니다. 시장에서 해야지요.

그럴려면 기관투자가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우리나라 3대 투신은 전부 재벌계열사여서 그같은 역할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지난해 한 외국기관에서 3억달러의 펀드를 만들테니까 그 돈으로 주식을 매입해서 운동을 해보라는 제의가 있었는데 고심끝에 거부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우리나라 소액주주들이 권익찾기 운동을 하도록 시스템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위원장은 대학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바 있는 운동권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에만 매달려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에서 ‘시장구조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휴스턴대학에서 3년동안 강의를 했다.

국내에 돌아와서 주식시세표의 선물지수인 ‘kospi 200’을 디자인했으며 최근에는 코스닥시장의 새로운 지표개발을 의뢰받는 등 이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전문가다.

장영식 전 한전사장과 민주당 장재식의원이 숙부이고 동생 장하원 박사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하고 있으며 부인도 이대 교수로 재직하는 등 학자 집안이다. 장위원장은 그러나 가족들은 거론하지 말아달라면서 출생지를 묻는 질문에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만은 분명하다”고 웃어넘겼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이형남·사진부 기자


송용회·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