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계륵’이란 말이 어울린다. 삼키자니 껄끄럽고 버리자니 안타까운 그런 상황 말이다. 16명의 세계적 고수를 참가시킨다면서 한국에 배당된 출전권이 고작 한장이라니…

참가 선수의 면면은 이렇다. 일본기원 소속으로는 고바야시, 하시모토, 다케미야, 후지사와, 가토, 조치훈, 왕밍완, 린하이펑, 왕리청, 마이클 레드먼드 등 10명이고 중국기원 소속이 네웨이핑, 마샤오춘, 류샤오광, 장주쥬 등 4명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조훈현과 호주의 우숭썽.

일본기원 소속이 많은 건 아무래도 다국적 기사들이 포진한 현실적인 측면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속에 대만 출신도 3명이나 포함되었는데 한국출신이 고작 한 명이라면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서봉수는 왜 빠졌는지 그저 서글플 뿐이었다. 호주나 미국 대표는 국제전이란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나마 인정한다고 해도 하시모토나 후지사와, 왕밍완 류샤오광, 장주쥬 등은 한국의 서봉수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멤버들. 한국기원이 발끈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잉창치 기금에서는 일본기원의 조치훈이 한국인이니 한국대표는 두명이라는 주장을 폈고 그것은 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여서 한국기원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하고 말았다. 또 주최측에서는 굳이 국적이나 기원 소속은 의미가 없고 개인적인 초청대회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어 그 점까지 시비를 거는 건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꼬우면 참가 안 하면 그만이었다. 조훈현도 그 문제로 몹시 곤란한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라도 충분히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싶지만 그는 엄연히 한국의 대표기사. 따라서 자기 뜻대로 출전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한국은 참가하기로 방침을 굳힌다. 계륵을 삼키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국제적으로 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위상을 이번 기회에 제고시키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1988년 8월21일. 대망의 잉창치배가 막을 올렸다. 한국선수단은 나흘전인 17일 출국해 일본에서 조치훈과 합류, 베이징(北京)으로 떠났다.

조훈현은 1회전인 16강전에서 대만출신 왕밍완에게 흑 불계승을 거두고 8강에 올라 일본의 간판스타 고바야시 고이치를 흑으로 1집반 차이로 꺾었다. 파죽지세의 4강 안착이었다. 1회전에서 왕밍완을 이긴 것은 ‘기량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고바야시에게 이긴 건 ‘저력’이었다. 6개월 전에 벌어졌던 후지쓰배에서 조훈현은 고바야시에게 석패한 바 있어 쉽지 않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조훈현이 고바야시를 이기자 그가 우승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다.

중국의 반달곰 네웨이핑, 대만의 거장 린하이펑, 일본의 노호 후지사와, 한국의 간판스타 조훈현. 4강의 면면은 희한하게도 한·중·일·대만의 대표선수가 한명씩 올라와 본의 아니게 국가 대항전 모양이 되고 말았다.

네웨이핑은 8강에서 조치훈을 이긴 게 컸고, 후지사와는 중국의 신예 마샤오춘과 일본의 가토를 꺾어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린하이펑은 일본의 하시모토, 중국의 장주쥬를 이겨 비교적 대진운이 좋았다는 느낌이다. 4강전은 3판2승제로 진행되는데 조훈현은 대만의 거장 린하이펑과 만났고 네웨이핑은 후지사와와 결승진출을 위한 한판 승부를 벌였다.

준결승 3번기는 11월20,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벌어졌다. 조훈현은 제1국에서 220수만에 백 불계승, 제2국에서는 284수만에 흑 5집승을 거뒀다.

중국의 간판 네웨이핑은 후지사와에게 진땀승을 거뒀다. 2:0으로 이기긴 했지만 두 대국 다 1집반승을 거두어 운이 따라준 셈이었다.


<뉴스와 화제>

· 서봉수 '루이 열풍' 잠재우다

순 국산 서봉수 9단이 토종바둑의 자존심을 곧추 세우며 중국의 철녀 루이나이웨이를 꺾었다. 3월15일 조선호텔에서 인터넷 토탈 솔루션업체인 (주)넥스터 정보기술의 서비스 기념으로 벌어진 대국에서 서봉수는 루이의 거친 공격을 선방하며 174수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두었다.

최근 이창호 조훈현 등 국내 정상기사가 연속으로 루이에게 패배하여 ‘루이열풍’바둑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서봉수가 관록의 승리를 거둬 다소나마 자존심을 세웠다. 서봉수는 루이와의 역대 전적에서 2승1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 농심신라면배 6일 연속 생중계

한·중·일 ‘바둑삼국지’인 제1회 농심 신라면배 제3라운드가 6일 연속 TV로 생중계된다. 현재 한국출신 3명(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일본 2명(조선진 야마다) 중국 2명(마샤오춘 창하오)이 남아있는 가운데 3월22일부터 열리는 제3라운드에서 최종 우승국이 가려지게 된다. 채널46 바둑TV에서는 22일부터 6일동안 오후 2시부터 생중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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