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4일자 인사를) 발표한 것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또 국내적으로 다행이기 때문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경영자협의회 의장을 정몽헌 회장 단독으로 한다는 것을 여러분께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중요한 일은 다 저와 의논할 것이니까 아무 걱정 안해도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문장도 잘되지 않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이 녹음메시지 하나로 보름이상 뒤죽박죽 양상으로 전개돼온 현대가(家)의 후계다툼은 끝났다. 이 과정에서 정 명예회장은 다시 한번 왕회장의 위세를 과시했고 몽구·몽헌 형제는 상처에 버금가는 나름의 소득을 거둔 듯하다.


재벌개혁 필요성 보여준‘현대판 코미디’

그러나 시작은 지금부터다. 현대의 삼부자가 연출한 블랙코미디는 재벌개혁이 왜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하는지를 웅변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황제경영, 주주 무시, 최고경영자를 손발처럼 부리기, 머슴같은 참모의 행태, 대다수 임직원의 사기저하 등등. 아날로그 시대의 경영구태를 생중계하듯 했던 이번 사태는 앞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부채구조 조정 등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되씹어야할 반면교사로서 언급될 것같다.

악다구니가 판치고 도처에 ‘살의(殺意)’가 번뜩이는 총선정국이 3월28일부터 시작된 후보등록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지난주 내내 국가채무 논란, 국부유출 시비, 관치금융 공방 등 정치권의 소모적 대결에 휘말려 피로감을 더해온 우리 경제로선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니다. 표와 의석만 의식한 여야의 악다구니 싸움이 경제를 짓누르면서 주요 경제지표들은 벌써부터 추위를 타고 있다.

지난주 코스닥시장은 벤처기업의 원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현금 흐름에 대한 우려의 가시화로 나스닥 지수와의 동조화 현상이 깨지고 그 결과 지수도 230선을 간신히 유지했다. 이번 주에도 정보통신주의 성장성에 대한 의심과 2조원대의 유·무상증자 물량으로 여전히 조정국면을 면치못할 것같다.

‘외국인의, 삼성전자에 의한, 외국인을 위한 장세였다’는 거래소의 경우 이번 주 다시 900대에 몰려있는 매물벽을 뛰어넘기 위한 공방을 펼칠 전망이나 주식형 수익증권의 환매부담 등으로 시장에너지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애널리스트들은 900선 돌파가 실패할 경우 실망매물이 쏟아져나오면서 총선에 따른 심리적 불안까지 겹쳐 주가가 급등락하는 혼조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올들어 개인과 기관이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를 각각 2조3,000억원, 1조3,000억원 어치를 팔고 이를 모두 외국인이 받아간 것으로 밝혀져 또다른 국부유출 논란을 빚고 있다.


2차금융구조조정 칼바람 부나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 말 28개월만의 최저치인 1108.70원까지 떨어져 외환당국과 수출업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월말 기업체의 네고 물량과 하루 2억달러를 넘나드는 외국인 주식자금 유입 때문에 당분간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약 2억달러 가량의 대우관련 수요와 월초 수입대금 결제 등의 완충요인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엔화가 덩달아 강세인 것이 수출전선에 그나마 위안이다.

바닥 주가와 내외 경영갈등 등으로 결국 2명의 시중은행장이 물러나자 2차 금융구조 조정을 둘러싼 괴담(怪談)이 무성하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권에 또다른 도덕적 해이가 판치고 있다며 총선이후 강도높은 조치가 있을 것을 시사해 주목된다.

사퇴한 이갑현 행장의 후임 인선과 관련, 외환은행 노조관계자가 “새 은행장의 출신과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가 은행을 살릴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을 갖추었느냐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목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보수적인 은행권에까지 확산되는 것은 확실히 새로운 양상이다.

이유식·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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