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으로부터의 뉴스

<신으로부터의 뉴스>(Des Nouvelles du Bon Dieu)(18세 이상 이용가, 스타맥스)는 “섹스로 신과 대화를 한다”는 다소 선정적인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선전을 위한 과장이고, 나의 실존을 찾으려는 엉뚱한 인물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아이디어가 신선한 프랑스 코미디일 뿐이다.

옷만 벗었다 하면 성적 코드를 갖다부치는 제작사를 탓하기보다, 이런 왜곡·과장 선전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관객이 먼저 야단을 맞아야 한다. <거짓말>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그런 것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쑥 빠지고 주변 이야기로 언론의 지면이 더럽혀지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며 살아가는데 길이 든 대중에게 편승하는 상혼이 이제 지겨울 때도 되었건만.

<신으로부터의 뉴스> 감독은 디디에 르 뻬쉐르고, 1995년도 작품이다. 프랑스 코미디는 국내 반응이 대개 썰렁한데 가장 큰 원인은 자막 번역의 부실 내지 불가능에 있지 않을까. 영어 코미디는 그래도 워낙 들은 풍월이 있어서 번역을 안해준 부분도 대충 눈치로 감을 잡을 수 있는데, 프랑스어는 속수무책이다.

거기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유머 감각도 그렇고. 묵직하다고 할 수 있는 주제를 건드리고 가는 <신으로…>도 마찬가지다. 대사는 물론 영화 속에 인용된 소설 번역이 정확한지 의심스럽고, 따라서 내가 이해한 영화 내용이 맞는지 여간 궁금한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앞에 언급한대로 아이디어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미디 영화에 있어서 아이디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므로. 이런 영화를 볼 때 “아, 내가 왜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내지 못했을까”라며 와신상담하는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많았으면 한다.

작가 알렉산드르 바타비아가 자신이 쓴 마지막 소설 <신의 계시>의 주인공처럼 자동차를 탄 채 벽에 돌진하여 자살한다. “창조주와 같은 나를 보고 사람들은 작가라 한다. 삶이 없다면 죽음도 없다”는 선동적인 글을 써온 작가의 작품에 빠져있던 노스와 에반젤라(마리 트랭티냥)는 현실과 소설 내용을 혼동하며 택시를 몰고 다니면서 행인을 치어 보기도 한다. 현재 삶이 허구라면 왜 신은 이런 삶을 준 것일까.

고민하던 두 사람은 나의 존재를 가능케 한 작자를 만나기 위해 성당을 찾는다. 18세기 벽화를 수리 중이던 신부 지바고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아무런 응답도 않는 신에게 지쳐 이들과 함께 신의 답을 구하러 나선다. 작가의 미망인 카레리나(마리아 드 메데이로스)는 자살하려던 강변에서 이들을 만나 또한 동행이 된다.

신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신을 자극하는 것이다. 착실한 노신부를 죽여보지만 신은 여전히 침묵한다. 신자가 죽으면 당연히 신의 곁으로 갈테니 이번에는 비신도를 골라보자.

자살하거나 살해당하는 사람도 안되겠고. 이렇게 이들의 생각은 발전을 거듭하여 죽음에 이르는 것과 거의 맞먹는다는 섹스를 체험해보기로 한다. 물론 아직 총각인 신부 지바고가 실험 대상으로 선정된다.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한 후 납치한 여자 경찰과 관계를 맺는 신부, 그만 황홀경에 빠져 30년 금욕 생활이 억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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