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 도구는 사회의 발달 단계를 규명하는 주요한 잣대가 된다. 인류는 생사를 결정지었던 석기시대의 돌도구에서 출발하여 점차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더욱 세련된 도구를 창출해냈다. 그것이 돌이든 강철이든 도구는 문명을 구현하고 미래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면 과연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의 도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얼마전 5마리 복제돼지의 탄생과 이로 인한 동물 장기의 인간활용 시대에 대한 기사를 우리는 접했다. 10년 후에 이것이 실용화 되면 미국과 유럽의 약 12만명의 환자에게 더 없는 생명수가 된다. 그 이전에도 복제양 탄생, 유전자 조작 농축산물, 에이즈 백신 개발, 인간 유전자지도 해독 등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생명공학의 발달은 예상을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이 인간 게놈(Genome)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를 전세계 과학자에게 완전히 공개하기로 합의한 사실은 유전자 도구시대의 실질적인 도래를 예견하게 하는 사건이다.

현재의 인터넷 맹위는 어쩌면 미래 생명과학의 영향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유전자는 21세기 사회가 지식을 기반으로 창출한 강력한 ‘파워툴’(Power Tool)중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말이다. 향후 1-2년 내에 게놈 지도가 완성되면 인간 생활에 미칠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오늘과 같은 ‘전(前)게놈 사회’와 1-2년 이후의 ‘게놈 사회’의 차이는 핵무기 발명 전후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하게 다를 수 있다. 불치의 질병을 치유하고 정신적 결함까지도 치유하며 새로운 식품과 신약을 발명하는 도구, 생명연장의 도구, 바로 유전자 도구는 지구상의 생명체에 대한 혁명적인 재설계를 의미한다.

나아가 유전자는 컴퓨터와 융합하여 DNA 컴퓨터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바이오칩이 그 좋은 예다. “칩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라는 생태 컴퓨터 설계자들의 말이 점점 익숙해져 갈 것이다.

인류가 우주탐험을 위해 모든 영역의 과학자들의 힘을 합쳐야 했듯이 이제는 유전공학자, 생태물리학자, 그리고 생태분자 설계전문가들이 컴퓨터 과학자와 수학자들과 함께 합동으로 생명현상을 모방하는 컴퓨터의 발명에 힘을 합치고 있다.

영국의 리딩(Reading)대학 인공두뇌학 교수인 케진 워윅(Kevin Warwick)박사는 바이오칩 이식 트랜스시버(transceiver:송수신 장치) 공유장치의 개발에 성공했다. ‘600만불의 사나이’가 실제로 가능해지고 있다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동물 장기에서 나아가 유기물질로 만들어진 이식조직, 주사로 주입되는 마이크로 프로세서, 생체 이식, 그리고 DNA 칩 등은 번창하는 산업이 될 것이다.

치매 환자의 기억을 향상시키는 것이나 팔다리를 대체하고 신경을 갱신시키며 신장이나 안구를 대체하는데도 쓰일 것이다. 인간의 지력과 언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두뇌이식과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을 발달시키는 이식도 가능해질 것이다.

항상 강력한 도구는 새로운 문명과 산업을 창조하지만 동시에 탐욕과 파괴의 도구로 전락한 예를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유전자 도구의 사용에 대한 드높은 경계의 목소리는 이러한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과학자의 불타는 탐구열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21세기 파워툴, 유전자의 예리한 칼자루를 쥐는 자가 누구일지 사뭇 주시할 일이다.

이원근·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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