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우 흩날릴 적에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도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도다’

매창 이계생(1573~1610)은 전남 부안의 명기였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을 사모하였던 그는 37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의 아름다움과 재주를 안타깝게 여겼던 부안현의 관리들은 그가 죽은지 58년이 지난 뒤 작품집을 엮었다. 57편에 달하는 ‘매창집’이다. 구구절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애달픔을 함께 녹여내고 있다.

지금 부안군 변산반도에는 매창의 연정과 같은 따스한 봄기운이 감돈다. 예로부터 ‘춘변산 추내장’이라 했다. 봄에는 변산이, 가을에는 내장산이 가장 아름답다는 이야기이다. ‘춘변산’의 핵심에 있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1,400년 세월의 무게를 이고 있는 고찰 내소사(來蘇寺)이다.

내소사는 633년(백제 무왕 34년) 혜구두타(두타란 걸식으로 산야를 다니며 수행하는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원래 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으나 소래사는 불에 타 없어지고 소소래사가 남아 현재의 내소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독특한 절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7세기에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이 절을 찾아 시주했기 때문에 ‘그가 왔었다(來蘇)’는 의미의 이름이 생겼다고 하나 이를 확인시켜 줄만한 자료는 없다.

내소사의 아름다움은 나무에서 나온다. 나무의 모습, 나무의 크기, 나무의 색, 나무의 꽃이 찾는 이들에게 진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일주문을 들어서서 천왕문까지 이르는 약 300㎙의 길은 나무의 모습과 크기가 압도적인 곳. 길이라기 보다는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 터널이다. 시원하게 뻗어 올라간 나무의 끝과 뿜어져 나오는 강한 향기. 속세의 홍진을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전나무 터널이 끝날 때 쯤에는 넓은 광장에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조금 있으면 매화가, 4월이면 벚꽃이 하얀 꽃잎을 흩날린다.

천왕문을 지나면 오롯한 전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야트막한 축대와 계단이 이어지다가 정면에 보물 제291호인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온다.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는 진한 갈색의 나무기둥과 문살들에서 제 색깔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대웅보전은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맞추는 방법으로 지어졌다. 중건 당시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일을 맡은 도편수가 3년동안 목침만하게 나무만 깎았다. 도대체 절을 지을 생각이 있는건지 궁금해하던 사미승이 나무토막 하나를 감추었다. 나무토막의 수를 몇차례나 세던 도편수는 주지스님을 찾아가 “절을 지을 재주가 못되니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사미승은 놀라 나무토막을 내놓았고 중창불사는 계속됐다.

그러나 도편수는 감추었던 나무토막을 부정하다고 여겨 끝내 쓰지 않았고 지금도 대웅보전 오른쪽 천장에 목침 크기만한 빈자리가 있다.

절이 품고 있는 다정한 이야기들. 큰 규모의 대찰은 아니지만 봄빛이 가득한 부처의 세계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내변산의 입구에 들어서 있는 개암사도 들러볼만 하다. 한창 중창불사가 진행되고 있어 조금 소란스럽지만 울금바위의 호위를 받고 우뚝 솟아있는 대웅보전, 절 앞 개암저수지의 맑은 물빛이 정답다.

춘변산은 매창의 시처럼 따스하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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