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구약성경 욥기 8장7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발닷이라는 사람이 하느님의 벌을 받아 재산을 잃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피폐해진 욥에게 “진심으로 회개하고 반성한다면 비록 지금은 고단하겠지만 나중에는 잘 될 것”이라고 충고하는 대목이다.

창업주인 샘 월튼(Sam Walton)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일까. 1945년 미국 아칸소주의 조그만 잡화점에서 시작한 월마트(Wal-Mart)는 ‘시작은 미미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다’는 성경 구절을 확실히 현실화시켰다. 1962년 아칸소주 로저스에서 최초로 ‘월마트’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월마트 체인은 불과 10년도 안된 1960년대말에는 점포수를 15개로 늘렸으며 1980년대에는 당시 업계의 최강자였던 ‘K마트’를 제압하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미국 4번재 매출액, 세계 최다 고용기업

2000년 3월 현재 월마트의 면면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우선 상상을 초월하는 매출액. 1999년 한해동안 월마트는 1,376억달러(약 165조원)의 매출액을 올렸는데 이는 2000년 한국 정부예산(92조원)의 1.79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독일, 한국 등 세계 각국에 3,633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총 95만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월마트는 지난해 44억3,000만달러(약 4조8,7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에 따라 매출액 측면에서 월마트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기업이며 고용 측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다.

그렇다면 월마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히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때문이었을까. 물론 대답은 “아니오”다. 1980년대 이전에는 미국에서도 지방의 소규모 할인점 체인에 불과했던 월마트가 미국의 유통시장을 석권하고 세계 시장을 넘보고 있는 배경에는 경쟁자를 압도하는 저가격 정책, 자체 인공위성을 보유할 정도로 탁월한 첨단 물류시스템, 종업원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선진적 인사관리 등 탁월한 경영전략 때문이었다.

우선 ‘첨단 물류시스템’. 월마트는 “상품 공급 시스템의 지원이 없었다면 월마트의 성공은 불가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류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실제로 월마트의 상품 공급 시스템은 물류의 핵인 유통센터를 중심으로 구축되며, 유통센터는 월마트 출점 전략의 기본이다. 월마트는 전통적으로 주요 출점예정 상권에 유통센터를 먼저 설립해 물류기반을 구축하고 그 다음에 반경 300㎞내에 점포를 집중 출점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첨단 물류 시스템 구축, 이익분배 제도도

월마트의 유통센터는 1970년 1호점이 개설된 이후 1999년말 현재 미국 전역에 50여개소 가까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QR(판매시점정보)시스템, ED(전자데이터 교환)시스템, 자동 입·출하 검품시스템 등 전세계 3,633개 월마트 점포의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읽는 순간, 상품의 매출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같은 정보는 상품공급자나 물류센터에 곧바로 전달해 월마트가 항상 최적의 재고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흔히 ‘Every Day Low Price’로 불리는 월마트 특유의 저가판매 전략도 성공비결의 하나다. 월마트는 양질의 상품을 최저가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목표아래 P&G와 같은 세계 유수의 상품 공급자와 함께 ‘제판동맹’(製販同盟)을 결성해 물류시스템을 공유하는 등의 방법으로 납품 원가를 최저선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익분배 제도가 포함된 복리후생 제도와 특유의 인센티브 프로그램도 성공비결이다. 샘 월튼 등 월마트의 최고 경영자들은 한때 전체 매출액의 5%가 넘었던 종업원에 의한 상품 도난률을 하락시키고 종업원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우리사주제’를 도입했는데 이후 월마트 주가의 급등으로 백만장자가 된 사원이 속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월마트는 한국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 진출했으며 또 한국 유통시장에서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우선 월마트는 1998년 해외투자법인인 월마트 인터내셔널이 1998년 7월10일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들여 당시 한국 마크로의 대주주권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한국에 진출했다. 1996년 중국에 진출한 이래 아시아 시장에서는 두번째로 진출한 것이다.

1998년 10월에는 아시아지역 유통전문가인 레니 맹(Rene Mang) 사장이 부임했으며 1999년 3월에는 한국 마크로의 회원제 운영방식을 폐지하고 슈퍼센터 형태로 운영방식을 변경했다. 또 1999년 7월29일에는 강남 지역 최초의 할인점인 월마트 슈퍼센터 강남점을 개장해 인천, 일산, 분당, 대전 등에 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토종할인점과의 경쟁서 판정패, 저력은 여전

그러나 이같은 양적인 성장과는 반대로 한국내에서 월마트의 위상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1998년 진출초기 국내 토종할인점인 ‘E마트’와의 가격전쟁에서 판정패한 뒤 월마트는 E마트는 물론이고 까르푸, 하나로클럽 등에게도 매출 규모에서 뒤지는 형편이다. 월마트 매장을 이용해본 대부분의 한국인은 “월마트가 서구인의 체형에 맞는 매장을 구성하는 등 한국 시장에서는 현지화에 실패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국내 경쟁업체들은 월마트의 초반 부진을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E마트의 한 관계자는 “월마트가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월마트가 막강한 자본력으로 IMF 후유증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K, H 등 국내 할인체인을 또다시 인수한다면 대대적인 지각변동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요컨대 IMF 체제 이후 한국에 상륙한 다국적 기업중에서 월마트가 최초의 실패사례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한국을 석권하는 또다른 기업이 될 것인지는 향후 1~2년안에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