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돈이 벌리는 곳으로 몰리게 돼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의 생리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벤쳐 열풍은 좋은 것이다. 돈과 인재가 생산적인 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아파트와 전답, 임야에 돈이 몰린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새로 사업하려는 사람한테 돈이 몰렸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몇몇 벤쳐 기업가들이 이루어낸 엄청난 부의 성공 신화가 가져온 21세기형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선순환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라도 정부의 감독자로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지금 우리는 1990년대 초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걸프전을 고비로 불어닥친 미국 경기의 후퇴는 엄청난 실업을 가져왔다. 신문은 40대 중반 대기업 관리자의 실직이 가져온 가정 파탄과 늘어나는 노숙자(homeless)에 대한 기사로 넘쳐 흘렀.

당시 ‘consultant’라고 적힌 명함을 받으면 건넨 사람을 슬며시 다시한번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십중팔구는 실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consultant의 아이디어가 바로 미국 인터넷 경제의 초석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1980년대 말 savings & loans(일종의 상호신용금고 같은 것인데 주로 부동산에 투자를 많이 하였다가 부동산 경기의 하강에 따라 대부분 파산했다)에 투자하였다가 엄청난 손해를 본 투기성 자본은 새로운 고수익 투자 기회를 찾고 있었다.

이러한 자본과 인력이 인터넷이라는 기술과 접목되어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를 창출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정부의 역할도 컸다. 클린턴 정부의 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사업이 기술 발전의 촉매가 되었다면 연구 개발비에 대한 tax credit을 주는 것은 벤쳐 기업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토양이었다. 기업의 수익과 가치가 그대로 주가에 반영되는 시장과 기업의 정확한 공시를 강제하는 증권감독위(SEC) 및 부실 경영에 대하여 준엄하게 법적 책임을 묻는 다수의 주주들이 바로 투명 경영을 가능하게 했고 이러한 풍토가 바로 차고에서 시작한 조그만 벤쳐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된 것이다.

우리의 상황도 아주 유사하다. IMF 위기로 평생직장에 대한 환상이 깨진 직장인은 불확실한 미래를 벤쳐에 던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갈 곳을 잃은 투기성 자금은 역시 고수익 투자기회를 찾고 있다. 다만 우리는 아직 정부의 시장 감독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최적의 토양이 준비되지는 않았다. 여기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먼저 시장의 신뢰성을 보장하여주어야 한다. 코스닥의 열풍을 타고 간혹 일어날지 모르는 사기 공모를 막아야 한다. 이미 보도된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사기 공모는 결국에는 코스닥시장 및 벤쳐 기업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려 시장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상장심사에 보다 공정을 기하고 우리나라 특유의 정실과 인연에 의한 비합리적인 처분을 배제하여야 한다.

둘째로는 지속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여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모든 재화를 분배한다. 수많은 훌륭한 인재들이 벤쳐로 몰려드는 저변에 깔려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경제적 유인이다.

마지막으로 시장에 유연성을 주어야 한다. 지난주 워싱턴포스트에는 연일 Micro Strategy라는 기업의 주가 변동에 대한 기사로 가득 찼다. 220여달러이던 주식이 단 이틀만에 70달러대로 떨어진 것이다.

이 회사는 AOL 다음으로 워싱턴 지역에서 성공한 벤쳐 기업으로서 인터넷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다. 회계 실수로 실제 손해가 난 것을 이익이 난 것으로 분기 보고를 한 것을 SEC가 적발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하자 주가가 폭락하였으며, 주주들은 당장 회사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선진 시장이 보여주는 시장 메카니즘의 전형적인 예다.

오늘의 코스닥 열풍이 우리의 자본 시장을 한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0년전에도 주가지수 1000을 바라본다고 하였으나 아직도 주가지수 800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증시의 자화상이다. 그사이 미국의 다우지수는 5배로 늘어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또 새로운 입법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훌륭한 제도와 입법을 가지고 있다. 다만 제대로 집행하고 실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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