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국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다.”

러시아 새 대통령에 당선된 젊고 강력한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47)이 국제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는 단순·명료하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을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주의나 인권을 내세운 어떠한 내부 반발이나 외부 간섭도 무시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때문에 국제사회는 푸틴의 러시아가 옛 소련식의 강권통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일부 서방 언론들은 벌써부터 푸틴을 가리켜 ‘New Czar’(새로운 차르·전제군주)라는 용어를 쓰는데 주저함이 없다.


정치...부패, 무기력 척결에 역점

정치 민주화 측면에서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을 거치면서 상당히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해 언제든지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소지를 남겨놓고 있다.

푸틴 대통령 당선자는 일단 취임 초반 무엇보다 개혁을 기치로 그동안의 부패와 무기력을 척결하는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전임 옐친 전 대통령 시절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수평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해진 연방과 지방과의 관계도 수직적 관계로 재정립 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체첸전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푸틴이 친정인 연방보안국(FSB, KGB의 후신) 출신 인물에 대한 중용 방침을 밝히고 있는 점 등은 그가 이같은 철권통치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짐작케한다. 나아가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형태의 대통령 권한 강화를 위한 헌법개정론도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정작 관심은 이런 강권통치 과정에서 불거져 나올 기득권층, 즉 러시아의 돈과 정치적 영향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른바 ‘올리가르히’(과두지배세력)들의 저항을 어떤 식으로 무마할지에 쏠리고 있다. 이들을 상대해야 할 푸틴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리가르히들은 소련 해체와 사유화 과정에서 석유회사 등 국영기업을 헐값에 인수, 막대한 부를 챙겼고 나중엔 은행과 언론을 장악하며 당당한 권부로 부상했다. 이들은 또 1996년 대선에서 옐친을 지지한 대가로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확대, 러시아를 정경유착과 부패의 늪으로 빠뜨리는데 앞장서 왔다. 따라서 이들의 해체 없이는 진정한 러시아의 재건은 어려울 수 밖에 없으며 이는 푸틴의 새정부가 당면한 최대 과제중 하나이다.


군사·외교...힘 앞세운‘러시아 제일주의’

군사·외교 푸틴이 지금까지 밝힌 대외정책의 일관된 기조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러시아 제일주의’이다.

따라서 푸틴의 러시아는 앞으로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목표로, 군사·외교면에서 최대 강대국인 미국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재래식무기 현대화 및 핵전력 강화를 통한 강대국 지위회복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인도, 이라크, 북한 등과의 대미 견제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푸틴은 3월24일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같은 내용의 신외교개념을 채택했다. 다만 여기서도 대외 경제활동 활성화가 특별히 강조됐다는 점에서 그의 대외정책이 강경 일변도만은 아닐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군사부문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점은 푸틴의 러시아가 과연 핵무기 카드를

어떤식으로 활용하느냐는 대목. 러시아는 푸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3월27일 북양함대 소속 핵잠수함으로부터 캄차카 반도의 쿠라 훈련장을 향해 대륙간탄도핵미사일 RSM-54(나토분류 SS-N-23) 2발을 실험 발사했다.

이와관련, 푸틴은 지난 2월 ‘러시아와 동맹국들이 재래식 무기로는 적절히 대항할 수 없는 침략을 받을 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신군사개념을 승인했었다. 그는 또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지방을 돌며 ‘핵강국 러시아’를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푸틴의 이같은 핵강국론도 결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러시아를 무시하지 말라는 엄포용 혹은 선전용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핵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군사력은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회복을 위한 ‘빅 카드’로서 언제나 유효한 것이다.


경제...정부주도의 개혁정책 펼칠듯

경제 푸틴이 지난해 말 ‘크렘린의 대리인’으로 전격 등장한 이후 3개월여간 러시아 RTS 주가지수는 70% 가량 상승했다. 이는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의 기대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푸틴이 ‘강력한 러시아’의 필요충분 조건을 경제개혁이라고 지적했듯이 러시아 경제는 부정부패와 빈곤으로 찌들어 있다. 1998년 8월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으로 파산직전에 몰린 경제는 고유가와 산업생산성 증가 등으로 서서히 회복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선진국에 턱없이 못 미친다.

저조한 외국인 투자, 낙후된 생산 설비, 미미한 연구개발투자 등은 석유수출 증가에 기인한 최근 회복세를 언제든지 꺾어 버릴 수 있다. 특히 이번달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상이 좌절될 경우 외국인 투자 유치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푸틴의 경제구상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총리 취임 당시 부패와 지하경제 척결을 통한 강력한 정부 확립 등을 정책목표로 제시, 정부 주도의 경제개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푸틴은 일단 지난해 12·19 총선과 이번 대선에서 압승, 경제개혁의 발판은 마련했다. 친여 성향의 의원 수가 국가두마(하원)의 절반에 육박해 전임자에 비해 각종 개혁법안 추진이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푸틴은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부시장 시절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등 비교적 서방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어서 5월 취임이후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푸틴이 개혁의 관건인 올리가르히의 청산이나 경제제도의 개선 등 근본적인 개혁에 나설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푸틴이 오히려 올리가르히를 자신의 주변인물로 교체, 강력한 통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 이 경우 경제개혁이나 러시아 재건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홍윤오 국제부기자


홍윤오 국제부 yoh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