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으로 ‘찬스’라는 말에는 ‘뒷머리’가 없다. 북한은 베르린 선언에 이은 3월31일 김대중 대통령이 APEC 서울포럼에서 한 제안을 찬스로 잡아야 한다. 북한은 3월29일 방북한 랑베르토 디니 이탈리아 외무부 장관과의 공동성명에서 밝힌대로 남·북간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

또 북한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한국의 제의에 묵묵부답이지만 예의 비난은 없다. 김정일 총비서는 장쩌민 중국국가주석에게 초청친서를 보내는 등 서울의 4·13 총선을 비켜가며 변화의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김 대통령의 예측대로 총선후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북한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관계자들의 바람이다. 북한의 오늘은 우리의 총선에 가려있지만 실은 ‘종말’에 가깝다.

북한의 2, 3월 강수량은 예년의 4분의1 수준인 2월 2mm, 3월 6mm였다. 물론 농업 및 전력 부문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2월 평양에 간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표들은 1급 호텔에 들었지만 난방이 안되어 코트를 입은 채 잠을 자야 했다. 북한 당국도 에너지 부족을 인정했으며 3월초의 고위급 회담을 위한 뉴욕협상에서도 에너지 문제가 다루어졌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연락관으로 지난 2년간 북한에 머물렀던 캐나다인 와인 캐드서 부부는 1999년 12월 보고서에서 여전한 북한의 기근을 전하고 있다. 1999년의 양곡 소요량은 476만톤이었으나 생산량은 347만톤.

수입 요구량은 129만톤이지만 무역으로 30만톤, 외국원조로 37만톤이 들어왔을 뿐이다. 62만여톤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며 이 부족량은 농업구조개선 등이 이루어진다 해도 부족하게 마련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5~1999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지원한 원조액은 3억8,000만 달러. 미국이 최대 지원국가로 2억700만 달러를 지원했고 중국이 두번째로 7,800만 달러를, 한국은 4,600만 달러, EU 국가가 3,700만 달러를 원조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최대 원조국가며 제네바 합의를 통해 그들의 핵을 동결하고 ‘깡패국가’(Rogue Country)를 포용한 클린턴 미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미 의회가 견제에 나섰다. 지난 3월22일 하원 국제위원회는 윌리엄대학의 마이클 라이스 국제대학원장을 통해 클린턴 대북정책의 실효를 물었다.

라이스 학장은 ▲북한과는 협상을 할 수 없다 ▲미국은 KEDO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 ▲제네바 합의는 미국의 안보와 관계가 없다는 등 세가지 가설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라이스 학장은 “제네바 합의의 협상 과정을 통해 비록 북한이 벼랑끝 외교와 협박 전술을 썼지만 미국은 큰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북한에게 당당히 맞설 때 북한은 협박을 계속 하지 못한다는 체험을 얻은 것이었다. 1995년 북한이 한국형 원자로를 거부했던 것을 막은 것, KEOO가 금창리 등 새로운 핵시설의 대두에 강하게 맞섰던 것 등이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라이스 박사는 “KEOO의 창설은 결국 년간 10~12개의 핵폭탄을 생산할 수 있는 북한의 핵개발 능력을 동결시켜 미국의 국가이익이 걸려있는 동북아에 평화적 토대를 세웠다”고 분석했다.

라이스 학장은 “만약 미국이 북한에 중유와 쌀의 원조을 원조하지 않고 일본과 한국만이 KEDO에 참여토록 했다면 동북아에서의 우방국가들에 대한 신의는 사라졌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또한 “의회가 제3의 감시기구로서 윌리엄 페리 전국방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고 그로 하여금 건설적인 포용정책을 내놓도록 한 것은 클린턴 이후에도 대북정책은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을 북한과 미국의 우방국가에게 전달하는 메세지”라고 결론내렸다.

문제는 이런 조건 속에서의 북한이 어떻게 자각하느냐다. 미국의 씽크탱크인 기업 연구소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1999년 출판한 ‘북한의 종말’에서 다음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통일정책은 1948년 건국이후부터 사회주의 이념 아래 북한의 주도 아래 남한을 통일하는 것이었다.

6·25전쟁 이후 1970년대까지 이 정책은 계속됐고 결국 1980년대에 파탄에 이르렀다. 북한은 끝난 것이다. “전쟁없이도 경제가 무너졌고 서방에 대한 무역량이 1970년대보다 줄어 국민 1인당 소득이 19달러인 이 나라는 결국 붕괴될 것 같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면 IMF 위기를 벗어난 한국과 손잡고 ‘새로운 북한’을 만드는 것 뿐이다.”

그 기회는 다가오고 있다. 북한은 그 ‘앞머리’를 잡아야 한다.

박용배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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