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는 정치개혁운동, 총선 최대변수로 작용

“한국에서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이끄는 ‘바꿔’열풍이 불고 있다.”

이달초 발행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아시아판에서 4·13 총선과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의 활동을 소개하는데 거의 절반 가까이를 할애했다. 시민단체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반증한 것이다.

학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올해가 한국 정치는 물론 시민운동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고려대 심재철교수(신문방송학)는 “새천년의 첫해는 한국 시민운동이 양적·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한 해였다”고 말했다.

올해초 경실련이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고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대상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시작된 시민단체의 정치개혁운동은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았고 총선의 변수로 작용했다. 그동안 정치개혁의 필요성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지만 언론을 비롯, 그 누구도 정치기득권을 바꾸지 못하고 방치해오는 바람에 국민의 정치혐오증과 정치무관심만 깊어갔다.

철옹성같던 정치권에 새천년 들어 시민단체들이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여론의 호응은 기대한 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500여개 시민단체들이 연합한 총선시민연대 박원순 상임집행위원장(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낙천·낙선대상자 명단 발표직후 여론의 호응을 “마치 1986년 호헌철폐 국민운동본부 시절이 다시 생각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시민의 힘으로 무장

‘시민의 신문’이 발행한 ‘민간단체총람’에는 1996년 말 현재 비정부단체(NGO)로 3,899개가 수록돼 있다. 이중 노동조합과 전문단체, 순수 종교단체 등을 제외하면 시민단체는 730여개지만 지금은 1,000여개 정도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시민단체의 74.2%가 1987년 이후에 설립됐으며 특히 시민운동과 환경관련 단체는 1993년 이후에 설립된 것이 절반이 넘는다. 시민운동은 1987년 민주화운동를 계기로 시작돼 1990년대에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1896년 독립협회에서 시민운동의 뿌리를 찾는다. 당시 일본과 유럽열강에 나라가 유린당한 상황에서 지식인이 자발적으로 설립했으며 특히 1898년에 시작된 만민공동회 활동은 오늘날 시민단체의 가두캠페인이나 가두연설과 흡사하다.

그러나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의 자주권이 상실된 뒤 시민운동은 명맥이 끊어졌고 해방 이후에도 경제재건과 독재를 거치면서 시민의식의 싹은 돋아나지 않았고 YMCA와 YWCA 등이 시민단체를 대표하고 있었다.

1960~198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시민운동의 중심은 재야단체와 노동조합, 대학생 등의 민주화 투쟁에 집중돼다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시민의식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치·경제·사회적 개혁요구는 구체적인 시민운동과 시민단체 출현의 터를 마련해준 셈이다.


경실련, 현대적 시민운동의 출발

이런 배경에서 1989년 7월 탄생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현대적 시민운동사의 시작이었다. 경실련의 활발한 활동과 금융실명제 등 혁혁한 성과는 시민의식을 깨우는데 큰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했다. 경실련보다 한해 앞서 1988년 9월 발족한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은 이후 환경운동연합으로 개편되면서 국민의 환경의식을 높이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시민단체의 구도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경실련이 1997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비디오를 공개하지 않고 며칠간 보관했다가 도덕성에 치명타를 맞으면서 흔들리는 사이에 참여연대가 시민단체의 대표주자로 부각한 것이다.

1994년 출범한 참여연대는 그동안 경실련의 그늘에 가려있었지만 소액주주운동 등 법제도를 활용한 투쟁방법으로 시민운동의 질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여연대는 낙천·낙선운동 등 정치권 개혁운동을 주도해 또다시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1990년 후반부터 시민단체의 활동분야는 인권이나 경제분야에서 벗어나 아파트관리비 감시부터 언론,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선거부정 감시나 국정감사 감시 등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는 등 운동방법도 한층 성숙해지고 있다.

이처럼 시민단체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의식의 확산 뿐만 아니라 활동가의 공헌도 적지 않았다. 1960~1980년대가 반독재투쟁을 전개해온 ‘운동가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박봉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비리와 부정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합법적 운동에 매진해온 이른바 ‘활동가의 시대’인 셈이다.

특히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실장, 서왕진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국장, 하승창 ‘함께 하는 시민행동’조직위원장, 김승보 경실련 정책실장, 신종원 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등 시민운동 2세대인 ‘386세대’가 시민운동의 중추로 성장하고 1990년대 학번들이 실무자로 충원되면서 인터넷을 통한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등 정보화사회에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법 테두리를 벗어난 정치권 개혁운동을 기획한 것도 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지원자도 크게 늘었고 재정도 점점 견실화하는 등 이제 시민운동은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


총선 뒤 새로운 개혁운동에 주목

시민단체들은 이번 총선결과에 관계없이 정치개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자기 분야에서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왔지만 정치개혁 없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시도했던 국정감사 감시운동을 의정 감시활동으로 상시화하고 그 결과를 선거에 연결시키는 등 역량의 상당부분을 정치개혁에 쏟아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시민단체의 국정감사 감시활동을 주도했던 이석연 변호사는 경실련 사무총장 취임전 ‘주간한국’과 인터뷰에서 “이제 정치권 개혁이 핵심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대에 턱없이 뒤떨어진 정치권 개혁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법 테두리 밖으로 나와 낙천·낙선운동을 벌인데 대해 많은 논란이 벌어졌지만 국민의 정치적 각성을 촉구하고 정치권에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낙천·낙선대상자중 상당수가 당선되는 등 지역정서와 괴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숙제로 남아있다. 아무튼 4·13 총선결과를 바탕으로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할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정치권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거리다.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송용회 주간한국부 songy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