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물의 흑사병인 구제역이 일단 한풀 꺾였다. 지난 3월19일 경기 파주지역에서 시작된 구제역 파동은 산불처럼 서해안으로 따라 확산돼 전국의 축산농가를 공포에 몰아넣더니 4월 들어서부터 주춤해졌다. 9일 현재 경기 용인시 남사면과 충남 홍성군 구항면 등 세곳에서 한우 세마리가 정밀검사 결과 구제역 양성으로 추가 판정됐다.

그러나 구제역 양성반응이 나타난 곳은 모두 최초 발생지 인근이고 전국 확산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전·남북과 강원도 등지의 소와 돼지의 구제역 관련 증상신고는 모두 음성으로 판명돼 일단 한시름 놓게 됐다.

농림부 구제역 실무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홍성은 신고와 방역조치가 너무 늦었기 때문에 추가발생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라며 “아직 안심할 수준은 아니지만 구제역의 전국 확산은 일단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9일 현재 전국에서 구제역 증상으로 신고된 52건 중 경기 파주·화성, 용인, 충남 홍성·보령에서 11건만 구제역으로 판정됐고 전북 김제, 전남 영광, 북제주, 충남 화성 등 34건은 미감염으로 확인됐으며 7건은 검사중이다.


수출 전면 중단, 피해·후유증 클 듯

하지만 아직까지 구제역의 구체적인 발병원인과 전파경로가 확인되지 않아 재발과 재확산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일부에서는 구제역이 이들 지역에서 확산되지 않은 것은 주변의 소백산맥과 차령산맥이 방어막 역할을 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역학조사위원인 국립지리원 사재광씨는 “지형적으로 이들 전염병 발생지는 해안에서 20㎞ 정도 떨어져 있고 높은 산이 없는 평야나 분지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공기전파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요 산맥이 천연 방역선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그러나 중국에서 황사가 5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이 나오자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황사가 구제역 전파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어 자칫 ‘꺼진 불’로 생각됐던 구제역이 황사를 타고 다시 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방역당국은 황사 발생에 대비한 가축관리 수칙을 긴급 시달하는 한편 구제역 정확한 발병원인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구제역 파동으로 수출길이 막히게 된 돼지를 비롯, 이동제한 구역내의 한우와 젖소를 수매하고 축산경영자금의 상환기일을 연장하는 등 피해지역 축산농가에 대한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70여년만에 발생한 이번 파동의 피해와 후유증은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구제역 파동이 완전히 사라진다 하더라도 돼지의 수출이 재개되기까지는 빨라도 올 연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여 축산농가는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와 축산농가들이 구제역 발생지역 가축의 도축과 유통을 거부하고 있다. 또 일부에서 축사소독약을 매점매석하는 등 지역이기주의가 노골화했지만 조기에 타결점을 찾지 못해 피해가 더욱 커진 점도 문제다.

정부가 4일부터 돼지수매를 시작했으나 충남 홍성군의 경우 군내에서 출하된 돼지를 지정 도축장이 있는 예산과 부여, 논산 등으로 반출하려다 예산군 등이 돼지 반입을 허용하지 않아 수매가 중단됐다.

충북 청원군도 축산물 가공공장인 한국냉장 중부공장에 공문을 보내 홍성지역의 돼지고기 반입을 거부하도록 요청했으며 제주도는 구제역이 발생한 충남 뿐만 아니라 육지의 모든 쇠고기와 돼지고기 부산물 반입을 전면 금지했다. 돼지의 경우 도축 최적 중량인 100㎏을 초과하면 가격이 떨어져 축산농가 입장에서는 사료비 낭비와 가격하락의 이중고를 겪는 것이다.


발생지역 돼지 반입놓고 충돌

홍성의 구제역 발생지는 하루 평균 3,000마리의 돼지가 출하되고 있는 대단위 축산단지인데도 불구하고 지역내에 2군데의 도축장만 있을 뿐 축산물 가공시설은 한 곳도 없다. 이 도축장 2곳에서는 하루 800마리 밖에 처리할 수 없어 홍성은 통상 다른 지역의 도축시설과 가공공장에 의존해왔다.

홍성의 축산농가들은 돼지출하가 늦어지자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8일 5톤 트럭 30대에 돼지 1,000마리를 싣고 서울로 올라가려다 경찰에 저지돼 국도를 점거하고 며칠동안 농성을 벌이는 등 지역주민간의 갈등 또한 깊어지고 있다.

대한양돈협회 홍성지회 노영빈 회장은 “홍성지역 돼지에 대한 정부의 수매 약속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군 축산농가들이 해당 지역 도축장으로 홍성 돼지 반입을 거부, 매일 3,000여마리씩 수만마리의 돼지가 출하되지 못했다”며 “돼지출하 적체로 홍성은 물론 전 시·군의 축산기반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변지역의 양돈협회들은 “홍성 돼지를 도축하다 구제역이 전염되면 누가 책임지겠느냐”며 “홍성 축산농가의 딱한 사정은 알지만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반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구제역파동에서도 중간상인의 농간은 전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부가 조사한 산지 돼지(100㎏기준)값은 지난달 24일 구제역 발생 당시 18만8,000원에서 8일 현재에는 원가 수준 이하인 14만1,000원으로 떨어져 지난해 같은 기간의 19만9,000원보다 25%나 하락했다.

그러나 시중 정육점의 돼지고기 판매가는 500g에 평균 3,780원으로 오히려 지난해 이맘때의 3,464원 보다 9.1%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구제역에 오염된 한우의 산지가격은 수소 500㎏짜리가 4일 현재 239만9,000원으로 1년전보다 15% 올랐고 구제역 발생 발표 이전인 지난달 24일의 246만4,000원에비해 2.6% 하락에 그쳤다.


중간상인 농간, 축산농가 두번 울려

특히 일부 농가들은 산지 수매인에게 평균 수매가격보다 낮게 외상으로 돼지를 내다 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구제역 파동으로 중간상인만 배를 불리고 축산농가를 돕기 위한 범국민적 육류소비 촉진운동에 찬물을 뿌렸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로 인해 농림부는 축산기업중앙회에 시중 정육점의 돼지고기 판매가를 대폭 인하해줄 것을 요청하고 적정 수준으로 인하하지 않을 경우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통보했다.

언론의 보도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인 지난달 12일 미야자키현에서 의사구제역이 발생했으나 진성 여부에 대한 자체확인을 미뤄오다 24일이 지난 4월5일에야 영국 퍼브라이트 연구소로부터 진성판정을 받아 발표했다.

일본은 구제역 발생 지역의 인근농장에서 추가발생이 확인됐는데도 언론의 취재를 철저히 통제하고 언론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첫 구제역 판정 이후 연일 보도경쟁이 벌어졌으며 일부 언론에서는 구제역의 인체 유해 가능성까지 제기하는 바람에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취재기자들이 과도한 보도경쟁을 자제키로 했으나 일부 언론사에는 축산농민의 항의가 잇따르기도 했다.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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