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호' 침몰, 발빠른 후계구도 구축으로 혼란 막아

홋카이도(北海島)의 우스(有珠)산 분화로 인해 일본 열도가 어수선하던 지난 4월1일 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62) 총리는 우스산 분화 대책회의에 이어 연정 파트너인 자유, 공명당 대표와 연정의 미래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결과는 자유당의 연정 이탈. 이때 끓던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분출하듯 오부치 총리의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회담 직후 자유당이 연정 이탈을 공식 발표하는 동안 그는 10초 정도 입을 벌린 채 말을 하지 못했지만 이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총선시기가 가장 큰 당면과제

몇시간 후인 2일 새벽 1시 더이상 몸을 가눌 수 없던 그는 준텐도(順天堂)대학 부속병원으로 옮겨졌고 18시간30분만인 오후 7시30분 뇌경색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경제회생 내각을 표방했던 ‘오부치호(號)’가 출범 1년8개월만에 침몰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3일후인 5일 모리 요시로(森喜朗) 내각이 출범했다.

물론 국정공백을 막기 위해서란 이유겠지만 오부치 전총리의 입원이 불과 이틀째된 날 이미 후계구도가 갖춰졌을 뿐 아니라 동시에 진행된 공명, 보수 양당과의 연정구성도 속사포처럼 이뤄져 마치 치밀한 각본이라도 미리 짜여진 듯 했다.

일본 정국은 현재 개원중인 국회가 회기를 2개월여 남겨놓고 있는데다 중의원 해산 및 총선 실시, 7월 오키나와(沖繩)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 등 어느 해보다 중요한 대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 엉겹결에 바통을 넘겨받은 모리 총리의 임무와 역할이 그만큼 막중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다.

가장 큰 당면 과제는 총선을 언제 치르느냐는 문제. 모리 내각이 비록 선거때까지 기간을 관리하는 잠정 내각이라 하더라도 총선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에 대해서는 분명 칼자루를 쥐고 있음이 틀림 없다.

자민당내에서는 지난해 10월 자자공(自自公) 연정 출범을 계기로 오부치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한데다 최근 경찰 비리와 금융담당상 경질 파동 등 잇단 악재가 불거지면서 총선에 대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때문에 중의원 해산도 금년도 예산안 관련 법안이 이달 하순께 통과된 뒤 조기에 단행하자는 주장이 자취를 감추면서 최근에는 10월19일 임기만료에 맞춰 단행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G-8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등으로 실적을 쌓은 뒤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오부치 전총리의 입원으로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자민당에서는 5월 연휴가 끝난 이후에 중의원을 해산, 6월에 총선을 치르는 쪽으로 대세가 굳어지고 있다. 자민당 총재인 오부치 전총리가 과로로 쓰러진데 대한 유권자의 관심과 동정이 식기 전에 서둘러 총선을 치러야한다는 판단이다.


밝은 경제전망, 외교·안보 틀 유지

경제 전망도 밝아 일본은행의 단기경제 관측은 5개월 연속 ‘개선’을 보였으며 주가도 닛케이(日經) 평균주가가 2만엔대의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곧 발표될 1999년도 경제성장률은 3년만에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 확실하다.

한편으로 내각 지지율 급락의 커다란 원인이었던 연립정권내의 불협화음도 말끔히 정리됐다. 새로 출범한 자공보(自公保) 정권이 정책 연대보다는 선거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이때문에 모리 총리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G-8 정상회담 전까지는 조기총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기총선론은 여전히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부문에서 모리 내각은 2년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에서 탈출하기 위해 오부치 정권이 추진해온 공적자금 투입에 의한 경기회복노선을 계승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재정 건전화와 균형을 취해야 되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도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키나와 G8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치르기 위한 준비가 현재로선 당면 최대 과제라고 할수 있다.

다만 모리 내각은 어디까지나 임시 정권이라는 점에서 외교 상대국으로 하여금 100% 신뢰를 줄 수 없는 부담을 또한 안고 있다. 이는 영토문제를 둘러싼 일-러 관계, 일-북 수교회담 등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홍윤오·국제부 기자


홍윤오·국제부 yoh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