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박종호(40)씨에겐 히포크라테스 선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또하나 있다. 오페라를 보러갈 때는 누구도 자신의 앞길을 막지 말 것. 병원의 직원을 채용할 때 조차 이에 대한 서약부터가 기본이다. 좀더 완벽한 ‘탈출’을 위해 아예 직원 스스로를 맹렬 오페라 팬으로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한 여직원은 몇해 동안 번 돈을 모두 털어 오페라 여행을 다녀올만큼 그의 오페라 열병은 전염성도 강하다.

“다른건 몰라도 제가 오페라 보러 간다고 하면 두말없이 무사통괍니다. 왜 오페라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그런 겁니다. 제가 강의를 다니는 오페라 모임의 한 주부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씽크대 앞에 ‘리 베르타’(자유)라고 크게 써놓고 귀로는 최대한 큰 소리로 오페라 음악을 틀어놓고 듣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아무리 현실이 답답해도 ‘나는 곧 자유로와진다. 반드시 자유를 얻는다’는 희망감이 벅차올라 금새 자기도 모르는 기운이 솟는다고 하죠. 저도 그 비슷한 겁니다. 오페라는 저를 꿈꾸게 해줘요. 오페라를 듣는 순간만큼은 모든 험한 것들로부터 내 눈을 가려주고, 모든 소음으로부터 내 귀를 덮어주지요.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나기 힘든 마약 같은거지요.”


“오페라는 나를 지탱해주는 힘”

그는 경기 구리시에 있는 유일신경정신과 원장이다. 전문의가 된지 11년째. 병원안에선 여늬 의사나 별 다를 바 없다. 하루종일 환자에게 둘러싸여 진을 빼다 보면 오후 5시만 돼도 그로기 상태. 정신과의사이기에 겪어야 하는 별도의 고통도 있다.

“하루종일 남의 얘기만 들어주자니 얼마나 피곤하겠냐고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피곤한 일이, 너무도 많은 사람에게 제 자신이 노출된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면, 정신과는 진료의 특성상 환자와 의사가 항상 일대일로 마주 앉아 내내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진료를 보게 되는데 그러자니 하루에도 수십명, 많게는 몇백명씩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도 고통이라면 큰 고통이 될 수 있거든요.

특히 의사는 자신의 감정을 얼굴에 나타낼 수도 없으니 그렇게 긴장한 채로 환자를 보고나면 몇시간만 지나도 거의 탈진할 만큼 녹초가 되죠. 이골이 나지 않으면 절대 못할 일이예요.”

그런 그를 지탱하게 해 주는 힘이 바로 오페라다. 특히 매주 목요일은 ‘오페라 안식일’. 아예 병원진료도 거른 채 이날만큼은 하루를 통째로 오페라를 위해 산다. 이날 그가 가는 곳은 서울 교대역 부근의 음악카페 바흐하우스.

이곳에서 오전엔 40대 여성들로 구성된 ‘라디비나’ 회원에게 오페라 강의를 하고, 오후엔 자신 못지 않은 오페라 골수 팬의 모임 ‘광장클럽’의 회원과 토론모임을 갖는다. 그 어느쪽이든 한번 시작했다 하면 최소한 네시간 이상 소요되는 장시간의 회합이지만, 때로는 그 시간만으로 모자라 자정을 넘기기도 한다. 특히 광장클럽 모임은 한번 발동이 걸린 이야기가 끝나지 않으면 심야 포장마차에까지 자리를 옮겨가며 오페라 얘기로 밤을 새우기 일쑤다.


오페라계의 소문난 마당발

광장클럽은 예전에 자신이 살던 광장동 아파트에서 한 후배의사의 부탁으로 오페라 얘기를 들려주다가 서서히 발전된 모임으로, 한때는 적당한 사교모임 쯤으로 생각하고 ‘흑심’을 갖고 어슬렁대다 성질 깐깐한 이 오페라광 박씨로부터 퇴장당한 이들도 있다. 그만큼 ‘순도 100%’를 자랑하는 순수한 음악모임이다.

현재 구성원은 판사나 변호사, 펀드매니저 등 박씨처럼 1분1초를 다투며 사는 전문직 종사자들. 그러면서도 이날을 위해선 서슴없이 휴가를 낼만큼 대단한 열성파다. 별다른 자격심사를 한 것도 아니지만 결국엔 소수정예만이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페라 자체가 그만큼 많은 공부와 깊은 애정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바둑이나 축구라도 룰을 모르면 재미를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페라 역시 음악이 가진 역사적 배경과 문학, 철학 등을 알아야만 비로소 그 재미를 느낄수 있기 때문에 여간한 끈기와 노력없이는 친해지기 어려운게 사실이죠. 그 때문에 오페라를 좋아하는 층도 늘 그만그만하구요.

하지만 일단 친해지고나면 이만큼 재미있고 멋진 일도 흔치 않습니다. 언젠가 어떤 여자분이 그 친구한테 나비부인을 보러가자고 하니까 ‘난 전에 이미 봤어. 더 안봐도 돼’라고 하는걸 봤는데 이건 오페라를 제대로 모르는 얘기예요. 프로야구 좋아하는 사람이 LG랑 OB가 하는 시합을 한번 본 적이 있다고 더 안보는 것 봤습니까? 보면 볼 때마다 다른 겁니다. 특히 오페라는 아무리 같은 내용이라도 매번 가수가 다르고 연출이 다르고 무대가 바뀌기 때문에 늘 새로운 감동을 주지요.”

다른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여행이라고 대답하지만 알고보면 이것도 순전히 오페라를 보기 위한 여행이다. 보고싶은 오페라의 공연 일정을 따라 행선지를 정하다보니 자연히 오페라로 유명한 도시만 연거푸 방문하게 되는 일이 많다.

밀라노는 10번이상 가보았고 워낙 자주 얼굴을 드밀다보니 웬만한 유럽 도시 어디에 가도 그를 알아보는 외국 오페라 가수도 제법 된다. 때로는 외국 현지 공연장에서 인사를 나눴던 가수가 내한 공연차 왔다가 몸이 아프게 되자 대뜸 의사인 박씨부터 긴급 호출, 그렇게 남다른 우정으로 맺어지기도 한다.

덕분에 오페라계의 마당발로 소문이 나면서 때론 국내 무대와 외국 오페라 가수를 연결시켜주는 노릇을 맡기도 한다. 실제로 국내의 한 유명 오페라단의 ‘리골레토’ 공연시 주연 가수가 펑크나자 급히 박씨에게 도움을 요청, 부랴부랴 이태리 베로나를 뒤져 가수를 구해준 일도 있다.


의대시절부터 오페라 중독증

“어렸을 땐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림도 곧잘 그려서 당장 미대에 진학해도 될 만큼 소질도 있었죠.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한 뒤 주로 음악을 많이 들었지요. 아마 오페라에 빠져든 것도 그런 제 적성과 상관이 있을지 몰라요. 그전에 좋아하던 실내악이나 라틴음악과는 또다르게 오페라에 실린 사람의 목소리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뭣보다 시각적인 음악장르란 점이 저를 강하게 끌었거든요.

구도며 화면이 있고, 드라마적인 구성도 있고, 모든 것이 이만큼 완벽하게 충족되는 장르가 드물지요. 개인적으론 베르디나 도니제티 등의 작품, 특히 비극적인 걸 좋아합니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에도 한 오페라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다 아는 내용인데도, 오페라는 그렇게 들을 때마다 새롭고 전율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요.”

따지고보면 그의 오페라 중독증은 이미 의대시절부터 역력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부산대 의대 본과 1학년때도 부모님을 속여가며 서울행 밤차를 타고 올라와 오페라 공연을 보러다녔다. 3학년때는 성악을 알아야 오페라가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아예 한 성악가의 집으로 하숙을 옮겨 넉달동안 직접 성악수업을 받기도 했다.

의사가 된 뒤에도 보다 자리를 비우기 쉽게 하기위해 병원 규모를 키워가며 다른 의사까지 보강했다. 참고 참은 끝에 가끔씩 다녀오는 오페라 여행이지만 단1주일만 자리를 비워도 거의 파산지경에 이를만큼 병원수입에 타격을 받기에 이를 회복하기위해 몇달동안 잠잠히 일에만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정도 회복됐다 싶을 즈음이면 또다시 새 공연소식에 들썩거리며 좀이 쑤시는 그다.


전문가 수준의 듣고 쓰기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도 쓴다. 5년전 한 음악잡지에 글을 쓴 뒤 여기저기서 청탁이 밀려들면서 그동안 각종 신문과 음악잡지, 공연전문지 등에 꾸준히 글을 싣고 있는 음악 칼럼니스트다.

그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오페라를 탐구할 수 밖에 없었고, 역사 철학 문학 등 방대한 장르를 넘나드는 자료수집과 공부도 거쳤다. 그렇게 축적한 지식과 자료는 국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수준. 일전엔 한 방송사에서 오페라 관련 영상자료를 그에게서 빌려간 일도 있을 정도다.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오페라라면 왜 그쪽을 선택하진 않았을까? 질문이 이쯤에 이르면 그는 ‘인생은 거기서 거기’라며 세상에 달관한 사람처럼 자세를 고치고 나온다. 지극히 현실에 밝은 실속파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의 음성이며 표정이 어딘지 쓸쓸해보이기도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대답조차 오페라에서 빌려온다는 것.

“좋아한다고 해서 인생 자체를 다 걸 생각은 없어요. 결국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라보엠’에도 그런 말이 나와요. ‘당신에게 물어보라’고. 그냥 사는 겁니다. 인생엔 결코 대박도, 신기루도, 복권당첨도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 뿐입니다. 의사로서 열심히 일하고 한편에선 오페라 속에서 꿈을 꿀 수도 있으니 전 이것으로 족합니다.

한편으론 이렇게 오페라에 쏟아붓는 애정때문에라도 병원에 있을 땐 더 철저히 환자에게 몰두하려고 애씁니다. 제 진료실엔 그 흔한 오디오 하나 두지 않았어요. 병원에 있는 한은 어쨌든 전 의사니까요. 다만 한참이나 기다린 공연을 보려고 퇴근후 막 병원을 나설 때 뒤늦게 환자가 달려와 진료를 부탁하면 그때만큼 갈등이 생기는 순간은 없지만 말예요. 의사라면 그런 갈등조차도 없어야 되는건데….”

최근엔 또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한동안 여러 곳을 옮겨다니던 끝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안착하는가 싶던 바흐하우스가 이달 말로 문을 닫게 되면서 그가 속한 두개의 오페라 모임도 또다시 떠돌이 신세가 될 판이다. 몇주전부터 부지런히 새 장소를 물색중이지만 워낙 오디오 시설이 빈약한 곳 뿐이라 새 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걱정조차 바깥에 있을 때 뿐이다. 평일에도 웬만한 약속만 없으면 퇴근후 집으로 달려가 학창시절부터 모은 LP며 LD CD 비디오 등으로 가득찬 자신의 간이음악실에 틀어박혀 밤을 보내는 박씨. 이제 겨우 갓 마흔을 넘긴 건강한 그는 이미 후배들에게 공표한 유언도 있다. ‘죽으면 화장해서 베네치아 앞 강에 뿌려달라’는 것. 끝까지 오페라광다운 주문이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김명원 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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