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달리기에서 1등으로 들어온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땅바닥에 주저앉을 때 느낌이 그럴까? 심장이 터질 것 같으면서도 가눌 수 없이 솟구쳐 오르는 벅찬 감격. 그리고 홀가분함과 느긋함. 이 기분좋은 느낌을 요즈음 김익래 다우기술 회장이 만끽하고 있다.

여의도 대한투자신탁 18층에 있는 온라인 증권사인 '키움닷컴'(kiwoon.com)의 사무실에서 오래간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는 그에게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하자 되돌아오는 답년에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단거리 육상선수의 느긋함이 묻어나왔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사람이나 서류, 일에서 어느 정도 해방됐지요. 1986년 다우기술을 창업한 뒤 이런 기분은 처음입니다."


"벤처도 전문 경영인체제로 가야"

김익래 회장은 3월 27알 컴퓨터 소프트웨어 종합개발 및 판매회사인 다우기술의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역삼동의 대영빌딩에 사무실을 얻고 외국에서 들여온 유명 소프트에어의 판매에 나선지 14여년만이다.

그러나 그이 나이 이제 갓 쉰. 아직 일선에서 진두지휘할 나이인데 왜 그만둘 생각을 했들까? 회사 규모가 커지고 계열사가 늘어나면서 좀 더 효율적인 관리와 경영을 위해 능력있는 전문 경영인이 필했다는게 사임 동기다.

"벤처한답시고 누구나 이판에 뛰어드니 웃긴다 싶어 관두시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무슨 소리냐"며 손을 내젓는다.

"젊은 시절 겁도 없이 소프트웨어 개발·유통 분야에 덤벼들어 한 청춘을 다 바쳤어요. 14년동안 앞만 보고, 일만 하고 살아왔어요. 개인적으로보 변화가 필요할 때지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구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구요. 더욱이 벤처기업은 이제 더이상 구멍가게가 아닙니다. 규모가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더욱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땅에 벤처문화가 뿌리는 내리는 지금인가? 김회장은 이범천 박사와 함께 우리나라 벤처기업 1호로 기록된 큐닉스 컴퓨터를 세운 '벤처 원조' 가 아닌가. "다우기술을 전문 경영인에게 넘기고 현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생각은 이미 1~2년 전부터 해왔는데 마땅한 사람은 없어 늦어졌다"는게 그의 변이다.

어렵게 그가 찾아낸 전문 경영인은 삼성 SDS의 김종환 전무이사다. 삼성 SDS는 다우기술이 가장 큰 경쟁상대로 여기는 업체라 구원(舊怨)이 적지 않을 터인데도 선뜻 스카우트해왔다는 점에서 김 회장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다. 바로 '인재경영'이다.

김회장은 소프트웨어가 지식산업인 만큼 사람보다 더 확실한 자산은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 다우기술로 끌어왔고, 또 끌어오고 있다.


사람 아끼는 '인재경영'

1년전 다우기술에 합류한 한 차장금 사원은 "김회장이 얼마나 사람을 아끼는지 인터뷰때 보면 안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아무리 아랫사람이라도 스카우트 대상자에게는 직접 다우기술의 현황과 장래, 기업가치등을 설명하고 함께 일할 것을 권한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할 때 이미 김회장에게 반했다"고 털어 놓았다. 김좋환 신임사장도 사업을 하다보면 얼굴을 붉힐 일도 있을 텐데 그래도 초심이 변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김회장은 그거라면 믿어달라고 확답을 주었다고 한다.

다우기술이라면 아직도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이지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만큼 일반인에게 친숙한 회사가 아니다. 1997년 8월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때의 일이다. 공모가 4만8,000원짜리 주식이 전장 동시호가등으로 결정된 기준가가 7만2,000원으로 발표되자 증권산 객장에서는'다우기술이 도대체 어떤 회사냐'는 소리가 터져나왔을 정도다. 누구에게나 쉽고 편리한 컴퓨터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는 다우기술이지만 업무성격상 일반인 보다는 관공서, 대기업, 주요기관을 대사응로 마케팅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다우기술의 시작은 외국의 유명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판매였다. 그래서 기술개발보다는 마케팅에 치중했고, '돈벌이에 급급한 회사'라는 소리도 들었다. 지금도 외국의 소프트웨어사로부터 하이테크 시술에 대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국내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전산망을 구축해주는 영업구조를 갖고 있지만 자체 기술개발에도 열심이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인 인포믹스, 인터넷 접속프로그램인 네비게이터, 보안 솔루션 및 전자상거래 체제, 그리고 대기업 관공서 군 등의 전산시스템을 관리하는 시스템 통합 등이 주력상품이다.

최근 무섭게 떠오른 벤처 기업가와는 달리 그는 회장님이다. 유망한 벤처기업들로 이뤄진 '벤처그룹'을 이끌고 있다. 소프트웨어, 인터넷, 전자상거래, 시스템 통합, 데이터웨어하우칭, 벤처캐피털 등 서로 다른 사업을 벌이는 계열사만 16개다. 다우기술의 매출은 716억원에 당기 순이익 84억에 불과하나 계열사 매출을 모두 합치면 4,000억원에 당기순이익은 200억원이 넘는다.


16개 계열사 둔 '벤처그룹'

사실상 '그룹회장'으로 올라선 김 회장이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은 다우기술의 첫 상장때다. 창업 직후 어느날 직원들과 함께 서울 근교의 산에 올라가 "10년후에는 반드시 기업으 공개한다"고 한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 산에서 주창했다고 해서 '산(山)경여'이라고도 불리는 그이 경영방침은 한마디로 '벤처마인드'의 활성화다.

'사원의 창조성과 호기심, 바이오 리듬을 최대한 키운다', '앞으로 가장 유망한 정보산업에만 전몀한다', '회사는 작아도 큰 회사 못지 않는 일을 한다', '정직하게 일하고 도덕심을 잃지 않는다' 등이 일부 직원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철학이다.

오랜만에 10년전을 회상하는 그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중소기업이면 실력과 능력에 상관없이 무조건 무시당했어요. 사람을 뽑기도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래서 스톡옵션 주고 인센티브주고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별짓을 다했지요. 요즈음에야 그런 것이 유행인데 우리 벌써 10년년부터 그랬어요. 그런 면에서 벤처바람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려운 통계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숫자에 능하다. 다우기술의 오래 매출과 순익 규모를 지난해와 비교하고 향후 성장률을 수치고 자세히 설명해준다. 뿐만 아니다. 벤처 캐피털회사인 IT벤처와 같은 자회사의 매출과 순익 규모도 쉴새없이 튀어나온다. 김회장 앞에서 통계를 잘못 인용하다간 큰토 다치지 일쑤라고 한다.

추측컨데 그에게는 그만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잘나가는 회사'인 한국IBM을 때려치고 1981년 세운 큐닉스가 금융부문에 잘 못 뛰어들었다가 망하는 과정을 지켜본 탓일게다. "큐닉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취급하는 회사였어요.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고 회사는 무겁게 커갔어요. 그런데 금융부문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다가 한순간에 모든 걸 말아먹었어요. 경영진이 숫자에 약했던 탓이 아니었던가 싶어요."

그는 그때 이미 큐닉스를 떠난 상태였다. 그러나 '키움닷컴'을 통해 본격적으로 금융 분야에 뛰어든 김회장은 큐닉스의 '성공과 실패'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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