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돈’이라고 했다. 한국 영화사로는 최초로 해외자본인 미국의 벤처투자사 워버그 핀커스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시네마 서비스의 강우석 대표는 이 말을 썼다.

그가 끌어들인 돈은 우선 200억원.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향후 5-7년동안 파트너로 지내면서 필요하면 150억원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워버그 핀커스가 제작이나 경영에 간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댓가로 시네마 서비스는 지분 35%를 내주었다. 그가 해외투자 자본을 “건강하다”고 한 이유는 이렇다.

“지금까지 한국영화를 찍으면서 그때마다 자금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몇편을 성공해도 한번 실패하면 다시 영화를 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 정말 믿음을 가진 집단이 있다면 회사 절반을 팔아서라도 자본을 공급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4달동안 정밀진단을 해본 워버그는 시네마 서비스의 현재와 미래를 믿었다. 그래서 ‘믿음’으로 투자를 결정했다. 그 믿음이란 결국 충분한 투자익익을 남겨주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영하의 흥행성공에 따른 이익과 그것을 발판으로 미래 시네마 서비스 주식의 상승이익을 동시에 노린 전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석이 ‘건강한 돈’이라고 말한 것은 그동안 국내의 영화투자자금이 훨씬 가혹하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그는 “지난해 삼부파이낸스, 상업투자금융, 미국의 폭스 등으로부터 15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그러나 은행이자보다 높은 금리, 원금상환, 수익금 상환, 40%가 넘는 제작사의 몫에 따른 차입경영의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컸다. 결국 시네마 서비스의 몫은 수익의 15% 정도에 불과했다. 100억원이면 금융비용이 40억원에 달하고 더구나 어느 정도 흥행성공이 예측되는 특정영화에만 돈이 몰렸다. 그러나 이번 돈은 그렇지 않다. 그야말로 시네마 서비스의 돈이다. 정말 만들고 싶었던 영화, 주저했던 일을 마음것 펼칠 수 있다.”

그 돈으로 강우석은 “건강하고 좋은 한국 영화를 많이 만들겠다”고 했다. 아마 그가 말하는 좋은 영화란 작품성도 높고 흥행도 잘되는 영화일 것이다. 그것은 그가 앞으로는 정말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일을 저지르고 보는 짓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흥행산업의 속성상 이제 시네마 서비스는 더욱 더 상업적 전략에 집중할 것이다. 자본의 거대화로 쿠엔필름이 기획한 50억원짜리 대작 ‘제노사이드’도 이제는 만들어질 수 있게 됐다.

그가 말하는 건강성은 자신의 영화사의 투명성이고 투자자본의 합리성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좋은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좋은 영화를 위해서는 또다른 건강한 자본이 필요하다. 정말 필요한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돈. 어떤 의미에서는 지난달 정부가 영화진흥정책으로 향후 4년간 지원키로 한 2281억원이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일방적인 지원과 그것의 무책임한 수혜보다 더 아름다운 돈이 있다.

유니코리아는 국내 투자조합. 당연히 손해를 보면 안되는 곳이다. 염태순 대표는 그 손해를 각오했다. 영화가 흥행산업이니 누구나 생각하는 각오라기 보다는 예상을 하고도 투자를 했다. 그는 이창동 감독이 “5억원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십시요”라는 말을 흔쾌히 받아들면서 ‘박하사탕’에 투자를 결정했다.

당연히 이창동 감독은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40만명의 관객동원으로 오히려 이익을 남겼다. 유니코리아는 또한번 손해를 각오하고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에 투자했다. ‘박하사탕’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돼 격찬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웠고 올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오, 수정’은 올해 처음 열리는 전주 국제영화제(4월28일~5월4일)개막작이 됐다.

지금 영화계는 덩치키우기가 한창이다. 우노필름은 벤쳐기업과 연예인 메니지먼트회사와 손을 잡았고 강제규필름은 종합기술금융의 돈을 끌어들였다. 적어도 한국영화의 투명성과 제작능력의 한부분을 높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영화가 건강하고 커지지는 않는다. 작지만 유니코리아같은 존재도 필요하다. 영화는 건강하고 즐겁기도 해야하지만 아름답고 가치도 있어야 한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leedh2hk.co.kr

입력시간 2000/04/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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