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정몽헌 현대전자 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벌였을때 사람들은 KBS의 인기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을 떠올렸다.

함경도 영흥의 변두리 장수였던 이성계가 천신만고 끝에 제국을 건설하고 그 아들들이 후계 싸움을 벌였던 것이나, 강원도 산골 가출소년이었던 정주영씨가 ‘현대그룹’이라는 대기업을 세우고 역시 그 아들끼리 골육상쟁을 벌인 것이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왕자의 난-그후’는 어떨까. 왕권 쟁취를 위해 형제를 서슴없이 죽인 이방원도 민심은 두려워 했다.

그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아버지 태조가 강행했던 한양 천도를 뒤엎고 서울을 개성으로 다시 옮겼다. 또 권력구도상 손쉽게 왕위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비록 허수아비이기는 했지만 맏형격인 방과(정종)에게 임금의 자리를 맡겼다.

하지만 현대판 ‘왕자의 난-그후’는 ‘조선시대 버전’과는 사뭇 다르다. 현대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수준이었다.

3월30일 정몽헌 회장이 부랴부랴 ‘21세기 발전전략’을 발표했으나 ‘립 서비스’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이날 발표된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 구축’이나 ‘사외이사 비중의 50% 확대’ 등은 이미 1~2년전에도 등장했던 메뉴들이었다.

4월26~27일 주식시장에서 터진 ‘현대 쇼크’는 분노한 민중들의 민란이 아닐까. 어느 왕조를 막론하고 민란은 그 체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음을 알리는 전조이다. 현대그룹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내놓을 ‘현대쇼크-그후’를 주목한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04 16:46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