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경제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정책당국의 능력에 의문을 갖는 국민이 많다. 최근 불거진 몇가지 사례가 그렇다. 지난주 종합주가지수 700선 재붕괴의 원인은 바로 ‘현대 쇼크’였다. 촉발은 정책당국의 ‘현대투신 공적자금 배제’언급에서 비롯됐다.

사실 투신구조조정은 지난해 말부터 예고돼온 것이고, 한국투신 대한투신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과 현대투신의 대주주 부담론도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현대그룹은 미진한 구조조정과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 바이코리아펀드의 편법운용 등으로 시장의 따돌림을 받던 터였다.

현대그룹을 둘러싼 악재가 가득하고 시장의 체력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마당에 이용근 금감위원장의 ‘현대투신 공적자금 배제’ 발언은 시장에 파문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발언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책당국자의 신중치 못한 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오락가락 정책이 혼란 가중

정책당국은 다음날 외국인과 기관의 현대그룹주 투매로 증시가 급락하자 부랴부랴 사태를 수습하느라 안간 힘을 썼다. ‘현대에 유동성 지원’, ‘금리인상 당분간 없다’, ‘현대 문제없다’는 등 정책당국이 총동원돼 엎질러진 물을 되담기에 급급했다.

특히 금리인상 문제는 전날 전철환 한국은행총재가 한 강연에서 “인플레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말로 금리인상을 시사했으나 다음날 경제정책 장관회의에서 부인성 발언이 나오는 바람에 한국은행이 반박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정책당국은 한차례 수습을 마무리한 뒤에는 동양증권이 보고서를 잘못내 사태가 발생했다며 ‘책임 떠넘기기식 문책’을 시도해 증권가의 반발을 샀다.

전날 이용근 금감위원장의 발언이 미칠 영향을 분석한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와 참여연대 주장 등을 요약한 수준의 보고서에 불과했을 뿐인데 마치 이번 사태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쳐 ‘정책당국의 모럴 해저드’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정·재계간 갈등도 그렇다. 정책당국은 총선 직후부터 국세청과 공정위의 재계 세무조사와 대주주의 주식이동조사 등 전방위적인 공세를 펴왔다.

그러나 시장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신뢰회복에 나섰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은 지난주 말 가진 경제단체장 긴급회동에서 “세무조사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특정 그룹을 겨냥하지도 않고 있으며 특별 세무조사는 한 건도 없다’며 재벌 끌어안기에 애썼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잘했다”고 재벌들을 치켜세웠다.


“정부가 시장불안 증폭시킨다”

대우차 인수를 둘러싼 정부의 태도변화 조짐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정부는 현대의 대우차 인수시도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절대 불가’ 입장을 누누히 밝혔다.

하지만 최근 해외매각설에 대한 반대여론이 많아지고 자동차 노조의 연대파업 등으로 상황변화의 움직임이 보이자 한발 물러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 고위인사가 현대자동차 이계안 사장을 만나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해외파트너와 제휴해 대우차 인수에 적극 나서줄 것을 건의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말이 바뀌고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은 도대체 뭐가 뭔지 어지럽기만 하다는 반응이다.

“정책 당국자의 발언이 시장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됐다”고 꼬집은 한 투자자는 “정부가 시장을 안정시키기는 커녕 불안감을 심어준다”며 불신감을 나타냈다. 외국계 증권사도 “한국 정책당국자의 말이 오락가락해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외국투자자들이 적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증시침체와 무역수지 흑자급감, 물가불안 압력 등 경제의 불안정이 갈수록 심화하는 지금 정책당국자의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한 때다.

이충재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0/05/0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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