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주축으로 개혁 필요성 공감

“여야를 막론하고 젊은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개혁그룹을 구성하겠다. 이를 통해 크로스보팅(교차투표) 등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해서 국회 개혁을 힘있게 추진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장성민·민주당)

“크로스보팅을 정착시킴으로써 여야간 정쟁을 지양하고 정책대결을 정착시켜 나가겠다.”(원희룡·한나라당)

“젊은 신진에게 기대는 많고 힘은 적다. 소신과 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임종석·민주당)

“국회에서 시민운동의 경험을 살려 투명한 의정활동을 펴겠다. 정치개혁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당내 민주화 논의를 활성화시켜 나가는데 앞장서겠다.”(서상섭·한나라당)

“국회운영과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투명한 유리상자처럼 일반인이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후원회 계좌 정기공개를 의무화함으로써 정치자금을 양성화하고 지구당제도를 폐지하며 완전한 선거공영제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정진석·자민련)


정파 떠난 연대 주창

386세대를 주축으로 하는 16대 국회 초선의원들의 각오가 단단하다. 당론이란 미명 아래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던 의원들의 투표행위를 공격하고 정파를 떠난 연대를 주창함으로써 정치개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는 ‘젊은 피’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정치물을 웬만큼 먹은 중진과 재선의원 중에서도 상당수가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줄서기 정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총재의 공천권 행사를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지구당 당원이 국회의원 후보를 직접 선출하는 미국식 예비선거제도가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손학규·한나라당)

“공천과정에서 ‘아래로부터의 검증’을 제도화해야 한다. ‘국회의원 후보 사전 등록제’를 실시해 공천희망자들이 선거일 상당기간 전부터 시민단체와 여론의 검증을 받아 걸러질 수 있게 해야 한다.”(이해찬·민주당)

“국회의원 활동비의 80% 이상을 잡아먹는 지구당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지방자치시대가 정착한 마당에 국회의원을 ‘지역민원 해결사’역할에 묶어둬서는 안된다.”(정우택·자민련)

이들의 말대로만 된다면 한국 정치는 그야말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그래서 5월30일 개막되는 16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국회의 위상강화란 제도적 발전과 대국적인 정치구도 변화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정치실험에 대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386신진과 개혁적 중진의 결심이 단순한 인사치레로만 들리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회 위상강화는 올해 초 개정된 국회법에 힘입었다. 연중 상시 개원체제 도입, 실명 전자투표제 도입, 예산결산특위 상설화, 공청회·청문회제도 활성화 등이 그것이다. 제대로 순항한다면 의원의 책임정치 구현과 행정부에 대한 감시·통제기능 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정치구도 변화는 양당구도 아래 여소야대 상황이 출현한 것을 의미한다. 여야간, 나아가 대통령과 야당 총재와의 대화와 타협을 강제하는 여소야대의 양당구도는 새로운 정치모델을 창출할 가능성이 크다. 당리당략에만 몰두해 ‘정쟁의 링’이란 오명을 뒤집어써온 국회와 정치권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는 기대는 여기서 나온다.


보스정치 타파해야 진정한 개혁

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높다. 한 옥타브를 높여 정치관행을 바꿔 생산적 정치를 정착시키기는 아직 요원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근본적인 개혁없이는 386의 의지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개혁세력에 활동공간을 부여하기 위해 선결해야 하는 과제는 보스정치의 타파다. 보스정치는 공천 및 정치자금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다.

보스가 공천을 독점하고 정치자금을 시혜적으로 배분하는 정치행태는 보스정치를 확대 재생산할 수 밖에 없다. 보스정치의 극성기를 이뤘던 ‘3김 시대’가 황혼을 바라보는데도 불구하고 구태가 계속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스정치는 공천과 돈을 매개로 비민주적 당운영, 국회의 전장화를 부른다.

보스정치가 타파되지 않으면 개정된 국회법도 있으나마나가 된다. 전자투표제가 대표적이다. 무기명 투표와 달리 개별 의원의 의사가 명백히 기록되는 전자투표제는 크로스보팅이나 당내 반발표를 차단하게 된다. 보스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탓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기명투표는 의원들의 태도를 유권자에게 분명히 함으로써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기본 중의 기본 장치. 과거 독재시대의 유산으로 지탄받아온 국회의원의 무기명 투표 관행을 없애는 일이 보스정치란 암초에 걸려 있는 셈이다.

보스정치 타파로 요약되는 당내 민주화는 ‘하향식 공천’과 정치자금 획득 방식을 전면 수술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공천과 정치자금 문제는 지구당 운영행태와 직결돼 있다.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는 지구당은 의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보스의 시혜나 이권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올 초 개정된 정당법은 유감스럽게도 지구당 폐지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의원에게 정치자체가 직업이 돼야

국회 상시개원 체제에도 허점은 많다. 상시개원 체제의 핵심은 짝수달인 2, 4, 6월에 각각 30일 회기의 임시국회를 열 수 있도록 한 것. 연초에 임시국회 계획을 공지해 의원들이 이에 맞춰 일정을 짤 수 있도록 한다는게 취지다.

정기국회 100일과 임시국회 90일을 합하면 연간 통상 회기일수는 190일이 된다. 하지만 3차례 임시국회 개원도 강제규정이 아니라 반드시 소집된다는 보장은 없다. 190일 회기일수가 채워진다 해도 ‘상시개원’과는 거리가 멀다. 상시개원의 전형은 의원들이 원칙적으로 휴가를 제외하고는 의사당에 출근해야 하는 미국식 제도에 있다.

의원에게는 정치 자체가 직업이 돼야지 부업이 돼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다수 현역의원이 본회의 출석률 저조를 이유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리스트에 오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6대 국회 개원 직후 또다시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된다. 4월24일 있은 여야 영수회담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여야 보스가 합의해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15대 국회에서도 1998년 1월 특위가 구성돼 올 2월까지 운영했다. 하지만 결과는 개혁이 아니라 ‘흥정’에 가까웠다. 정략적 계산에만 사로잡혀 병의 뿌리는 건드리지 못했다.

4·13총선 투표 참가율이 역대 최하였던 이유도 크게 보면 여기에 있다.

새로 출범할 정치개혁특위는 386세대 등 소장파 의원과 기존 당권파(黨權派) 세력, 시민단체의 의지가 어우러진 복잡한 전투장이 될 전망이다. 시민단체들이 특위에 요구하는 것은 크게 세가지. 우선 정치자금법에 ‘정치자금 단일계좌 입출금제도’와 ‘100만원 이상 정치자금의 수표사용 의무화’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는 공천절차의 민주화. 시민단체들은 “공천과정에 하자가 있을 때는 당선무효까지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은 현역의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현행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

정치개혁특위의 책임은 막중하다. 16대 국회가 15대 국회의 전철을 밟을지 여부는 상당부분 이 특위에 달렸다.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 구호는 지금 필요하다. 한국 정치에서 사령부는 보스정치이고 바로 ‘3김’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04 19:39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