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Viagra)’

잘 알다시피 밤이 무서웠던 ‘고개 숙인 남성’의 자존심을 세워준 세계적 히트 의약품이다. 기적같은 이 약을 만들어낸 회사는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Pfizer)다. 고개 숙인 남성들이 비아그라의 절묘한 약효를 톡톡히 보았다면, 화이자는 비아그라의 금전적 혜택을 가장 많이 본 회사인 셈이다.

실제로 1998년 4월 출시된 비아그라는 화이자를 일약 돈방석 위에 올려놓았다. 1997년 110억5,500만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해 세계 7위의 제약기업에 머물렀던 화이자는 1998년에 매출액이 135억4,400만달러로 23%나 증가한데 이어 1999년에도 매출액이 162억달러를 돌파해 업계 3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지난 2월에는 90억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워너 램버트(Warner Lambert)를 인수, 세계 2위 업체로 도약했다. 현재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화이자는 세계 80여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140개 국가에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총 종업원수가 5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이자는 비아그라라는 히트 상품 때문에 우뚝 선 회사”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오해다. 1849년 독일계 이민이 미국 뉴욕에 창립한 화이자의 지난 151년 성장사는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전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회사운명 뒤바꾼 2차세계대전

1849년 독일에서 이민 온 찰스 화이자(Charles Pfizer)와 찰스 에어하트(Charles Erhart) 사촌형제가 뉴욕 브루클린에 ‘화이자’라는 간판을 내걸 때만 해도 화이자는 제약업체가 아니었다.

화이자는 창립이후 100년 가까이 비타민, 향료, 감미제, 구연산 등을 생산하는 정제 화학업체였으며 1941년 매출액은 1,000만달러에 불과했다.

화이자의 운명을 바꾼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 정부는 전장에서 발생하는 부상자들을 치료할 페니실린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1928년 플레밍이 발견하기는 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할 수 없었다. 미국 정부는 대량 생산기술을 공개 입찰에 붙였는데 이때 발효기술을 이용해 페니실린을 만들어낸 회사가 화이자였다. 이후 화이자는 정제 화학회사에서 항생물질을 주축으로 하는 제약회사로 변신을 시작했다.

그러나 2차 대전이후 화이자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정부의 지시로 제조 기술이 공개되면서 경쟁업체들도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100년이상 자체 판매조직없이 다른 제약회사에 제품을 도매로 넘겨온 화이자에게는 존폐를 가름하는 큰 위기였다.

1950년대 화이자의 최고경영자인 존 매킨(John E. McKeen) 회장은 판매망과 마케팅에 운명을 걸었다.

매킨 회장의 전략은 의사들을 직접 공략하는 것이었다. ‘돌팔이 장사꾼’이라는 혹평에도 굴하지 않고 의사들이 모이는 골프대회의 스폰서를 자처했고 신약 샘플도 무료로 나눠주는 등 이전까지는 업계에서 상상도 못하던 판매전략을 구사했다.

결국 “저러다가 망할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경쟁 업체들도 뒤늦게 화이자를 쫓아왔으나 이미 화이자는 굳건한 판매망을 갖춘 상태였다.


시대를 앞서간 경영전략

1950년대에 펼쳤던 마케팅 위주의 전략이 브레이크에 걸리자 화이자는 1963년 프랑스 향수회사인 코티(Coty)를 2,600만달러에 사들이는 등 문어발식 확장에 나서게 된다. 이에 따라 1972년 화이자의 매출중 의약품의 비중은 총매출(10억9,336만달러)의 절반을 조금 넘는 5억5,800만달러에 불과했다.

화이자가 지금처럼 제약전업의 체제를 갖춘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당시 대부분의 제약기업은 1970년대 화이자가 그랬던 것처럼 의약품 이외의 분야에 진출하는 등 사업다각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반면 화이자는 제약과 관련이 없는 사업분야를 매각하고 기업의 무게중심을 100% 의약품 생산에 집중시키는 순수 제약기업의 성장토대를 마련하였다. 화이자의 이같은 경영전략은 ‘단기 수익성’을 중시하는 월가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화이자의 경영전략은 10년이 지나면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비아그라는 물론이고 고지혈증 치료제인 리피토, 치매치료제 아리셉트, 광범위항생제 트로반, 관절염치료제 쎄레브렉스 등을 히트시키면서 주가와 기업의 신용등급이 급등하고 있다.

실제로 화이자는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으로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뽑혔고 무디스와 S&P로부터 최고의 장기신용등급을 인정받고 있다.


1969년 한국진출, 관행 깬 판매시스템

그렇다면 화이자는 한국에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출했을까. 여느 다국적기업과 마찬가지로 화이자 역시 한국이 본격적인 산업화에 돌입한 1960년대 후반에 국내 자본과의 합작 형식으로 진출했다.

한국화이자는 1969년 1월15일 화이자가 당시 중앙제약과 50대50의 비율로 자본금 3억9,000만원을 투자해 만들어졌는데, 1998년 화이자가 국내 지분을 인수하면서 화이자의 100% 자회사가 되었다.

한국화이자 노정순 홍보부장은 “지난해 매출액이 약 840억원에 달하는 한국화이자는 한국 제약업계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자부했다.

노부장은 “한국화이자는 복잡하고 전근대적인 한국의 제약유통 관행과는 달리 선진적인 판매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부장에 따르면 한국화이자는 의사들에게 필요한 전문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국제적으로 인정된 임상실험기법을 소개하는 등의 방법으로 판매망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최근 한국화이자는 정부의 의약분업 시행방침에 따라 그동안 병원 위주로 편성됐던 판매조직을 약국 중심으로 개편중이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약국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한국화이자로서는 중대한 상황변화”라고 말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04 20:03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