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세상의 자유주의자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한메일(hanmail.net) 무료 서비스는 돈 때문에 ‘인터넷의 바다’ 앞에서 머뭇거리던 네티즌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회사에 노출되지 않는, ‘나만의 은밀한’ 메일 주소를 원했던 젊은 직장인, 학생, 자영업자들이 무료 E-메일을 받기위해 앞다퉈 신청서를 냈다.

2만~3만의 회원을 모으기에도 힘에 부치던 시절에, 한메일은 입소문을 통해 몇달만에 10만명을 가볍게 넘어섰고 IMF 위기의 한파가 절정이던 1998년4월께부터는 오히려 가속도가 붙어 그해 12월에는 100만번째 가입자가 나왔다.

“어느날 정보를 처리하는 웹서버가 다운됐어요. 접속이 한꺼번에 몰리니까 서버가 처리를 포기한거죠.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무료 E-메일을 처음 시작할 때 얼마나 불안했는데요. 돈만 쓰는게 무료 서비스잖아요. 그런데 봇물이 터지듯이 회원수가 늘어나자 신바람이 나 고된 줄도 몰랐어요.”

이재웅 사장과 초창기부터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한 차장급 직원은 그 시절을 아픈 상처를 쓰다듬듯 회고했다.


500만명이 한메일 이용

무료 서비스를 시작한 후에 다음의 어려움은 더 컸다. 바로 돈 때문이었다. 지금도 다음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지만 회원이 느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달랐다. 다음측에서는 완강히 부인하지만 무료 회원이 3만~4만명을 넘어갈 무렵 다음은 회원들을 상대로 주식공모를 하기도 했다.

H사에 다니는 한 K모씨는 “무료 서비스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겠어요? 1997년에 한메일에 가입했는데 언젠가 다음 주식을 주당 1,000원에 모집한다는 E-메일 안내서가 오더라구요. 그 때는 이걸 누가 1,000원에 사나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500주만 사뒀어도…”라고 아쉬워했다.

회원수가 100만을 넘어가면서 다음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사이버 우체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 한메일을 이용하는 고객은 줄잡아 400만~500만명. 인구의 10분의1 정도가 한메일 사이버 우체국을 통해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계산이다. 진짜 우체국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재웅 사장은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했다. 인터넷 시장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넓어지면서 회원이 엄청나게 늘었고, 그 회원수를 바탕으로 때마침 불어닥친 코스닥 열풍을 고스란히 돈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운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무료 E-메일 서비스도 그만한 기술력이 없었다면 고객이 등을 돌렸을 것이다. 이 사장과 함께 다음을 세운 이택경 CTO(개발담당 책임자)는 광주 비엔날레, 서울 국제만화 페스티벌95 등을 만들어낸 실력자다. 한국일보에서 주최한 홈페이지 경연대회에서는 버추얼갤러리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소비자와의 접점 찾아 신뢰 심어줘

이 시장은 소비자층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서 맞춰주는 ‘눈높이 마케팅 전략’을 다음의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그래서 그는 인터뷰 내내 소비자와의 접점을 강조했다.

다음 고객의 가장 큰 불만가운데 하나인 개인별 디렉토리 기능(다음 웹서버로 온 메일을 다른 계정에서 열어볼 수 있는 POP3나 IMAP4 서비스)을 제공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보안상의 문제 때문에 한메일 서버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는데 이제는 괜찮다”는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그럴 경우 많은 회원이 굳이 다음에 접속하지 않을텐데 다음으로서는 손해가 아닐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하자 이 사장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인터넷 시장에서 회원수는 이제 의미가 없어요. 믿음이 중요합니다. 전자상거래한다면서 그 사이트를 믿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돼요. 믿음은 고객들과 접점을 찾으려고 꾸준히 노력해야 생기는 것이고 인터넷 세상에서 뭘 막는다는 거, 그게 가능한가요?. 그것 열어둔다고 다음의 기업가치가 떨어진다면 다른 아이템을 개발해야죠.”

그의 말은 자신감에 차 있다. 사실 자유란 그가 학교때부터 꿈꿔온 단어다.

“학교(용산고와 연세대) 다닐 때 머리는 자유로웠는데 행동은 항상 막혔어요. 프랑스에서 진정한 자유를 맛봤죠. 자유는 사람에게 활력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경영철학은 직원을 구속하지 않는 것이다. 밤새워 일하면 다음날 늦게 나오고 일찍 들어가면 스스로 알아서 일찍 출근할 것이라고 믿는 경영자다.

다만 그는 경영자로서 다양성과 스피드(속도)를 요구한다. 다음이란 회사이름도 다양한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다음’(多音)에서 나왔다. 다음의 영어뜻인 ‘넥스트’(NEXT)는 미래를 지향하는 스피드와 일맥상통한다.


해외시장 진출 계획

이재웅 사장은 올해 경영목표를 수익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데 두고 있다. 가장 큰 수익은 광고다. 지난해 매출 77억가운데 광고가 53억원으로 전체수익의 69%를 차지한다. 업계의 2,3위권이다.

그러나 인터넷 광고 효과에 대한 신뢰감이 추락하면서 다음을 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않다. 이 사장은 “선두업체의 광고 단가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면서 “광고 외에도 전자상거래 매출이 지난해 8%에서 10%로 늘었고 해외시장을 겨냥한 E-메일 호스팅서비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의 E-메일 호스팅 서비스는 본궤도에 오른 느낌이다. ‘처리용량이 남는 웹서버를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스페인의 E-메일 서비스 업체인 믹스메일을 만났다.

다음은 믹스메일에 대용량의 메일 처리기술과 노하우를 이전했고 믹스메일은 벌써 회원수가 150만명을 넘어섰다. 수익 또한 증가해 스페인 중국 일본 이탈리아 등지에서 지난해 12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앞으로 남는 과제는 콘텐츠의 다양화입니다. 타임워너, 디즈니에 이어 세계 3위의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베텔스만과 세계 2대 인터넷 광고대행사인 24/7 미디어와 손을 잡았어요. 이 제휴선을 통해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적극 진출할 계획입니다.”

다음은 또 실시간 메시징 서비스업체인 유인 커뮤니케이션을 인수해 메신저 및 채팅 서비스 등을 통한 커뮤니티 강화에 나섰다.

현재는 8만5,000여개의 동호인 단체와 전자 쇼핑, 금융, 뉴스, 경매 등 20여종의 방대한 컨텐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장은 “한메일 서비스를 바탕으로 통합 메시징 시스템을 구축하고 컨텐츠를 강화하면 토종 포털서비스의 자존심을 계속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음이 지난해 12월 청담동을 떠나 현재의 삼익빌딩으로 옮겨온 것도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05/0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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