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급습 강제구인, 곳곳서 비난 쏟아져

최근 엘리안은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져 작은 침대에서 기어나와 큰 삼촌인 라자로가 자는 거실로 가곤 했다. 하루는 엘리안이 라자로에게 다가가 “무서워요. 사람들이 나를 데리러 오나요?”라고 계속 물었다.

도나토 달림플도 청바지와 폴로셔츠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있다. 선교사 출신인 달림플은 추수감사절 엘리안을 구한 어부중의 한명이다.

그는 엘리안을 지키는 것이 신의 계시라는 믿음으로 최근에 곤잘레스의 집에 눌러살고 있다. 그는 비명소리와 쿵쿵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꿈인줄 알았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이민국 직원들이 집에 진입하자 그는 엘리안을 안고 침실로 도망가 문을 잠그고 옷장 속에 숨으려 했다.

그러나 옷장에는 옷이 너무 많아 문이 닫히지 않았다. MP5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이민국 요원들은 엘리안의 사촌 마리슬레이시스에게 “꼬마는 어디있냐”고 소리쳤고 마리슬레이시스는 “엘리안을 넘겨줄테니 제발 총을 치워달라”고 사정했다.

요원들은 집안을 수색하면서 거실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과 대형 예수그림을 망가뜨렸고 침실문을 부수고 들어가 달림플에게서 엘리안을 빼앗아 대기하고 있던 흰색 미니밴을 타고 떠났다.

엘리안이 탄 비행기가 워싱턴 DC에 착륙하자 엘리안의 아버지 후안 미구엘 곤잘레스가 올라가 엘리안을 안고 내려왔다. 앤드류 공군기지내의 숙소에 도착한 곤잘레스는 이민국 요원들을 초청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엘리안은 여느 여섯살 꼬마와 다름없이 바닥에서 놀고 있었다.


클린턴 “아버지와 빨리 재회해야”

양측은 이날 오후쯤 서로에게 유리한 사진을 각각 공개했다. 엘리안에게 반자동소총을 겨누고 있는 연방요원의 모습을 찍은 AP통신의 사진이 공개됐다. 불과 몇시간 뒤 정부는 엘리안과 아버지가 서로 웃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그동안 재닛 리노 법무장관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해왔다. 리노 장관은 마이애미의 엘리안 친척들의 태도가 바뀌기를 끈질기게 기다렸고 그의 이같은 방식에 대한 비판도 많았지만 결국 법은 자신의 편이 될 것이라며 참아왔다.

그러나 애틀란타 연방항소법원이 엘리안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결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자 리노 장관은 실의에 빠졌다.

백악관도 리노 장관의 끝없는 인내에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오클라호마 폭발사건 5주년 기념식에서 돌아오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리노 장관은 클린턴 대통령과 이 문제를 숙의했다.

엘리안을 데리고 올 방안을 검토하면서 리노 장관은 마이애미의 집에 총이 있을 가능성이나 시위대와의 충돌 등 최악의 경우를 대비했다.

그러나 리노 장관은 가능한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클린턴 대통령도 리노 장관과 뜻을 같이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몇시간 뒤 백악관에서 가진 담화를 통해 “나는 엘리안이 가능한 빠르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아버지와 재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이애미 협상 결렬

괴로운 한 주였다. 컬럼바인 총격사건과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발사건 기념일이 줄줄이 예정돼 있었다. 리노 장관은 금요일이나 부활절인 일요일은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리노 장관은 이민국 간부에게 “만약 협상이 결렬된다면 토요일이나 월요일을 택하고 오전 6시 이전에 끝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리노 장관이 곧 움직일 것이라는 소문은 금요일 오전 금방 퍼졌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리노 장관은 법무부빌딩 5층의 집무실에서 양측을 중재하고 있는 마이애미의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마이애미대학 총장인 태드 풋이 이끄는 중재단은 냉각기간을 갖자는 제안을 했다.

양측이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제3의 장소에서 이웃해 지내면서 엘리안도 양쪽에 모두 적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리노 장관도 이 중재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가지 조건을 붙였다.

엘리안은 즉각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야 하고 합의는 문서로 가능한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리노 장관은 “만약 금요일 밤중으로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더이상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 리노 장관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협상안을 보고했다. 정부 실무팀은 이날 자정께 협상타결에 대비해 새벽 3시30분까지 마이애미 연방법원에서 엘리안을 넘겨받아 워싱턴으로 이송하고 소아심리 전문가 3명을 배치하는 등 구체적인 실행지침을 마련했다.

중재단의 일원이자 리노 장관의 30년 친구인 포드허스트 변호사는 새벽 3시쯤에는 양측이 타결 직전까지 갔으나 리노 장관이 갑자기 제동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리노 장관은 “가족들이 묵을 제3의 장소가 워싱턴 근처이어야 하며 마이애미는 안된다”고 단서를 달았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동의하더라도 새벽에 쿠바계 미국인 지도자들을 일일이 깨워 이같은 조건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카스트로, 미국에 감사의 뜻 표명

새벽 4시. 리노 장관은 참모들을 모두 소집했다. 고심하던 리노 장관은 중재단에게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고 말한 뒤 이민국장 도리스 마이스너에게 작전개시명령을 하달했다.

엘리안이 묵고 있는 마이애미집을 지키고 있던 에디 곤잘레스(40)는 밀려오는 이민국 요원들을 막으려 했으나 최루가스 세례를 받고 쓰러지고 말았다. 라우스토 빌라(18)는 소총 손잡이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NBC방송 오디오맨인 그스타프 몰러도 문 앞에 서있다가 자동소총 탄창에 왼쪽 눈가를 맞았다.

TV중계를 본 법무부 참모들의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강제구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법무차관 에릭 홀더는 “슬픈 일이지만 사람들이 이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간단한 결정조차 회피한데 실망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마이애미는 온통 난리가 났다. 마리슬레이시스는 “만약 그가 당신의 아들이었다면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집에서 질질 끌고갈 수 있겠느냐? 클린턴 대통령과 리노 장관은 우리 가족이 아니라 이 나라를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조 카를로 시장은 정부로부터 어떠한 사전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오후에는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한 행동은 범죄”라고 비난했다.

쿠바의 반응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카스트로는 클린턴 대통령과 리노 장관 및 미국 여론에 감사의 뜻을 표했으며 쿠바 TV는 마리슬레이시스의 격렬한 반응과 성조기를 태우는 장면 등을 계속 방영했다.

라자로와 친척들은 이날 오후 워싱턴으로 날아가 후안 미구엘과 클린턴 대통령은 물론 자신들에게 동조하는 의원들과 접촉했다. 그러나 미구엘은 접촉을 거부했고 그들은 앤드류 공군기지에서 저지됐다.

이 사건은 이제 시작이다. 소송이 몇 개월을 끌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마이애미에서 워싱턴으로 온 엘리안의 친척 릴리안 산티아고는 “법원은 엘리안을 우리에게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며 시위대를 진정시키고 있지만 법률전문가들은 이같은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정리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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