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익만을 위해 끝없이 싸울 때 “우리 정치판과 비슷하다”는 말을 한다. 목적을 외면하면서 그 목적을 입버릇처럼 외치고 상식을 들먹이며 실제로는 상식을 잃어버린 집단.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긴 시간을 허비한 집단들이 많다.

그같은 집단 중에는 영화인도 빼놓을 수 없다. 말은 어떻게 하든 철저히 자기 이익에 집착해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어떤 명분도 그 속에는 집단 이기주의가 숨어 있어 이제는 어느 쪽도 맑게 보이지 않는 그들.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 지원과 정책을 담당하는 기구로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유길촌)가 출범한지 1년이 됐다. 21세기 영화산업을 위해 영화인의 숙원이었던, 그들 스스로 끌고가는 민간기구의 탄생. 그러나 과거 정부기관인 영화진흥공사에 대해 그들이 가졌던 불신은 이제 갈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사이 위원장이 두 번이나 바뀌고 위원이 7명이나 새로 교체되는 몸살을 앓았지만 여전히 비틀대고 있다. 개혁을 표방하는 젊은 세대 위원을 여당의원이라고 가정하면 보수적이라고 분류된 노장파 중심의 위원은 야당의원인 셈이다.

실제 이들은 각각의 정당과 가깝고 또 그 정당들은 이들의 의견을 각각 지지한다. 등급외 전용관 문제, 영화제작 지원의 방법에서 그들은 대립했다. 위원선정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5월 처음 정부가 위원 10명을 선정했을 때 김지미, 윤일봉 등 보수세력은 자신들의 비중이 적다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른바 ‘여대야소’. 결과는 두 달도 안돼 위원장이 바뀌고 ‘여소야대’가 돼버렸다. 예상을 뒤엎고 부위원장으로 조희문씨가 선출되자 이번에는 개혁을 자처하는 젊은 위원이 무더기로 사퇴, 다시 반쪽이 돼버린 영화진흥위원회. 지난 1월 정부는 7명의 위원을 교체하는 수술을 단행했다. 대부분 여당의 입장,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영화인의 얼굴로만 바꾸었다. 또다시 여대야소.

새로 임명된 위원은 지난 1월22일 정부가 거의 내정하다시피 한 위원장을 선출하고는 조부위원장은 자신들이 뽑은 사람이 아니니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사사건건 걸림돌이 된다는 하소연도 했다. 그러나 조부위원장의 반박은 다르다.

7명의 위원 임명은 결원 보충이고 위원장도 공석이어서 선출한 것이지 전체 위원을 교체하거나 해산하고 새로 임명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 또한 이를 인정하기 때문에 위원장만을 새로 선출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갈등은 영화진흥위원회의 법인등록을 가로막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영진위는 4월22일 법인 등록을 해야 했다. 그날부터 발효된 새 영화진흥법은 기존 영화진흥공사 대신 민간기구 성격인 영진위를 특수법인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7명의 새 위원이 법인 등록에 필요한 부위원장에 대한 동의인, 지난해 9월 회의록의 추인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 참에 부위원장을 갈아버리겠다는 것. 조부위원장은 그렇다면 지금의 위원장 동의에 사인을 할 수 없다고 맞섰다. 법인 등록을 못한 영화진흥위원회는 법적으로는 여전히 과거 영화진흥공사이고 대표는 윤일봉 사장이다.

유길촌 위원장은 “상식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한다. 조부위원장 역시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 아예 상대를 몰아내고 자기들끼리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한다. 양측 모두 ‘상식’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문제는 그 상식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데 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이 곧 상식이다. 그러니 상식조차 없는 상대와는 타협도, 토론도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상식이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합리적 방향보다는 감정적 태도임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개혁세력은 다수의 힘을 이용해 영화진흥위원회를 장악하려 하고 보수세력은 부위원장이란 자리를 가지고 그들에게 맞선다.

여야도 이제는 국민의 눈총을 받아들여 비슷한 정책에는 협조하는 타협의 자세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들은 두 번이나 바뀌어도 여전히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밥그릇 싸움에 매달리고 있다. 덩달아 춤만 출 뿐 진정으로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영화인이 없어서일까. 그런 위원들이, 그런 영화인을 위해 거창하게도 한국 영화의 진흥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0/05/0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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