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북악산 자락에 자리한 삼청동(三淸洞). 서울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데다 삼청공원과 북악산의 산세가 수려하여 서울에서도 제일 풍치가 좋은 곳중 하나다.

‘삼청’이란 땅이름은 옛날 이곳에 도교(道敎)의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는데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삼청전엔 도교의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 등 3위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조 태조 때부터 소격서(昭格暑)를 두고 삼청전에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봄, 가을로 천제(天祭)를 행하였는데, 중종 12년(1517년)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제후(諸候)는 천제를 못하는 법”이라고 반대, 폐지되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먼 삼국시대 때부터 면면히 행해져오던 천제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삼청동에는 ‘오처사정’(五處射亭)의 하나인 ‘운용정’(雲龍亭)이 있어 푸른 녹음 속에서 선비들이 활을 쏘며 심신을 단련했다.

‘오처사정’이란 누상동의 ‘백호정’(白虎亭), 필운동의 ‘등과정’(登科亭), 옥동의 ‘등룡정’(登龍亭), 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과 삼청동의 운용정을 일컫는다.

이밖에 삼청동은 원래 산이 맑고(山淸), 물이 맑은(水淸) 데다가 사람의 마음까지 맑아지는 곳(人淸)이라 하여 ‘삼청(三淸)’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 조선조 때부터 ▲일 삼청 ▲이 인왕 ▲삼 쌍계 ▲사 백운 ▲오 청학 가운데 제일로 꼽았고 수석 또한 제일로 쳤으니 가히 ‘산청’이라 부를 만하다.

‘삼청의 골짜기 그윽하고 넓은데 푸른 잔디 흰 돌 사이엔 맑은 시냇물만 흐르네’라고 청음 김상헌(金尙憲)이 노래한 것만 보아도 이곳의 경치를 짐작할 수 있다.

또 물이 맑다, 즉 수청은 이곳에 약수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 군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옛날에는 이 골짜기의 물은 성신(星辰)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될 정도의 깨끗한 물이었다.

더욱이 구한말과 일제 때는 유명한 북청 물지개장수들이 이 골짜기의 물을 장안 곳곳에 배달했을 만큼 그 유명세가 더 하였다.

오늘날 수도물을 불신하는 풍조가 심해지면서 새벽 4시께부터 물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판이니 수청의 의미를 알만 하다.

‘수청’(水淸)이 아닌 ‘수청’(守 )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한때는 삼청동의 성북동 쪽에는 ‘삼청각’이라는, 장안에서 내노라는 일류 요정이 있어 ‘수청’의 몫을 톡톡히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인청(人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한 감사원이 공직자의 비리와 기강을 바로 잡는 ‘인청’(人淸)의 구실을 하고는 있으나 하필이면 5공 탄생의 주역인 국가안전보장위원회가 이곳에 자리잡았는 데다가 여기서 비롯된 악명높은 삼청교육대는 ‘인청’에 기여했다기 보다는 인권탄압의 산실이 되었으니 뒷날 역사는 산청, 수청, 인청의 삼청을 뭐라고 쓸 것인가.

입력시간 2000/05/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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