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충청도에서도 청풍(충북 제천시 청풍읍)은 맑은 바람의 한가운데에 있는 땅이다. 그래서 그 바람을 맞기 위한 정자와 누각이 널려있었다. 충주댐의 건설로 청풍의 많은 지역이 물밑에 잠겨버렸지만 다행히 그 땅에 있던 문화유산들은 한 곳으로 옮겨져 수장을 면했다.

망월산 기슭에서 충주호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청풍문화재단지는 청풍 수몰지역의 문화재와 유적을 옮겨와 재구성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82년부터 4년간 대역사가 진행됐는데 이제는 잔디가 파랗게 정착하고 담장의 덩굴도 울창하게 자라 어엿한 민속마을의 면모를 갖췄다.

단지에는 보물 2점, 지방유형문화재 10점, 비지정문화재 44점과 생활유물 1,9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창고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지 않았다. 잘 정돈하고 분위기에 맞게 애를 써서 배열했다.

가장 귀한 문화재는 보물 제528호인 한벽루(寒碧樓). 시리도록 푸른 산천을 감상할 수 있는 누각이란 뜻일까. 본루와 회랑 모양의 익루(翼樓)등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고려 충숙왕 4년(1317년)에 청풍현이 군(郡)으로 승격하면서 연회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문필가나 풍류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추사 김정희, 의암 송시열등 내로라하는 학자·명필들의 친필 액자가 그 명성을 말해 준다.

보물 제546호인 석조여래입상은 청풍면 읍상리 평등사 입구에 있던 것. 높이 3.41㎙의 큰 석불로 풍만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신라말이나 고려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풍화를 막기 위해 누각을 씌워놓았다.

망월산 정상에 있는 망월산성은 이 곳에서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적. 둘레가 495㎙에 불과한 작은 성이지만 반드시 올라가 봐야 한다. 5분이면 오르는데 계단이 급경사여서 여정에 지친 방문객은 포기하기 쉽다.

산성의 정자에 오르면 문화재단지는 물론 충주호의 푸른 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물을 가르며 유람선이 오간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은 4채의 고옥. 초가담장과 낡은 기와, 색을 입히지 않은 원목 그대로의 나무기둥이 정겹다. 처마밑과 부엌에는 옛 농가의 모든 살림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지게, 바가지, 멍석, 광주리, 사기그릇, 놋숟가락 등등. 만지거나 마루에 올라설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다.

모든 건물이나 전시물이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정상이 아닌 것 같은 감상은 어쩔 수 없다. 제자리를 벗어나 있는 허전함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다행히 백지화쪽으로 의견이 기울었지만, 영월댐이 건설됐다면 또 얼마나 많은 귀중한 것들이 물에 잠겼거나 제자리를 잃었을까.

제천시내에서 597번 지방도로를 타고 23㎞정도를 남하하면 충주호를 가로지른 청풍교가 나온다. 청풍교를 지나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 조금만 오르면 길 옆으로 주차장이 보인다. 597번 지방도로는 충주호를 감고도는 명 드라이브코스. 현재 호수의 물이 많이 빠진 점이 아쉽다.

권오현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0/05/1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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