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석유중개회사, 4대 메이저사에 도전

오프라인상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던 석유시장에도 온라인상의 경쟁자가 나타났다. 인터넷 석유중개 벤처회사들이 등장한 것이다.

국내의 석유 시장은 선두사인 SK를 비롯해 LG정유, 현대정유, S오일(구 쌍용정유) 등 4대 메이저 정유사가 98~99%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 4대 메이저는 휘발유는 물론이고 경유 등유 선박유 항공유 LPG 벙커C유 등 대부분의 석유 제품의 가격과 물량을 조절·통제하며 유류 시장을 주도해왔다.

특히 1997년부터 정부가 유가 자유화를 실시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가격 담합이 아직까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교환판매·가격담합 발표

이들 정유사의 허위 행태가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은 자사 브랜드 홍보 마케팅. 현재 SK는 ‘엔크린’, LG정유는 ‘시그마6’, 현대정유는 ‘오일뱅크’ 등 각사마다 자사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외국계 회사가 돼버린 S오일을 제외하곤 모든 정유사가 휘발유를 서로 교환해서 주유소에 공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SK의 폴대를 달고 있는 전라도 지역 주유소의 경우 SK는 자사 공장이 있는 울산에서 휘발유를 가져오지 않고 가까운 LG정유의 여수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을 받아 공급해준다. 마찬가지로 LG정유나 현대정유도 경남에 있는 주유소에는 자사 제품이 아닌 울산에 있는 SK 휘발유를 받아다 준다.

물론 각 정유사 본사에서는 차후에 서로 지급된 제품의 양을 상계한다. 정유사들이 엄청난 광고비를 들여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있지만 실은 서로 제품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엄청난 물류 비용을 감안하면 정유사간의 물량 교환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비용이 증가해 소비자만 손해보게 된다”며 “특히 각 정유사간의 휘발유 질의 차이가 거의 없어 교환해도 실제 쓰는데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가격담합 행위 또한 문제다. 국내 유가는 공식적으로 자유화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담합이 공공연히 이뤄진다. 최근 휘발유가는 ‘정유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S오일이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오일은 대주주인 사우디 국영정유회사인 아람코와 장기 원유도입 계약을 맺고 있어 국내에서 가장 싼 값에 원유를 들여온다. 여기에 국내 시장 점유율도 4대 메이저중 가장 낮은 편이다. S오일은 이런 이점을 십분 활용, 4대 메이저 가운데 가장 낮은 원가로 각 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저가 정책으로 타사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다. 현재는 이런 S오일의 가격 드라이브 정책에 다른 3사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정유시장은 이처럼 정유사간의 ‘불안한 동거’가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 중계벤처회사 탄생

석유 시장의 이같은 담합 속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인터넷 석유중개 벤처회사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주유소, 공장, 산업체 같은 구매사와 국내 정유사, 수입사, 국제 메이저 정유사 같은 판매사 쌍방의 직거래를 성사시켜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 인하와 품질 경쟁을 유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정유사-대리점-주유소-소비자’로 이어지는 유통 단계를 줄여 비용을 절감, 결국에는 소비자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현재 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의 권장 소비자가는 ‘제조원가+제조마진+유통마진’을 합친 금액으로 결정된다. 제조원가는 국제 수입가에 인건비와 정제비 등의 비용을 포함한 수준에서 결정된다. 제조마진은 정유사들이 자사 수익을 위해 붙이는 이윤으로 리터당 약 100~150원 정도가 된다.

여기에 대리점과 주유소가 함께 리터당 약 90원 정도의 유통 마진을 취해 결국 리터당 총 190~240원 정도의 추가 마진이 붙어 최종 소비가 가격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권장 소비자가가 리터당 1,219원인 휘발유의 경우 정유사 제조원가는 약 1,000원 안팎이고 여기에 제조마진 100~150원(정유사 수익분)과 유통마진 약 90원(대리점과 주유소 수익분)이 포함돼 산출된 것이다.

인터넷 석유중개 벤처회사의 경우 이런 다단계 경로를 단일화시킴은 물론 현물 거래인 스폿(Spot)시장을 활성화해 4대 메이저 정유사의 자사폴 주유소에 대한 횡포도 줄이겠다는 이중포석을 취하고 있다.

현재 국내 4대 메이저 정유사들은 주유소 설립 초기 자금을 대출해주는 조건으로 자사 제품만 사도록 강요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현대정유가 한화에너지를 흡수 통합할 당시 자사 폴 주유소를 확장하기 위해 각사가 사활을 건 경쟁을 펼쳤던 것도 바로 이런 연유였다.

특정 정유사 폴대를 건 주유소의 경우 가격이 휠씬 싼 현물시장이 분명 존재함에도 어쩔수 없이 그 정유사 제품만 쓸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통마진·정유사 횡포 막겠다"

그러나 실제론 폴대를 단 상당수 주유소도 스폿 시장에서 외국 수입사 제품이나 국내 타사 제품을 몰래 구입하고 있다.

현재 20조원에 달하는 유류 시장중 30%가 넘는 6조원여가 현물 거래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인터넷 벤처회사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이중적인 석유 시장 구조의 허점이다. 겉으로는 미미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거래가 이뤄지는 스폿시장을 활성화해 전반적인 시장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분야의 선도업체인 ‘넷오일 컴뮤니티’(Net Oil Community)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흔히 있는 경매나 역경매 시스템이 아닌 구매자와 판매자가 호가만 내면 자동으로 거래가 성사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상거래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판매자간 상호 인증서비스, 주유차 배차를 비롯한 배송 시스템, 그리고 거래명세서와 세금계산서 작성에까지 일관적인 처리가 가능하다.

이밖에도 일자별, 단가별 구매 실적과 주유소 경영 컨설팅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넷오일의 이원배(38) 사장은 “그간 국내 석유시장은 4대 정유사가 철옹성을 쌓고 이끌어가는 독과점 시장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석유 중개회사의 등장으로 국내 석유 시장도 수요자 중심의 경쟁 체제로 바뀌는 무한 경쟁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B2B 전자상거래 시스템이 오프라인에서도 가장 덩치가 큰 분야인 석유 시장에도 새바람을 몰고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0/05/14 17:4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