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직 폭력배는 흔히 ‘야쿠자’(やくざ)라고 부른다. 세 패의 숫자를 합쳐 끗발을 겨루는 ‘산마이’(三枚)라는 노름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합쳐서 10이나 20이 되면 섰다판의 망통처럼 끗발이 0이 돼버린다.

여러가지 조합 가운데 합쳐서 20이 되는 ‘3·8·9’가 대표적으로 가장 재수없는 패로 여겨졌다. 우리 노름꾼들이라면 ‘삼빡구’라고 불렀겠지만 일본에서는 ‘893’, 즉 ‘야쿠자’로 읽었다.

이처럼 ‘쓸모없는 패’를 뜻했던 말이 일반인사이에서는 ‘노름꾼’,‘쓸모없는 놈’으로 통했고 나중에는 무뢰한이나 불량배를 뜻하게 됐다. 지금은 조직 폭력배를 낮추어 부르는데만 쓰이고 있어 면전에서 대놓고 ‘야쿠자’라고 불렀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일본 야쿠자의 뿌리는 깊다. 가마쿠라(鎌倉)시대(1192~1333년)의 기록에 이미 술과 노름으로 밤낮을 지새는 건달들의 얘기가 나와있다.

에도(江戶)시대(1603~1867년)에는 보다 분명한 야쿠자의 원형이 나타났다. 오랜 전란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자 무사들이 대량 실직, 낭인무사로서 거리를 떠돌았다. 때마침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로 도시가 번창하면서 이들은 상점이나 유곽의 ‘요진보’(用心棒·호위꾼)로서 ‘보호비’를 챙겼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이른바 우국지사 모임이었던 ‘우요쿠’(右翼)에도 많은 야쿠자가 흘러들어갔다. 우요쿠와 야쿠자의 구별이 애매모호해지고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 ‘우요쿠’하면 으레 ‘야쿠자’를 연상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지금도 야쿠자 조직은 ‘오야붕’(親分·두목)에 대한 ‘고붕’(子分·졸개)의 절대적인 복종을 조직원리의 바탕으로 삼고있다. 손가락을 칼로 긁어 서로 맞닿게 해 피를 섞는 이른바 ‘유비기리’(指切り) 등에서 엿보이는 동료의식과 내부의 의리 등도 과거 봉건시절 제후국인 ‘한’(藩) 단위 무사사회의 기본 이념을 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동안 야쿠자는 일본 사회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세력이었다. 당하면 곱으로 돌려주는 폭력도 그랬지만 그물같은 조직망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외제차가 눈에 튀던 시절 검은 벤츠는 거의 예외없이 야쿠자의 차였다.

야쿠자의 수입은 유흥업과 풍속산업, 파칭코 등 각종 공인도박업소에서 뜯는 ‘보호비’가 기본이 됐지만 거품경제기에는 특유의 사업으로 거금을 거머쥐었다.

날만 새면 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야쿠자들은 부동산·주식·미술품 등의 거래나 알선에 나섰다. 값나갈만한 땅과 주식, 미술품을 헐값으로 사들여 되팔고 조각 땅이나 연작 미술품을 한데 모아 값을 올린 후 파는 등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런 호경기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 거품경제 붕괴로 사업이 어려워진데다 오랫동안 야쿠자를 사회문제로 지목해온 정부가 1991년 ‘폭력단원에 의한 부당행위 방지 등에 관한 법률’(약칭 폭력방지법)을 제정, 목을 조이고 나섰다.

이 법에 따라 폭력단은 조직과 회원, 사무소를 당국에 신고, ‘지정 폭력단’이 돼야 했다. 수입원인 일체의 공갈·협박·물품구입 강요·거래개입 등이 금지된 것은 물론 ‘나와바리’(繩張·영역)를 놓고 무력항쟁을 벌일 경우 해당 지역의 사무소 문을 닫아야 한다.

애초 법제정 당시 조직폭력배의 존재를 인정한 현실타협적 법이라는 반론도 거셌지만 결과적으로 법이 만들어진 뒤 야쿠자의 행동 반경은 크게 좁혀졌고 각종 업소의 폭력단 배제 흐름이 꾸준히 정착해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업소에서, 심지어 포장마차에서 돈을 뜯은 야쿠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법 행위가 없는 한 함부로 발붙이기 어렵다. 최근 일본 언론은 폭력단 하부조직이 상납금을 마련하지 못해 운전수나 공사장 인부로 일하거나 공중전화의 동전통을 훑는 등 어울리지 않는 일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1999년 말 현재 등록된 야쿠자는 8만여명이며 이중 최대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가 3만4,000여명에 이른다. 미등록 조직원까지 합치면 20만명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대한 폭력단의 존재에서 말과 글보다는 주먹과 칼을 존중해온 역사의 찌꺼기가 엿보인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0/05/1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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