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지역 복원방법 논란

영동산불로 가장 큰 삼림피해를 본 삼척시 산악지역에서는 요즘 사방공사가 한창이다. 장마철 산사태를 막기 위한 ‘응급복구’작업이다.

주로 임도 주변의 절개지와 경사가 심한 계곡, 산등성이 부위를 계단식으로 깎아 잔디를 입히거나 소규모 보를 만드는 일이다. 강원지역 산악 토양이 대부분 마사토인데다 토양유실을 막아줄 나무가 홀랑 타버려 인위적으로 길을 낸 임도는 산사태에 매우 취약해보였다.

산림청은 장마철 전인 6월30일까지 응급복구를 끝낼 예정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응급조치가 아니라 타버린 삼림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있다. 인공복원해야 한다는 측과 자연복원이 낫다는 측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인공복원은 산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나무나 풀을 심는 것.

이에 반해 자연복원은 자연의 치유력을 이용해 경쟁력이 강한 초목이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인공복원· 자연복원 갑론을박

인공복원을 선호하는 측은 지난 30년간 산림녹화를 추진해온 산림청. 산림청은 4월27일 발표한 ‘동해안 산불 산림피해 조사결과 및 산림복구방향’을 통해 자연회복과 인공조림을 병행하겠다고 복구원칙을 밝혔다.

경사 20도 이하의, 토양급수 능력이 좋은 지역은 인공조림을 하고 나머지 악조건 지역은 자연회복에 맞기겠다는 것이다.

산림청의 이같은 방향설정에 대해 일부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현지조사없이 산림청에 구비된 임상도와 토양도만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강원대 생명과학부 정연숙 교수는 “산림청의 인공·자연회복 병행 원칙은 사실상 100% 조림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즉, 조림가능한 곳은 모두 조림하겠다는 입장이란 얘기다. 정 교수는 산림청이 인공복원에 중점을 두는 근본이유는 불탄 산을 ‘검은 사막’으로 보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땅 속에 아직 남아있는 생명의 싹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 정 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불탄 산은 결코 검은 사막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자연복원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도 복원문제를 원점에서 새로 검토하기로 했다. 환경부와 산림청, 민간전문가, 환경단체 등이 참가하는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5월15일부터 두달간 현지실사를 한 후 복구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이다.

안승환 동부지방 산림관리청장은 “합동재실사를 통해 나온 결과에 따라 장기적인 복구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정부방침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목재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바람에 외국의 환경단체로부터 주요 목재수입국으로 비난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조림을 통해 임업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산림청의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복원 주장이 계속되는 것은 왜 그럴까.


불탄 활엽수 뿌리에서 새 순 확인

정 교수의 이야기. “인공조림을 통해 소나무 종류를 심었을 경우 소나무 숲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숲을 훼손해야 한다. 천이(遷移·식생대가 변해가는 과정) 중간종인 소나무 숲속에는 활엽수가 들어차 후계종(어린 소나무)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소나무숲을 유지하려면 활엽수를 계속 없애야 한다. 문제는 활엽수를 없앤다 하더라도 빛을 좋아하는 특성상 어린 소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총체적인 생태환경과 종다양성을 고려해도 자연복원이 좋다고 주장했다. “인공조림된 낙엽송과 잣나무 숲에는 나무는 있어도 숲 속은 텅비어 있다.

이에 반해 자연림에는 큰키나무층 아래 작은키나무층, 떨기나무층, 풀층으로 다양한 식물대가 형성돼 공간이 최대한 활용되고 있다. 자연림 속에는 초식곤충과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가 먹이사슬로 연결되는 공존·상생의 터전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그러면 산불지역에 극상림(천이과정의 후기에 있는, 생존경쟁력이 강한 수종)인 참나무 등을 인공조림하면 어떨까. 정 교수는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천이 후기종은 생장속도가 느려 인공적으로 심기보다는 (불타지 않은)뿌리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실제로 취재진은 불탄 활엽수 뿌리에서 땅을 비집고 나오는 새 순을 확인했다.

현재 우리나라 삼림은 98%가 한국전쟁 후 복원된 것이다. 이중 55%는 자연복원됐고 43%는 인공조림을 통해 복원됐다.

나무의 80% 이상이 수령 30년 이하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황폐해진 산을 다시 가꾸는데 ‘산림녹화’구호는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나무가 더이상 땔감이 아닌 지금, 치산치수(治山治水)의 근본틀은 무위(無爲)로 크게 선회해야 할 단계에 왔다.


자연상태가 삼림회복에 유리

산불지역은 인공복원하느냐 자연상태로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1996년 4월 발생한 강원도 고성 산불현장이 2년여 뒤인 1998년 5월8일에는 인간의 손길이 얼마나 닿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① 사진은 관목 등을 깨끗이 베내고 소나무를 심은 뒤 추후관리를 철저히 한 곳이다. 소나무는 심은지 1년 정도 됐다.

② 사진은 소나무를 심은 뒤 관리를 제대로 안해 관목이 다시 자란 곳. 관목에 가려 소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

③ 사진은 조림을 하지 않고 자연상태로 둔 곳으로 참나무 등 활엽수가 가장 무성하게 자랐다. 베어내지 않은 화재목이 점차 썩으면서 땅 속에 양분을 보탰다. (자료제공:이규송 강릉대 생물학과 교수)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17 18:43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