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식 전략으로 국경을 넘은 기업

‘빙산(氷山)의 일각(一角)’

어떤 대상이나 사건의 실체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클 때 사용하는 말이다. 실제로 남극이나 북극의 바다에 떠있는 빙산은 해면 위로 드러난 부분보다는 해면 아래 부분이 훨씬 크다.

눈이 차곡차곡 쌓여 탁상형으로 된 남극의 빙산은 해면 위와 해면 밑의 비율이 1대5이며, 얼음으로 만들어져 모양이 불규칙한 북극 바다의 빙산은 그 비율이 평균 1대3이다.

이처럼 알려진 것보다 그 규모나 세력이 더욱 크다는 의미로 따진다면 아그파(AGFA)는 확실히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히 어울리는 기업이다.

아그파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독일의 필름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전체 매출에서 필름분야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도 되지 않는다.

1999년 한해 동안 아그파는 총 47억3,100만 유로(약 5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40%(19억4,500만 유로)는 신문, 인쇄관련 장비와 소모품을 판매하는 ‘그래픽 사업부’에서 이뤄졌다.

또 31%의 매출은 영화·X선 필름, 의료관련 영상기기, 항공기·파이프라인·발전소의 안전도를 측정하는 비파괴검사 등의 기술영상사업부에서 발생했다. 우리가 아그파의 전부로 알고 있는 필름을 생산하는 소비자 영상 사업부는 그 비중이 29%(14억3,400만 유로)에 불과하다.


유럽에 뿌리 둔 경영전략

그렇다면 일반인에게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만 알려진 아그파는 어떤 성장배경과 경영전략을 갖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그파는 공식 재무제표를 유럽 공동체(EU)의 화폐 단위인 ‘유로(Euro)’로 작성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태동이나 발전과정, 경영전략 등이 지극히 유럽적 회사다.

우선 아그파는 대부분의 유럽계 다국적 기업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독일 레버쿠젠과 벨기에 안트워프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전세계 120개 국가에 총 2만3,1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아그파는 1867년에 세워졌다.

독일의 화학자인 파울 멘델손 바르톨디(Paul Mendelsshon Bartholdy)와 칼 폰 마르티우스(Carl von Martius)가 ‘아닐린’염료를 생산하는 회사라는 뜻의 ‘Actien Gesellschaft fur Anilin Fabrikation’(AGFA)를 세운 것이다.

아그파는 또 설립이후 133년 동안 국경을 뛰어넘는, 자본의 다양한 이종결합을 통해 규모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아그파는 1920년대 진행된 독일 화학업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일한 필름업체로 살아 남았고 1953년 바이엘(Bayer) 그룹으로 지분의 100%가 넘어갔다가 1964년 벨기에 국적의 필름회사인 게바트(Gevaert)와 50대50의 합병을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964년 이후 아그파는 공식적으로는 ‘아그파-게바트 그룹’으로 불린다.

세계에서 미국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1990년대 이후에도 아그파는 미국 기업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경영전략을 펴고 있다.

필름 분야에서 아그파의 강력한 경쟁자인 미국의 코닥(Kodak)이 영상 정보를 필름으로 인화하는 전통적인 ‘아날로그’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아그파는 향후 50년 안에 ‘디지털 영상’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시키고 있다.


의료영상부문 세계시장 점유율30%

아그파는 1988년 미국 컴퓨터 그라픽사를 인수해 전자 인쇄 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1996에는 독일 훽스트사의 옵셋 인쇄 사업부문, 1998년에는 듀폰(Dupont)사의 그래픽 필름과 옵셋 인쇄판 사업을 차례로 인수했다.

또 지난해에는 미 스털링(Sterling)사의 의료영상 사업부문을 인수해 이 분야에서 세계시장의 30%를 차지하게 됐다.

아그파의 ‘디지털 영상사업’으로의 구조조정이 주목을 받는 것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단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미국 기업에서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막대한 재무적 부담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98-1999년 겉으로 드러난 아그파의 경영지표는 미국 기업에 비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아그파는 1999년 47억3,100만 유로의 매출액을 올렸으나 2억7,300만 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구조조정에 투자하는 바람에 당기순이익은 1,400만 유로에 불과하다. 1998년 40억2,6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해 순이익이 1억4,000만 유로였음을 감안하면 미국적 관점에서는 확실히 실패한 회사인 셈이다.

이와 관련, 아그파코리아 그래픽사업부 박영숙 차장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순이익 규모가 크게 줄었지만 1999년 유럽 증시에 상장된 아그파의 주가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주요 주주인 유럽 투자자들이 아그파의 경영전략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처럼 장기 안목적 관점에서 경영을 전개하는 아그파도 경영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아그파가 막대한 재무적 손실을 감수하고 진행하는 구조조정이 과연 아그파의 의도대로 이뤄질지가 가장 큰 관권이다.

또 대부분의 유럽 기업과 마찬가지로 미국 경제가 유럽 경제를 계속 압박하고 있는 점, 역시 전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벌이는 아그파에게는 잠재적 위협이다. 지난해 출범한 유럽제국의 단일 통화인 유로가 미국 달러에 대해 계속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아그파로서는 재무적으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종합 디지털영상회사

한편 아그파는 15년전인 1985년 제일합섬과 제휴해 아그파 필름을 국내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상륙했다. 아그파와 제일합섬의 제휴는 8년동안 계속됐으나 1993년 기술이전 등에 대한 이견으로 결별해 이후에는 아그파 본사의 100% 투자법인인 아그파코리아를 통해 필름을 판매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그파코리아 역시 한국에서의 핵심사업은 필름분야가 아니라는 점이다. 1999년 아그파코리아의 매출은 1,000억원에 달하는데 이중 50%는 신문, 인쇄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아그파의 국내 생산시설은 1996년 훽스트의 인쇄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아그파로 넘어온, 경기 반월공단의 ‘P.S. 인쇄공장’이다.

이 공장은 5,312평, 연건평 1,659평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옵셋 인쇄판(P50K와 N61K)을 국내 최초로 생산, 판매해 연간 2,000만 달러의 수입 대체효과를 올리고 있다는 게 아그파의 설명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필름회사로 고정됐던 이미지를 바야흐로 ‘종합 디지털 영상’회사로 바꾸는 것이 아그파코리아의 경영전략인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18 11:32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