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광주는 뜨겁다. 광주 비엔날레를 알리는 요란한 선전포스터,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

광주는 아직 잠들지 못하는 것 같다. 기행자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 사건인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현역 육군사병 신분으로 유일하게 연류되어 몹시도 눈이 많이 내린 그해 겨울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지금 국민의 정부에서 일을 하는 여러분과 1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을 한 추억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20년 세월이 지난 이번 5월에 찻그릇 기행차 광주 무등산 기슭의 충효동 가마터를 답사하니 정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인간의 존엄성과 그 가치를 찾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이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로서 전세계에 퍼지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할 것이다.

또한 이제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피는 피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용서, 화해 그리고 자비의 불(火)로서 무등산이란 큰 역사의 가마에서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딛는 위대한 광주를 탄생시켜 새로운 미래를 향해나가야 할 것이다.

무등산 자락에는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고대로부터 많은 누정(樓亭)과 원림(園林) 유적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 유적은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주옥같은 가사문학을 탄생시켰다.

이 누정 공간은 단순한 음풍농월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창의(昌義)를 도모하는 공간이었고 또한 낙향한 선비와 향토의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자신을 수양하고 완성하기 위해 차를 마시면서 삶을 관조하는 등 일종의 학문과 사상의 성지 역할을 한 것이다.

16세기 일본 차도의 역사에서 오오닌의 난 이후 극도로 황폐해진 사회에서 화려한 서원차는 더이상 존속하기가 어려웠다.

무라타슈코(村田珠光 1422∼1502)가 주장한 ‘검소한 차회(茶會)’는 지금까지 큰 서원의 방안에 병풍으로 막은 좁은 4칸반의 다다미방에서 차를 마셨다. 이것이 바로 오오닌의 난 이후 혼돈한 상태에서 일어나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 무사들이 선택한 소박한 차회의 시발이 된 것이다.

차회 속의 와비정신은 또한사람의 위대한 차인 다께노쇼우(武野紹鷗1502∼1522)에 의해 또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조선시대 영원한 방외인(方外人)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의 영향을 받아 남도지방의 초당에서 한적하게 차를 마시는 방법을 일본에 전파시켜 무로마치 시대 ‘초암차’(草庵茶)를 창시하게 된 것이다.

초암차는 조선의 남도지역에서 굽혀진 찻그릇에 차를 마시는 고요함과 아취의 미의식에 입각하여 도심 속에서 탈속의 자연미를 최대한 연출하게 된 것이다. 무로마치 시대 초암차실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허리를 굽혀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었다. 이 차실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초암차실은 우리나라 남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당이었다. 조선중기 면앙정 송순(宋純 1493∼1583)은 우리나라 선비로서 자연관에 입각하여 남도 초당의 멋스러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달 한칸 나 한칸에 청풍 한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릴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현암 최정간 도예가

입력시간 2000/05/19 11:2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