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 소카이야(總會屋)

‘야’(屋)라는 일본어의 접미사는 쓰임새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일을 업으로 하는 집,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 꽃집이나 꽃장수는 ‘하나야’(花屋)고 생선가게나 생선장수는 ‘사카나야’(魚屋)가 된다.

특별한 함축성을 갖지 않는 이런 말과 달리 ‘고로시야’(殺し屋·살인청부업자)나 ‘세이지야’(政治屋·정상배) 등은 우리말의 ‘꾼’에 해당하는 부정적 어감을 갖는다.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소카이야’(總會屋·총회꾼)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주총회에서 기업비리 폭로 등의 방법으로 경영진을 위협하거나 거꾸로 경영진에 대한 주주의 공격을 막아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전자인 ‘야당 소카이야’의 경우에는 주로 주주총회 이전에 이미 공격포기를 조건으로 경영진으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받는다.

일본 기업은 오너가 아니라 사장이 모든 권한을 쥐기 때문에 주주총회는 형식 절차가 아니라 실질적인 경영권 공방의 장이다. 소카이야의 영향력이 클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소카이야가 말 만의 위협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 위협을 병행하기 때문에 좀체로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소카이야는 야쿠자(폭력단)와 함께 넓은 의미의 ‘폭력단 세력’에 속한다. 특히 1992년 폭력방지법 시행 이후 야쿠자는 경찰의 대대적 단속을 피해 당시까지 느슨한 제휴관계에 있었던 소카이야 조직에 본격적으로 침투했다.

그 결과 소카이야의 활동에서 공갈과 폭행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경영진은 부실경영이나 기업비리가 드러나 경영권을 잃게 될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요구에 굴복했다.

그러나 기업이 전국에서 거의 동시에 총회를 열어 소카이야의 개입 여지를 줄이는 등 자구책에 나서고 1997년 이익요구죄가 신설되고 이익제공죄의 벌칙이 강화된 개정 상법이 시행에 들어가면서 소카이야의 세력은 크게 약화됐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개정 상법이 시행된 1998년 소카이야는 전년의 3분의2 수준인 약 600명으로 줄었고 1999년 말에는 다시 약 400명으로 줄었다. 이중 소카이야 그룹에 속한 사람이 150명, 그룹수는 25개로 각각 1998년 말보다 50명, 5개가 줄었다.

최근에는 1,000 단위의 보유 주식을 증시에 내다 파는 소카야도 늘어나고 있다.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 단위 주식을 보유하는 이른바 ‘가부즈케’(株付け)는 소카이야 활동의 기본 전제다. 이를 팔아치운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증거다. 유료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기업의 내부비리 정보를 알리는 소카이야 그룹도 생겼다.

대기업이 소카이야에 시달리는 한쪽에서 중소기업은 ‘시테시’(仕手師)나 ‘세이리야’(整理屋)에 시달린다. 시테시는 처음부터 경영권을 위협해 거액의 차익을 챙기고 되팔기 위한 목적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주식꾼이다.

기업의 정보와 위협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도 주먹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 간사이(關西) 정·재계의 막후 실력자로 불린 재일동포 허영중씨가 이름을 날리게 된 것도 교토(京都)의 한 중견기업을 시테시의 공세에서 구해낸 절묘한 수법 때문이었다.

시테시의 표적이 된 기업에 특수 임무를 띄고 임원으로 들어간 그가 일부러 부실채권을 크게 늘려 주가를 폭락시키자 시테시 조직은 주식을 포기하고 손을 떼었던 유명한 사건이다.

세이리야는 이곳저곳에 빚을 지고 있는 중소기업의 채무를 한덩어리로 정리해주고 고액의 수수료를 챙기거나 원리금을 가로챈다. 채무정리는 변호사의 업무이지만 이들은 변호사와 불법 제휴해 채무정리를 하청받는다. 법은 폭력단의 채무정리업 진출을 금하고 있지만 교묘한 수법을 다 막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밖에 공갈·협박을 섞어 군소 지주의 조각 땅을 사들여 값나가는 규모의 땅으로 만들거나 대형 건설 예정지에 조각 땅을 확보하는 등의 방법으로 거액을 챙기는 ‘지아게야’(地上げ屋)도 있다. 또 경매에 넘어간 부동산의 위장 임대 계약을 맺고 법원의 경매 절차를 방해하는 방법으로 퇴거료를 챙기는 ‘센유야’(占有屋·점유꾼)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폭력단과 연결된 이런 모든 꾼들의 손길을 헤치고 살아남았다는 점만으로도 일본 기업의 생존능력은 감탄할 만하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0/05/2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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