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드라마 '허준'의 작가 최완규

먹다 남은 두통약 한 판, 미처 치우지 못한 인스턴트 밥, 종합비타민제가 든 약통, 그렇게 어수선한 식탁에 앉아 세 남자가 공모하고 있다.

“이젠 죽일 시점을 정할 때가 됐어. 언제 죽이는게 좋겠어?” 수염이 텁수룩하고 눈이 작은 남자가 말한다. 듣고 있던 더 어린 남자가 “난(亂)중에 죽이자”고 한다. 그러나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만다. ‘예진 아씨’의 죽음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

수염이 텁수룩한 남자는 요즘 ‘국민 드라마’로 뜨고 있는 MBC TV 드라마 ‘허준’의 극본을 맡은 작가 최완규(35)씨다.

워낙 상종가의 인기드라마 작가이니만큼 대단한 호사를 누릴 것 같지만 화면 뒤에 숨은 그는 오히려 몇달째 자신의 작업실 겸 숙소를 겸한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서 날마다 대본마감에 목이 졸리는 반(半)유배생활을 하고 있다.

“드라마 한 회 분량이 원고지로 대개 130매 정도인데 ‘허준’은 극의 템포가 빨라서 한번에 140-150매 정도 됩니다. 원래는 토요일까지 대본을 넘겨야 하는데 갈수록 힘이 들어 최근엔 자꾸 일요일까지 넘어갑니다.

촬영장엔 나가볼 사이도 없어요. 저도 방송으로 보는 게 처음 보는 겁니다. 그렇게 녹화 몇시간 전에 부랴부랴 넘긴 대본인데도 아무 탈없이 방송으로 내보내주는 연기자들이며 스탭이 고마울뿐입니다.”


일주일중 하루정도가 인간답게 사는 날

비교적 인간답게 사는 날은 대본을 넘겨준 다음날인 월요일 하루 정도다. 그런 날은 그런 날대로 주중에 밀린 약속이 한꺼번에 집중되는 터라 완전히 쉬기 어렵다.

화요일부터는 다음 대본을 구상. 보다 정밀한 자료검증과 아이디어를 위해 다섯명의 보조작가가 그를 돕고 있다. 식사도 인스턴트밥이나 라면이 주류. 완전한 야행성이라 밤새 일하고 낮에 잔다. 그것도 두세 시간씩 스타카토로 끊어서 잔다.

스트레스의 반작용으로 체중은 20kg나 불었는데 넉넉한 체구와는 달리 건강은 갈수록 엉망이다. 체력관리를 위해 들여다놓았을, 방 한켠의 헬스기구도 그냥 옷걸이로 변한지 오래. 도처에 두통약, 영양제 약병이 널려있다.

책상 위의 노트북 주위로는 두께가 한뼘이나 되는 ‘한방가정요법대전’을 비롯해 국학도감, 허준의 동의보감연구 등 한의학 관련 책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TV의 허준 전광렬이 그토록 막힘없이 쏟아내던 한방지식은 모두 최씨가 가진 관련의학서와 자문을 맡고 있는 한의사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방송작가가 된지 8년째. 이렇다 할 드라마작가 교육을 받지 않고 뛰어든 그로서는 특히 빠른 입신이다. 1993년 TV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된 뒤 활동을 시작, ‘간이역’, ‘종합병원’, ‘야망의 전설’ 등 주목받은 작품이 많다.

그중에서도 회당 400만원의 고료를 받으며 현재 집필중인 ‘허준’은 방송 초반부터 시청률 50%선을 가뿐히 통과, 이내 60%를 기록하는 개가를 올렸다. 워낙 작업실 안에만 갇혀있다 보니 직접 시청자의 반응을 접해볼 기회조차 없지만 가끔은 툴툴대는 친구들의 전화를 받으며 인기를 실감할 때가 있다.

즉, 자신의 회사 동료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갈 참이었는데 얘기를 꺼내자마자 그 동료가 “오늘은 허준 봐야되기 때문에 안된다”며 일찍 집으로 가버렸다는, 원망의 전화다.


“글쓰는것 이외엔 달리 재주가 없어요”

만약 6년전 ‘종합병원’이 없었고 현재의 ‘허준’이 그에게 없었다면, 그래도 그는 여전히 지금처럼 이 자리에 버티며 남아있었을까. 최씨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한 템포 쉰 뒤에야 대답을 꺼냈다.

“아마 그랬을겁니다. 문제는, 글을 쓰는 것 외엔 제게 달리 다른 재주가 없다는 겁니다. 학교때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고 제 친구들은 대부분 소위 일류대를 나와 좋은 직장, 안정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는 동안 저는 남들처럼 정상적인 순서를 밟으며 살지도 못했습니다. 20대의 10년을 너무도 힘들게 보냈고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것만이 제게 걸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요.

‘종합병원’이 성공했을 때도 제게 가장 감격스러웠던 것은 그때까지 ‘쟤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하던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에게 이제는 제가 그동안 헛 산게 아니란 걸 입증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삶도 한편의 드라마 감이다. 10살 때까지 경북 울진에서 살다가 탄광촌 도계로 이사, 중학교 3학년때 서울로 옮겨왔다. 7남매의 동기간에도 그는 유독 부모의 기대에 거꾸로 가는, 불안한 아들이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고 책만 무섭도록 읽었다. 현재 그를 떠받치고 있는 문학적 바탕중 80-90%가 중학시절에 읽은 독서에서 나왔다. 학창시절 동안 글 한편 써보지 않은, 마음뿐인 문학도였지만 언젠가 꼭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이 굳었다. 내성적인 성격에다 몇번의 무단가출 전력도 있다.

고등학교 재학중 입시학원처럼 돌아가는 학교가 싫어 완전히 학업을 그만두고 어딘가 달아나 살 요량으로 가출, 광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곳 생활에 적응되지 않아 1주일만에 돌아왔다. 고교졸업후엔 외국으로 달아날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워본 적이 있다. 가진 거라곤 어렵사리 구한 미국행 편도 비행기표 한 장, 일단 나갈 수만 있으면 불법체류를 해서라도 살 각오까지 돼 있었지만 나이 든 독신남성이라는 이유로 비자발급을 거절당하면서 그 꿈도 무산됐다.

인천대 영문과 84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졸업장도 없다. 군복무를 마친 뒤 2년동안 학업은 팽개치고 막일을 하며 살았다. 인천의 박스공장, 성남의 한 철공소 용접공 노릇, 반월의 가구공장 등을 돌며 일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지겠다’며 집을 나온 터라 당장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일이 급했다. 그럴 때도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나중에 소설을 쓰는데 쓰일 것”이라는 생각이 자신을 지탱해 주었다.


짐승처럼 살았던 ‘종합병원’집필시절

여전히 막막한 불안감 속에서 맞은 서른살. 후배의 집을 전전하며 살던 중 우연히 TV에 나온 극본 공모소식을 접했다. 생전 처음으로 대본이랍시고 적어보낸 글이 바로 가작에 당선,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입문 이듬해 대박으로 이어진 ‘종합병원’의 집필계기도 우연이었다. 원래 정해져있던 대본작가가 갑작스런 개인 사정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그가 긴급투입되었다. 방송경력도 터무니없이 짧은데다 써본 작품이라곤 단막극 두 편이 고작.

최씨는 무작정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가 거의 반년동안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글을 썼다. 잠도 병원 창고에서 종이박스를 깔고 새우잠. 당시 그를 본 의사들이 “꼭 짐승처럼 살더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방송 3회만에 확실한 승부를 보았다. 곳곳에서 그를 인터뷰하려는 전화가 걸려오는 등 서서히 작가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간이역’처럼 평가만 좋았을 뿐 시청률에선 실패한 비운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1997년에 방송한 ‘야망의 전설’은 극과 극을 오갔다. 그때도 여관방에 틀어박혀 대본을 써냈던 이 작품은 그러나 출발부터가 회의적이었다.

경쟁사 채널에선 당시 최고의 인기 주말드라마가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상태라 처음부터 승산이 희박한 골리앗과의 싸움이었다. 초반 시청률 4%. 주말드라마 역사상 최악의 기록이었다.

방송가에서 흔히 하는 말로 ‘화면조정시간보다 더 시청률이 안 나오는 프로그램’ 얘기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대본을 쓰다보면 그런 게 있어요. 시청률이 높은 작품은 주변에서 누구 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시청률이 낮으면 눈에 띄는 사람마다 죄다 한마디씩 던집니다.

야망의 전설도 시청률로 처음에 아주 고전했어요.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 그만둘 생각까지 했는데 저와 친한 한 감독이 ‘작가생활을 완전히 그만둘 각오가 돼 있다면 나가라’고 하더군요. 결과와 상관없이 반드시 스스로 매듭지어야 한다구요. 그렇게 해서 계속 남아있다가 다행히 어느 시점에서 풀리기 시작해 결과가 좋게 끝났죠. 한편으론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걸 배웠어요.”


“드라마 계기도 허준연구 활발해졌으면”

‘허준’을 맡은 지금, 그는 건강상으로도 넉다운 직전이다. 걸핏 하면 밤을 새우는 강행군에다 이번 드라마가 종영되는 6월 이후엔 또다른 작품이 이미 예약된 상태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는 그가 마음이 약한 탓도 있다.

도무지 거절을 잘 못하는 성미라 항상 일이 쌓인다.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다 되려 자신이 상처를 입는 일도 숱하지만 성격은 마음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방송계에선 ‘절대 속을 썩이지 않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다. 또 본인이 ‘천사표’다 보니 만들어내는 주인공도 한결같이 ‘바른생활맨’이다. ‘종합병원’의 주인공 이재룡도 그랬고 ‘허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TV의 어린 가수들조차 아찔한 노출전략으로 맹공을 퍼붓는 요즘, 그의 답답한 순애보는 오히려 빛이 난다. “허준과 예진아씨요? 앞으로도 둘 사이의 극적인 사건 같은 건 기대하지 마세요. 제가 쓰는 주인공은 거의가 짝사랑으로 끝나요. 왜냐면 제가 연애를 잘 못하거든요.”

최근 들어 그에게 쏟아지는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는 드라마 속의 인물에 대한 사실성 논란이다.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역사적으로 허준보다 백년쯤 뒤에 나타난 인물이었다든지, 허준의 궁중 등용 역시 과거시험이 아니라 청구에 의한 것이었다는 등등이 학계의 지적이다.

이미 이력이 나도록 질문을 받아봤는지 아예 본인이 일목요연하게 질문내용과 해명을 총정리하던 최씨.

“어떤 땐 이런 반박을 들으면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외부에서 지적하는 사항은 이미 저희도 드라마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다 알고 시작한 것이거든요. 처음부터 이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허구성을 속성으로 하는 드라마 장르임을 밝히고 시작했는데 이것을 자꾸 역사교과서 보듯 분석하다보니 논란이 생기는 겁니다.

오히려 이런 드라마를 계기로 그동안 빈약했던 허준연구가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속속 다른 작가들이 몰려들었다. 좀전에 ‘죽이다 만’ 한 여자의 운명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듯 했다. 드라마 하나로 4,000만의 정서를 뒤흔들 수 있는 작가도 어찌보면 허준보다 못할 게 없다.

입력시간 2000/05/2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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