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앞과 뒤 달라지는 金正日

남북 정상회담을 10여일 앞둔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변했을까.

이런 물음에 조금은 긍정적인 답변이 북녘에서 전해지고 있다. 적어도 100만의 병력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의 서부전선 임진강변 초소에서는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임진강 북쪽에 서 있는 ‘백두 광명성’이라는 선전탑이 5월 22일부터 ‘동족상잔 반대’라는 새 구호로 바뀐 것이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이를 ‘변화의 시작’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과 김정일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갖고 있는 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심층적인 분석은 아니지만 이건 변화의 상징이다.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바라는 말을 비친 게 아닐까”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의 종말’(1999년 출판)을 펴낸 미국 자유기업 연구소 선임연구원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박사의 분석은 다르다. 한국전쟁 50주년을 앞두고 전쟁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비난한 것이다는 해석이다.

한국전쟁은 미국과 같은 외세에 의한 전쟁이며 동족끼리 전쟁이 아님을 남측에 알리려 한다는 것. 또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백두 광명성’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 1992년 김정일 인민군 총사령관이 50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바친 칭송시에 나오는 상징어이며 북한의 새 지도자에 대한 경애의 표현이다. 김일성은 그때 이렇게 읊었다.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 있고, 소백수 푸른물은 굽이쳐 흐르누나. 광명성 탄생하여 어느덧 쉰돌인가. 문무충효 겸비하니 모두 다 우러르네.”

‘백두 광명성’인 김정일은 그의 사후 어떻게 변했는가. 남북 정상회담 발표 당시 평양에 머물렀던 워싱턴 US 아시안 뉴스 주필 문명자씨(‘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의 저자, 1999년 11월 발간)는 여러 차례 만난 김정일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평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통이 크고 사나이 다운 아들’로 보았다는 것이다.

문 주필이 본 김정일은 몸가짐은 정중하고 목소리는 무게가 있으며 말을 더듬는 기색은 없었다는 것. 손은 따뜻했고 손아귀에 힘이 있었다. 영하 40도의 백두산 갑산-무산 경비도로(1941년 수령이 유격전을 벌였던 곳)를 홀로 걷는 취미(?)을 갖고 있다. 좋아하는 계절을 겨울이며 백두산의 겨울을 매우 좋아한다. 아버지를 평소에 ‘수령’이라 부른다.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1994년 7월이었다.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묘향산에 있던 아버지에게 평양으로 돌아오도록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아버지! 제발 돌아 오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김정일은 1964년 노동당 지도원이 된 이후 한밤중에 전화로 고위 인사와 통화하거나 결재를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꽃은 목화꽃. 서양 옷은 입지 않는다. 영어는 현대식 미국어를 쓴다.

그는 ‘3국 통일 문제를 다시 검토할때에 대해’라는 논문을 통해 신라 통일은 외세 통일, 왕건의 고려통일을 진짜 3국통일로 봤다.

문주필이 평양에서 정상회담 발표를 들었을 때 김정일의 측근은 “우리 민족의 손으로 통일 문제를 풀어야 하는것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지금 회담 준비로 대단히 바쁘다. 그 분의 건강을 지켜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992~96년 미 국무부 북한 데스크로 13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의 김정일 평가와 권고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하버드대 박사(한국사 전공)다.

이번 정상회담은 ‘시작이 반이다’는 한국 속담처럼 통일을 향한 첫걸음이다고 퀴노네스 박사는 보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북한이 입버릇처럼 떠드는 대남 위협 발언이 사실은 경제위기 등에 따른 북한체제의 ‘울음’또는 ‘비명’임을 김대통령이 알아냈기 때문이라고 그는 밝혔다.

퀴노네스 박사의 권고는 짧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상회담을 통해 남녁의 동포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진정 화해와 평화를 추구한다면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최선의 길은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는 것이다.”

[박용배 통일문제연구 소장]

입력시간 2000/05/30 18:1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