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혁명의 시대가 온다

휴대전화·PDA 보급확산, 어디서든 정보와 '접속'

실리콘 밸리에 있는 팜사의 기술책임자인 빌 맥이 출근하기 위해 아우디 승용차의 시동을 걸면 ‘팜’은 자동으로 작동한다. 회사까지 가는 데 어느 길이 안막히는지, 이메일이 왔는지 등의 여부가 체크된다. 라디오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바로 아마존사에 주문을 낼 수도 있다.

이같은 일은 그저 공상 속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불과 몇달 안에 실현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해변에 누워 이메일을 체크하고 주문을 낼 수 있는 날이 1년 내에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올여름 새 세대의 스마트 휴대전화와 무선 개인디지털기기(Personal Digital Assistant:PDA) 제품이 쏟아질 예정이다. 무선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주가 치솟는 무선통신 관련회사

무선통신 관련 회사의 주가를 보면 무선혁명의 가치를 금방 알 수 있다. 디지털 무선영역의 선두주자인 퀄컴사의 주가는 1년만에 3,000% 이상 치솟았고 1990년대 초에만 해도 지지부진하던 노키아의 경우도 무선통신 쪽으로 사업영역을 돌리면서 세계 8대 회사로 성장했다.

우리는 지금 증기기관과 자동차, TV, 컴퓨터에 이은 새로운 기술혁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정보도 가능한 새로운 혁명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제 물리적 위치는 거의 필요없게 된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책임연구원인 빌 조이는 “집 문에서 전구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모든 물건에는 무선 인터넷 접속장치가 설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기세척기가 고장나면 자동으로 휴대전화나 PDA를 통해 주인에게 알려주고 어쩌면 가전제품 수리공에게 연락이 가게 될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미국은 이같은 움직임에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졌다. 미국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때 휴대용 워키토키를 병사들에게 지급할 정도였지만 이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유럽과 아시아가 1990년대 초 무선표준인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을 채택한 반면 미국은 엉거주춤한 태도를 유지했다. 양질의 전화선 또한 무선에 대한 필요성을 없앤 요인이 됐다.


무선 인터넷접속자수 폭발적 증가

그러나 미국도 달라지고 있다. 휴대전화가 늦게 도입돼 1990년대 초 사용자가 500만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000만명으로 늘어났고 2003년에는 1억4,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생산되는 모든 휴대전화는 인터넷 검색기능을 갖추고 있다. PDA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지난해 890만개에서 2003년에는 3,500만개가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코퍼레이션측은 2002년까지 무선 인터넷 접속자가 유선 접속자수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이메일을 비롯해 뉴스 등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심지어 이베이의 경매에도 참여할 수 있다.

무선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은 맞춤서비스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 의사는 팜을 통해 환자의 의료기록과 검사결과를 받고 있다.

일렉트릭데이터시스템즈는 무선 은행거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SN 모바일은 PDA를 통해 직장에서 오는 이메일이나 주가하락폭 등 미리 선택한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공간적 벽도 뛰어넘게 된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긴급상황에 대비해 내년 말까지 모든 이동전화에 위치파악장치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PDA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가까운 스타벅스(미국의 유명 커피체인점)나 중국 음식점을 찾을 수 있으며 가장 가까운 주유소의 위치도 알 수 있다.


활동범위 무궁무진, 시장선점경쟁 치열

업계에서는 무선분야의 활용범위가 거의 무궁무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PDA와 휴대전화는 조만간 화폐를 대체할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휴대전화를 통해 자판기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 팜은 PDA에 계좌번호를 입력시켜놓고 자동으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밖에도 디지털 서명이나 지문 등 인식기술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가격은 싸지고 기능은 점점 좋아지는 추세다. 휴대전화는 PDA보다 가격이 싼 반면 인터넷을 보기에는 화면이 너무 작은 게 흠이다. PDA는 비싸긴 하지만 인터넷 검색에는 적격이다. ‘팜7’의 가격은 449달러이며 매달 무선서비스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

최근에는 양방향 호출기를 이용해 인터넷의 필요정보만 받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미 이메일을 주고 받거나, 아마존에 주문을 하거나, 주변의 식당이나 영화관 가는 길을 알려주는 정도는 서비스되고 있다.

무선시장을 선점하려는 업계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 에릭슨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포켓 PC는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팜에 도전하고 있다. AT&T와 MCI 등은 접속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CNN, ESPN 등은 뉴스정보시장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특히 두 가지 분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무선 인터넷에 접속하면 맨처음 뜨는 화면인 ‘이동포털’을 두고 야후와 AOL, Excite@Home이 경쟁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곳이 ‘무선 인터넷의 야후’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총력을 다하고 있는 무선의 표준 운영체계다. 마치 유선분야의 윈도우처럼 팜이 이미 이 분야를 선점하고 있어 마이크로소프트가 거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키아와 에릭슨, 마츠시다, 모토로라 등이 공동참여한 심비안도 마이크로소프트를 견제하고 있다.


인프라 취약,‘정보의 노예’비판도

무선혁명의 전망이 과장됐다며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팜이 아직 대도시에서만 서비스를 하는 등 무선혁명의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휴대전화도 불통지역이 많은데 무선 인터넷의 경우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사실 무선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기에는 휴대전화나 PDA의 화면이 너무 작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접속속도가 너무 느리다. 현재 PDA의 최고 속도는 전화접속보다 훨씬 느린 19.2K에 불과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같은 문제점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리콘 밸리와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워싱턴 등에서 무선접속서비스를 하고 있는 메트로컴의 경우 올해 말까지 120K 이상의 고속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2003년에는 고속 DSL에 버금가는 384K까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선접속의 효용성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천문학자인 클리포드 스톨은 “길거리를 걸어다니면서까지 인터넷에 접속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지금은 정보가 부족하기 보다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말했다.

무선혁명이 인간을 단편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휴가를 가서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무선을 통해 사무실 일을 하는 풍경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무선기술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이 기사가 나올 때쯤이면 나는 미시시피강을 유람하면서 무선으로 기사를 읽어보고 독자나 회사간부들과 통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일은 제대로 되지만 휴가는 망치는 것이다.

정리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3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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