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열리면 정치도 열린다?

미 하원, 대중국 PNTR 지위부여 압도 찬성

미국의 중국 정책이 ‘햇볕노선’으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미 하원은 5월24일 중국에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Permanent Normal Trade Relations) 지위를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표결은 찬성 237표, 반대 197표의,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 찬성으로 나타났다. 6월초나 중순께 상원 표결을 남겨두고 있어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원은 공화당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방향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상무역관계는 ‘최혜국(MFN) 대우’를 가리키는 용어. MFN 대우 국가는 미국 시장에 수출되는 상품에 대해 다른 나라와 똑같은 저관세 혜택을 받게 된다. 1979년 이래 미국은 중국에 대한 MFN 대우를 매년 경신해왔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인권과 무역의 연계를 사실상 철회한 후에도 MFN 경신문제는 미중 관계의 암초 역할을 해왔다. PNTR 지위를 얻을 경우 중국은 미 의회에 매년 심사받을 필요없이 MFN 대우를 영속적으로 누리게 된다.


미·중 관계의 '암초' 제거

중국은 하원에서 PNTR가 통과됨에 따라 올 연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의 미중 무역관계에 대한 보증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 과거처럼 인권이란 걸림돌에 걸려 매년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며 막판까지 교역조건을 협상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5월25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미 하원은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다”고 논평했다.

미국이 얻게 되는 이익도 중국에 못지 않다. 지난해 11월 중국이 WTO 가입조건으로 약속한 개방의 과실을 얻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과의 쌍무협상에서 자동자 수입관세 인하, 미국 은행의 중국진출 허용, 미국 기업의 전화사업 투자 허용, 미국 곡물 수입확대 등을 약속했다. 인구 13억의 거대시장을 본격 공략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미실현 기대수익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번 하원의 결정은 세계적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WTO의 정신에 비춰볼 때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원 통과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미국내 다양한 정치세력과 이익집단이 ‘캐피털 힐’을 둘러싸고 파워게임을 벌였기 때문이다.

개입(engagement)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클린턴 행정부와 대기업 집단이 한편에 서있다면 인권단체와 노동계가 반대편에 서있다.


채찍보다는 당근

클린턴 행정부와 대기업 집단의 주장은 햇볕정책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중국을 보다 개방적이고, 인권보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PNTR 지위 부여가 필수적이라는 것. 채찍보다는 당근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1,200여개의 대기업은 ‘미중 무역을 위한 기업연합’을 구성해 1,50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로비와 광고에 쏟아 부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중국의 저가제품 홍수로 인해 미국내 실업이 늘어난다고 응수했다.

인권단체들은 중국내 인권수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MFN 지위 경신을 결정적인 무기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하원은 최종적으로 행정부와 대기업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내 논란과 진통은 하원 통과 직후 클린턴 대통령의 담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 하원은 미국의 계속적인 번영과 중국의 개혁, 세계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조치를 내렸다.

만약 상원도 하원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미국을 위한 새로운 무역의 문호 뿐 아니라 중국의 변화를 위한 새로운 희망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노동계와 인권단체 등 반대세력을 진무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원도 통과에 앞서 반대세력의 주장을 반영해 법안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했다. 중국 제품이 과다수입될 경우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긴급 수입제한 규정’(safe guards)과 중국의 인권과 노동상황 등을 감시할 ‘중국위원회’설치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인권을 이용해 중국 내정에 간섭하려 한다”며 심각한 불만족을 표명했다.

중국측은 PNTR의 상·하원 통과를 거의 낙관하고 있는 듯 하다. 관영매체들은 PNTR 통과 여부가 아니라 WTO 가입 이후의 국내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WTO 가입이 수출입 수지와 재정적자에 악영향을 미치고 국유기업 합병·파산을 가속화하면서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로부터의 직접투자 증가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 효과는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입장이다.


단기적 고통, 장기적 이득

메릴린치의 중국 경제 분석가 마궈난도 중국의 WTO 가입에 따른 전반적인 효과를 ‘단기적 고통, 장기적 이득’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는 현재 중국 경제의 체질로 볼 때 단기적인 고통에 대해서도 상당한 완충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완충수단이 인민페(위앤화) 환율이다.

분석가들은 위앤화를 소폭 평가절하할 경우 저율관세로 인한 수입증가를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인민폐 환율 변동폭의 의도적인 확대를 통해 이같은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눈치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5/31 18:23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