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분석] 김일성 생전에 이미 '실질적 통치자'

김정일은 매우 독특한 정치지도자다.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장악했을 때 많은 사람은 과연 그가 통치력을 갖춘 지도자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의문은 그가 실권을 장악한 1970년대 초 이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끗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권좌에 있던 기간동안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은 겪었을지언정 정치적으로는 지극히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북한 정권이 창건된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로 기억될 1990년대를 김정일 정권이 별 탈 없이 통과한 것을 보면 그의 리더십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신비스런 지도자 이미지 구축

김정일은 2,200만명이라는 적지않은 인구를 가진 나라의 최고지도자다. 그럼에도 그의 통치스타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당연하게도 북한 내부에서 그가 행한 통치활동은 주민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주민들은 김정일을 로동신문이나 중앙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보게 된다. 물론 김정일의 육성은 들리지 않는다. 이를 통해 김정일은 신비화된 지도자의 이미지로 주민에게 각인되어 있다.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그가 통치한 이래 북한의 경제사정이 나빠졌고 “김일성은 그래도 항일투쟁을 했고 나라를 세웠지만 그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는 비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개인적인 수준의 것이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없다. 그는 항상 현지지도와 시찰을 통해 군대의 열병식이나 대규모 당정회의 개막식을 통해서만 인민에게 모습을 비치며, 그에 관한 전설적인 얘기들은 북한 주민에게 끊임없이 교양되고 있다. 여전히 그는 북한 주민에게 김일성 못지 않은 위대한 인물로 비쳐지고 있다.

최근 김정일이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했다는 설이 제기됐듯이 그는 해외방문도 거의 없으며, 있다고 해도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북한 외부에서도 그에 관한 얘기는 추측이거나 소문으로만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북한을 방문하는 외부인은 그를 만나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역시 신비한 지도자의 이미지 구축에 일조한다.

그가 정치경력을 당의 조직지도와 선전선동 분야에서부터 쌓기 시작했으며 특히 당간부 인선과 책벌을 담당하는 조직사업을 지난 30여년간 담당했다는 것은 그가 북한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지도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다. 당비서국 조직지도부는 그야말로 ‘당 속의 당’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막강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당 총비서로서 조직사업을 직접 장악하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당조직 분야를 담당했던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북한에서 대규모 숙청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른바 ‘유일지도체계 10대 원칙’이 제정되고 북한 사회의 분위기가 냉각된 이후이기 때문에 감히 김정일에게 도전할 간부들이 나타날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김정일의 간부정책이 보수적임을 드러내는 증거로도 읽힌다. 지난 30년동안 북한의 간부 인선은 그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고 보면 된다.


충성경쟁 유발하는 통치솔

김정일은 당과 국가, 군대 등 모든 권력기구를 세분하여 각 조직이 자신만을 쳐다보며 충성경쟁을 하게 만드는 통치술을 발휘한다. 마치 구획화된 칸막이로 빙 둘러져 있는 방의 한 가운데에 자신만이 서있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분할통치 방식의 전형이다. 각 기구들은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여 결재를 받은 후에 집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노선을 달리하는 세력은 존재할 수 없다. 만일 기구나 조직간에 정책방향이 다른 경우가 발생하면 이는 김정일에 의해 직접 정리된다.

따라서 북한의 모든 간부나 기구들은 오직 김정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김정일은 당업무를 통해 통치행위를 시작했기 때문에 국가나 군대보다는 당에 대해 애정을 많이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국가사무를 책임진 뒤에는 당 이외의 조직도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예컨대 1980년대 중반 그는 외교업무에 대한 더욱 많은 권한을 당 국제부보다 외교부(지금의 외무성)에 부여하고 그 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1991년에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최고사령관이 된 그는 국방업무를 관리하는 최고책임자가 됨으로써 김일성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사실상의 실질적인 최고통치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모든 분야의 권력기구를 장악해 왔기 때문에 그에게는 당·정·군의 역할 분담만 있을 뿐 이들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하등의 필요성도 갖지 않는다.


독특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

따라서 경제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자리에서는 내각의 역할을 강조하고, 안보나 기강을 강조할 때에는 군대를 내세우고, 정치나 사상을 내세울 때에는 당을 강조한다. 1996년 김일성종합대학 당간부 앞에서 한 비밀연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김정일은 “당 사업이 인민군대 사업보다 못하다”고 질책한 후 당일꾼들에게 인민군대의 사업작풍을 본받으라고 지시했다. 당과 군대를 경쟁시킴으로써 통치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간의, 또는 이들 내부의 토론과 합의는 존재할 수 없다.

김정일 정권 하에서 가장 약화된 조직이 바로 당 중앙위원회나 정치국 등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당-국가체제에서 정책결정을 책임지는 최고 조직이라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당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이 북한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과 권한을 가진 조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특히 정치국은 당의 원로간부들이 모여있는 일종의 원로원과 같은 성격을 가질 뿐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비록 공식서열은 낮지만 조직부나 선전선동부, 통일전선부 등에 포진해 있는 소장 당관료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두고 이들을 통해 통치활동을 펴나간다.

이른바 측근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북한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당-국가체제와도 다른 독특한 성격의 정치체제인 것이다.

김정일의 존재를 빼고 북한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에서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가 김일성보다 못하다는 말은 김일성이 살아있지 않은 오늘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에서 김정일만 설득하면 북한의 국가정책 노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의외로 쉽게 올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러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류길재 경남대 교수

입력시간 2000/06/0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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