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미국에서도 과외열풍

토요일 아침마다 우리집 두 아들이 다니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어서 가끔 데리고 가곤 한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부터 5, 6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까지 능력에 따라 세 반으로 나누어 하는데 둘째는 초급반이고 첫째는 상급반이어서 한번 가면 꽤 많은 시간동안 여러 아이들을 관찰할 기회가 된다.

먼저 놀라운 것은 많은 아이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온다는 것이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OO축구팀’이라 씌어진 유니폼을 입고 오는가 하면 리틀 리그의 야구 유니폼을 입은 남자아이도 눈에 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평상복이 그리 많지 않아 학교에서 운동복을 맞추면 그것을 교복처럼 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미국 아이들이 그런 이유로 음악 교습 시간에 운동복을 입고 나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아해 하고 있었는데 역시 교습이 끝나자마자 부모들은 “자, 다음은 야구하러 가자”면서 아이들과 함께 서둘러 자리를 뜨는 것을 보았다.

과외교육에 단련된 우리 못지않게 열심히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미국 부모를 보고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교육자들은 미국에서는 과외 열풍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미국 학생들은 엄청난 과외활동을 하고 있다.

카운티(미국의 행정구역 단위로 우리나라의 시나 군)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이나 단체에서 보내오는 카탈로그를 보면 온통 어린이와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다. 수영, 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골프, 태권도, 검도, 발레, 피아노, 사진, 그림, 조각 및 크래프트 뿐만 아니라 수학 및 과학 교실도 있다.

아울러 각급 학교에서 하는 보이스카우트 또는 걸스카우트뿐만 아니라 박물관에서 열리는 역사 및 과학 프로그램도 있다. 목록만 제대로 살펴보는데도 서너 시간이 걸리는데 이 많은 프로그램이 대부분 학생들로 가득 찬다.

따라서 미국의 부모들은 ‘Soccer Mom’이라고 불리듯 택시운전사 마냥 아이들을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난다고 불평하곤 한다. 특히 토요일은 늦잠도 못자고 일찍 일어나 수영이나 축구 등 최소한 서너 군데는 다니는 최악의 날이라고 한다.

운동뿐만 아니다.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가보면 부모 손을 잡고 온 초등학교 3, 4학년 학생들이 공룡 화석을 만지면서 세계 최초의 비행기와 달에 인간을 보낸 우주선을 직접 보면서 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가서 민주정치를 공부하며 남북전쟁 당시 직접 전투했던 곳을 부모 손을 잡고 따라 돌아보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부모들이 다 직접 참여하면서 주관하여 돌보고 있다.

미국 과외활동의 또하나의 특징은 부모의 참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을 위한 과외활동은 부모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각 학교의 스카우팅 활동이다.

부모들은 매주 열리는 스카우트 모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 뿐 아니라 스스로 리더가 되어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따라서 대부분의 과외활동은 학부모의 모임이 되기도 하여 학교에 학부모의 입장을 전달하는 압력단체의 역할을 한다.

학교수업 이외에도 이러한 과외활동으로 자라난 미국의 청소년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을 배운다. 수많은 선택사항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보다가는 마음에 안들면 새로운 것을 해보고, 그러면서 선택과 책임에 대한 훈련을 쌓을 기회를 가지게 된다.

미국에도 한국 못지않은 과외열풍이 있다. 다만 한국의 열풍이 소위 일류대 합격이라는 방향으로만 너무 심하게 불고 있는데 비해 미국의 바람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분다는 점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의 과외활동도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다양성을 제공하여 선택에 따른 책임을 훈련할 수 있는 기회로 좀 더 발전될 수 있도록 부모들이 나서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박해찬 미HOWREY SIMON ARLON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06/0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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