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순례] 까르푸⑮

2000년 1월 중순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에는 프랑스의 추락하는 국제적 위상을 개탄하는 특집 기사가 실렸다.

르 피가로는 이 기사에서 “영국에는 27가지 세금 밖에 없는데 프랑스 국민은 106가지의 세금을 내야 한다”며 “국가가 과도한 규제의 사슬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르 피가로의 지적처럼 요즘 프랑스에서는 프랑스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의 문맹률은 폴란드 수준이며, 유엔이 발표한 인간개발지수는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영국 등에 뒤진 11위이다. 한마디로 ‘프랑스는 더이상 선진국이 아니며, 중진국에 불과하다’는 자조가 팽배한 상황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유통업

하지만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라는 말처럼 유통업에 관한 한 프랑스 기업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그 중심에는 까르푸(Carrefour)가 있다.

파리에 본사가 있는 까르푸는 1963년 파리 근교에 세계 최초의 하이퍼마켓 1호점을 개점한 이래 37년 동안 ‘하이퍼 마켓’(Hyper Market)이란 새로운 유통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1999년말 현재 까르푸의 총매출은 376억 유로(39조7,800억원·1유로=1,080원 기준)로 미국의 대형 할인점 월마트에 이어 규모면에서 세계 2위를 자랑한다.

까르푸는 특히 프랑스 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에도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까르푸는 1999년말 현재 세계 26개국에 9,000여개가 넘는 매장과 약 14만6,000여명을 종업원을 두고 있다. 이중 까르푸의 하이퍼마켓 점포는 680개이며 슈퍼마켓과 할인점은 각각 2,260개와 3,120개에 달한다.

까르푸는 26개국에 걸쳐있는 거대한 국제적 유통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찍부터 해외 유통업에 진출해 성공한 기업이다.

즉 하이퍼 마켓이라는 개념을 창안, 유럽에서 성공을 거둔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59개 매장)과 아르헨티나(21개 매장)에 진출해 두 나라에서 최대의 유통업체로 자리잡았으며 멕시코에도 진출하여 현재 19개점을 운영하고 있다.

남미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까르푸는 1989년 대만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을 시작해 1998년말 현재 대만에 21개점, 말레이지아에 5개점, 태국에 7개점, 홍콩에 4개점, 싱가폴와 인도네시아에 각각 1개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다국화된 조직을 통솔하기 위해 까르푸의 의사결정 역시 다국화되어 있다.

즉 다니엘 베르나르(Daniel Bernard) 회장을 중심으로 프랑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등 주요 지역을 관장하는 부회장이 책임 경영을 맡고 있다. 현재 아시아 지역은 르네 브리에(Rene Brillet) 부회장이 홍콩에 사무실을 두고 관장하고 있다.


과감한 합병, 월마트에 정면도전

까르푸는 또 경쟁기업과의 과감한 합병과 전자상거래 분야로의 투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까르푸는 지난 2월28일 오라클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인터넷을 통한 기업간 온라인 상품거래소인 ‘글로벌 넷’을 개설했다.

이에 따라 소매업자들은 글로벌 넷을 통해 까르푸가 매년 5만여 공급업체로부터 사들이는 각종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또 지난해에는 프랑스의 또다른 유통기업인 프로모데스(Promodes)와 합병, 월마트에 정면도전을 선언한 상태다.

그렇다면 까르푸는 한국 시장에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진출했을까. 또 ‘세계 2위’라는 까르푸의 위상은 한국 시장에서도 먹혀들고 있을까. 까르푸는 1993년 12월 당시 재무부로부터 6,000만달러(480억원)의 투자인가를 받고 1996년 7월 경기 중동에 ‘까르푸 1호점’을 개설하면서 한국에 진출했다.

이후 까르푸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내 매장을 확장해 나아가 1999년말에는 매장이 11개를 넘어섰으며 2000년말까지는 매장 숫자를 19개까지 늘려나갈 예정이다.

이에 따라 까르푸는 국내 유통업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으로 가장 큰 규모(1999년 매출 7,666억원)를 자랑하고 있다. 까르푸는 또 한국 경제가 IMF체제로 있던 1998년 1,000여명이 넘는 대규모 채용을 실시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국선 아직 적자

하지만 총론적으로 말하면 2000년 5월 현재 까르푸는 한국 진출이 제 궤도에 올라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까르푸는 우선 1998년 터진 소위 ‘외화 밀반출 사건’ 등으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어 있다.

검찰에 따르면 한국까르푸는 1997년 사장인 베르나르 엘로아씨와 한국계 임원이 공모해 까르푸 본사가 영업부지 매입자금으로 송금한 1,540억원의 자금 중 340억원을 환치기 수법으로 스위스 은행에 밀반출했다.

당시 까르푸의 외화밀반출 사건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상황에 터져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와 함께 한국까르푸의 경영상황도 아직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까르푸는 88억9,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까르푸 본사의 경우 7억9,200만유로(약 8,000억원)의 흑자를 낸 것과는 크게 비교된다.


하이퍼마켓이란

하이퍼마켓과 슈퍼마켓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까르푸가 1963년 파리 교외에서 처음 선보인 하이퍼마켓은 슈퍼마켓과 할인판매점, 창고 소매업의 장점만을 결합한 업태다.

즉, 하이퍼마켓은 창고형 매장의 분위기처럼 운영되지만 회원제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개방된 소매업체다.

따라서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며 한 곳에서 생활에 필요한 식품 및 비식품 등 상품을 모두 구매할 수 있다. 동시에 식품 부문의 신선도 관리에 관한 노하우가 매우 뛰어나다. 물론 대규모의 주차장은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결론적으로 하이퍼마켓은 광의의 ‘할인점’(Discount Store) 범주에 포함되지만 미국식 할인점에 비해 식품 부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그 구색이나 신선도가 뛰어나다. 업태면에서 보면 미국식 ‘할인점’에 식품부문을 강화한 ‘슈퍼센터’가 유럽식 ‘하이퍼마켓’인 셈이다.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07 18:29


조철환 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