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1800년대 사랑과 예술의 세계

세익스피어나 제인 오스틴, E.M. 포스터의 작품은 최근에도 꾸준히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가 여타 예술 분야에 진 빚이 적지 않지만 특히 문학에 진 빚은 가장 광범위하고 또 근본적이다.

“좋은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오기는 힘들다”는 것은 영화의 기본이 되는 이야기 서술,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잠언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페테스부르그, 그리고 1800년대 말의 영국과 이탈리아 베니스로 데려가는 시대극 두 편도 문학 작품을 토대로 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잠깐 극장에 걸리는 시늉만 하고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었는데 완성도에 비해 대접이 너무 소홀했다.

알렉산더 푸쉬킨이 1833년에 발표한 소설 <예프게니 오네긴>을 영화로 옮긴 <오네긴:Onegin>(시네마트 출시, 18세가 등급)은 영국의 상류 예술가 집안인 파인즈가가 재능을 모았다.

오래 전부터 영화화를 꿈꾸어왔다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주연배우 랄프 파인즈가 제작과 주연을 맡았고, 연출은 그의 여동생인 CF감독 출신 마샤 파인즈가, 음악을 맡은 이는 친척인 마그너스 파인즈다. 파인즈 집안의 또다른 유명 영화인으로는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세익스피어 역을 맡았던 조셉 파인즈가 있다.

삼촌으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데카당스한 청년 오네긴(랄프 파인즈)의 빗나간 사랑의 궤적을 따라가는 비장미 넘치는 시대극.

“악마가 날 언제 데려갈까”라는 음울한 독백으로 시작되는 <오네긴>은 검은 실크햇과 외투 차림의 오네긴이 페테스부르그의 질척한 뒷골목을 걸어가는, 외롭고 격정에 휩싸인 뒷모습, 그리고 병들어 테라스에 앉아 기약없는 편지를 기다리는 것으로 끝날 때까지, 사랑을 경험한 이의 심금을 울리는 경이로운 묘사로 가득하다.

시기, 연령, 심정, 신분의 차를 극복하지 못한 사랑의 상대역 티티아나를 연기한 이는 리브 테일러다.

<도브:The Wings of the Dove>(폭스, 18세가)는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빌려왔다. 영국적 마인드를 가진 인물들, 여성 심리를 파고드는 유려한 문체로 유명한 제임스는 <여인의 초상>이 제인 캠피온에 의해 영화화하면서 많은 영화인이 <윙스 오브 더 도브> 또한 영화화를 탐냈다.

안소니 밍겔라, 존 메든, 제임스 아이보리, 제인 캠피온 등 기품 넘치는 시대극 경험이 있는 감독이 경합한 끝에 이안 소프틀리에게 낙점됐다. 이안은 비틀즈의 초창기를 묘사한 <백 비트>로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부유한 귀족 가문 어머니와 무능력한 하층민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케이트(헬레나 본 햄 카터)는 이모(샤롯 램플링)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언니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죽음을 목도한 이모는 케이트를 상류 사회에 진입시키려 애를 쓰지만, 케이트는 이런 의도가 내키지 않는다. 브르조아를 경멸하는 기자 머튼(라이너스 로치)과의 사랑도 케이트가 상류사회에 쉽게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그러나 미국 갑부의 딸 밀리(알리슨 엘리엇)와 친구가 된 케이트는 그녀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머튼을 접근시키는데.

계급을 뛰어넘는 결혼을 했던 부모. 그러나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사랑은 불행의 그림자만 남겼다. 런던의 뒷골목에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오만한 이모의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부자유. 이 두 세계의 간극과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케이트는 자신의 사랑을 시험한다.

그러나 감정이 계획대로 움직여주는 것인가,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06/0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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