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⑫] “드라큐라 살판났네.”

‘피는 물보다 진하다’,‘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유전자가 발견되기 전이나 후나, 피는 조상 대대로 이어지는 유전적 끈으로 표현되고, 때로는 그 사람의 순수성에 대한 근거로까지 거론된다. 차치하고라도, 혈액은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가장 값진 액체이다.

지난주 목마른 지구 이야기를 했는데,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피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고 있다. 목마른 드라큐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외과수술, 전쟁, 재난 등으로 인한 혈액의 필요량에 비해 세계적으로 해마다 1억 유니트(약 4,500만 리터)의 혈액이 부족한 상태다.

매년 줄어드는 헌혈자의 수는 상황을 더욱 심각한 지경으로 만들고 겨우 6주에 불과한 혈액의 수명도 문제다. 더구나 수혈 중 에이즈 등 질병의 감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헌혈된 피의 수혈을 기피하는 경향까지 가세했다. 이만하면 인공혈액(또는 혈액대안물질)의 개발 타당성은 넘쳐난다.

인공혈액에 대한 꿈은 1968년 혈액 속의 산소운반체인 헤모글로빈이 밝혀졌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격적 연구의 돌입은 수혈과정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와 B형 간염 바이러스의 감염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직후인 1987년부터.

현재 인공혈액의 연구는 산소를 운반하는 인공 적혈구, 혈액응고를 돕는 인공 혈소판, 그리고 감염을 막는 인공 면역체의 개발 등 3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공 적혈구에 대한 연구가 그중 가장 앞서 있다. 미국에서만 6개의 기업이 인공혈액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혈액은 크게 ‘헤모글로빈 변형류’(Modified hemoglobin)와 ‘프플루로 계통’(Perfluorochemical)으로 구분된다. 헤모글로빈 변형류는 헤모글로빈에 미세한 지질막을 씌우거나 또는 화학물질이나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4-5개의 헤모글로빈을 하나로 묶어서 만든 것이다.

적혈구에서 추출된 그대로의 헤모글로빈은 혈류에서 구조가 와해되어 혈류에 잔류할 수 없고 신장에도 유독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형기술로 헤모글로빈 분자를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노드필드’(Northfield)와 ‘바이오퓨어’(Biopure) 등의 회사가 제품의 3차 임상실험에 돌입했다.

프플루로 계통은 플루로탄소가 산소를 운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액체 플루로탄소 속에 쥐를 넣어두면 쥐가 액체 속에서도 호흡을 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종류는 ‘프플루록틸브롬’(C8F17Br)과 ‘프플루로다이코록탄’(C8F16Cl2)이다.

프플루로 계통의 인공혈액은 우유빛을 띠며 크기는 적혈구의 40분의1로서 적혈구가 가지 못하는 막힌 모세혈관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얼라이언스(Alliance)사는 프플루록틸브롬을 이용해서 ‘옥시전트’(Oxigent)라는 제품을, 헤모젠(Hemogen)사는 프플루로다이코록탄을 사용하여 ‘옥시플로어’(Oxyflour)라는 제품을 개발, 현재 3차 임상실험중에 있다.

얼라이언스의 부사장 거웬 로젠버그(Gwen Rosenberg)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월31일 유럽 8개국 484명의 일반외과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차 임상실험 등록을 완료했으며 모든 것이 순조롭다면 2001년 후반기나 2002년에 유럽시장의 판매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지만 인공혈액은 상온에서 최고 2년까지 보관할 수 있다는 점과 수혈을 통한 질병 감염의 위험이 적고 혈액형에 상관없이 수혈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활용가치가 높다. 더구나 세계의 인공혈액 시장은 수백 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1,500만 달러를 혈액수입에 지출한다. 인공혈액의 상업적 의미도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1세대 인공혈액은 산소운반 기능이 전부지만 다음 세대의 인공혈액은 나노기술의 적용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며 효과적인 산소공급 기능과 함께 혈액응고 인자와 면역인자뿐 아니라 영양 대체까지도 가능한 전천후 혈액이 될 것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06/1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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