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대권행보 가시화?

2002년 대선과 월드컵, 여러 가능성 놓고 '설' 난무

2002년은 온 세계를 열광케 할 월드컵 축구경기가 서울에서 열리는 해다. 또 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이기도 하다. 얼핏 생각하면 별 관계가 없을 것 처럼 보이는 이 두가지 사건을 그럴듯하게 연결시키는 ‘진담반 농담반’의 얘기가 요즈음 정치권에 흘러다니고 있다.

그 한토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짐작하겠지만 두 사건의 연결고리로는 대한축구협회장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고 또 이번 16대 총선에서 4선의원이 된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등장한다.

“월드컵 축구경기에서의 우리나라팀 성적과 정몽준 의원의 대권행보와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팀의 성적을 좀더 구체적으로 예시한 상황설명까지 곁들여진다.

즉, 한국팀이 8강 이상에 오르면 정 의원의 대권가도는 ‘탄탄대로’까지는 아니어도 샛길을 벗어나 큰 길로 접어든 것과 같다는 얘기가 먼저 나온다.

그러나 16강에도 들지 못하면 ‘축구 영웅’인 정 의원의 대권행보도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위협적인’진단이 곧바로 이어진다. 어찌보면 웃자고 하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우선 정치와 스포츠와의 관계를 감안할 때 정 의원이 일단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아마도 정 의원의 캠프도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한국축구 하기 나름?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먼저 정 의원이 과연 대권에의 꿈을 갖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결론은 ‘두말 하면 잔소리’라는 것이다. 정 의원측은 16대 총선이후 비교적 많은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지역화합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는 무소속을 탈피, 정당을 선택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비록 직접적인 언명은 아니지만 누가 들어도 대권에의 의지와 연결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정 의원이 갖고 있는 조건은 또 어떤가. 국내 최고학부를 졸업하고 해외 유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37세 때 정계에 입문, 내리 4선을 했다. 정 의원은 올해 49세로 지도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세계적 추세를 감안할 때 상당히 적당한 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정 의원은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현대그룹 정주영 전명예회장의 아들로 현대가문의 차세대 주자인 점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재벌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결정적이기는 하지만 일단 갖출 것은 다 갖췄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정도다.

여기서 호사가들은 “최근 현대그룹의 ‘3부자’가 동반퇴진을 선언한 것은 정씨 일가와 현대그룹의 관계를 후퇴시킴으로써 정 의원에게도 들씌워져 있는 ‘재벌 2세’의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대권 포석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얘기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누구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서 다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 경기와 정 의원의 대권행보를 연결시키는 얘기가 전혀 얼토당토하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정치권에서 그를 주요한 ‘변수’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인정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모종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가시화된 상태다. 무엇보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실세중 실세라고 할 수 있는 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 상임고문이 정 의원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다 알려진 얘기다.

정의원측에서도 거취 문제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지만 싫지 않은 눈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덧붙여 아직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깊숙한 말이 오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민주당 입당은 동서화합 명분 쌓기

여기서 우리가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문이 생긴다. 영남권인 울산에서 ‘현대의 후광’을 배경으로 아성을 쌓은 정 의원이 왜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당을 택하려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까. 또 ‘중산층과 서민의 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은 왜 ‘재벌 대통령’,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정 의원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일까.

정의원측에서는 ‘동서화합’의 명분을 우선적으로 꼽는 것 같다. 민주당측에서도 정 의원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면서 역시 ‘지역정서 극복’의 과제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정치는 명분도 명분이지만 오히려 현실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정 의원에게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민주당 한 중진의원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한 이 의원은 “정 의원의 민주당 입당은 2002년 정권재창출을 위한 전략·전술상 전혀 해가 될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회적으로 포장된 이 발언의 진의를 핵심만 간추리면 ‘반 민주당, 반 DJ 정서가 극렬한 영남지역의 야당을 위한 단결력을 감소시킬 수만 있다면 민주당으로선 일단 호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 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하더라도 당의 대권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대선에 임박해선 정 의원이 다시 탈당, 독자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는 지나치게 정략적인 분석까지 곁들여질 때도 있다.

이는 영남권의 분열을 의미한다. 또 민주당으로선 너무 조기에 특정주자에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을 견제하고 내부 경쟁을 유도, 대선주자 그룹을 용이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차차기 노린 행보’ 관측

한편으로 정 의원으로선 스포츠계에서 쌓은 성과와는 별도로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정치력, 지도력, 행정력 등이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검증받기 위해서는 정권에의 참여와 선택의 기회가 다양한 여당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민주당측이 정 의원의 영입교섭 과정에서 장관직을 제의했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에 ‘각료로서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정의원측은 민주당에 입당하더라도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점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알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의 민주당 입당이 현실화한다면 그것은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정 의원이 검증의 기회를 최대한 확보한 뒤 사실은 2002년 대선이 아닌 차차기 대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고태성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13 22:10


고태성 정치부 tsg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