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건물, 새 옷 입고 '회춘''

빌딩 리노베이션 붐, 잠재수요 무궁무진

흘러가는 세월은 그 무엇도 속일 수 없는 걸까. 1960~1970년대 한국 경제의 근대화를 상징하며 서울 도심에 들어섰으나 세월의 풍파에 위세를 잃어버린 주요 대형 건물을 ‘회춘(回春)’시키려는 작업이 서울 한복판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리노베이션 사례는 제일화재와 구 상업은행 본점. 1963년 건립 당시 국내 최고층 건물(13층)이었던 서소문 제일화재 빌딩(연건평 2,675평)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지난해 9월 완전히 새로운 건물로 재탄생했다.

이 건물은 기존 골조만 남겨두고 건물 내외벽과 구조를 모두 개보수했다. 마감재로 알루미늄 패널과 파스텔 유리를 사용해 완전히 새로 지은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을 바꾸는데 들어간 비용은 130억원으로 공사 기간은 조사와 설계변경 기간을 제외하고 18개월 가량 걸렸다.


제약 많은 재건축보다 개보수 선호

1965년 준공 당시 박정희 대통령까지 준공식에 참석할 정도로 최첨단 건물로 출발했던 중구 소공동의 구 상업은행 본점 13층 건물(4,391평)도 외국 비즈니스맨을 겨냥한 고급 아파트로의 재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한빛은행으로부터 구 상업은행 건물과 주차장을 380억원에 인수한 SGS컨테크는 이 건물을 펜트하우스 개념의 아파트로 개조하고 있다.

SGS컨테크 관계자는 “기존 건물을 허물고 재건축을 할 경우 용적률과 건폐율 제한때문에 현재 건물의 3분의2 수준밖에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었다”며 “리노베이션을 통해 전체 공사비의 30~40%를 차지하는 골조비를 아낄 수 있고 기간도 6개월밖에 안 걸린다”고 설명했다.

제일화재, 구 상업은행 건물처럼 겉과 속을 모두 바꾸는 것과 함께 단순히 겉모습을 바꾸는 리노베이션도 활발하다.

충무로에 있는 14층 건물인 삼윤빌딩은 지난해 알루미늄 패널을 마감재로 사용해 2개월만에 건물 외관을 완전히 뜯어 고쳤다. 이밖에도 1971년 서울 명동에 19층 짜리 초대형 건물로 들어선 SK유통 사옥(4,050평)도 외벽 마감재를 바꾸는 방식으로 겉모습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선진국선 이미 건축시장의 30%이상 차지

이처럼 건물의 리노베이션이 붐을 이루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LG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 나라보다 산업화가 앞선 선진국의 경우 건축물 리노베이션 시장은 이미 전체 건축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해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리노베이션 시장은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1998년 건축시장 투자액 6,263억 달러중 약 32%인 1,980억 달러가 리노베이션 사업에 투자되었다.

미국 정부가 ‘에너지 보전과 생산에 관한 법률’과 ‘전국 에너지 보전정책에 관한 법률’등을 통해 기존 건축물에 대한 에너지 관련 리노베이션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으며, 1960~1980년대 건축된 건축물중 상당부분이 1990년대 들어 리노베이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지역도 건설투자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리노베이션 시장이 연평균 2% 내외의 증가율을 유지, 건설산업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1997년 기준으로 유럽 15개국의 전체 건축시장에서 리노베이션이 차지하는 평균 비율은 약 35% 정도. 이탈리아가 46%, 프랑스와 영국이 43%,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약 39%를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본도 리노베이션 시장이 1995년에 이미 전체 시장의 25%를 넘어섰다. 일본의 건설관련 연구기관들은 리노베이션 시장이 2010년에 약 27.6조엔에 달해 현재의 약 1.5배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60년대 개발기 건물들 대상

그렇다면 새천년을 전후해 우리나라에서 건축물 리노베이션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1960년대 지어진 주요 건축물이 노화기에 접어들었으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리노베이션이 재건축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1960년대 이후 개발붐을 타고 신축된 건축물의 상당부분이 ‘회춘’작업에 돌입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통계청의 건축허가면적 추이를 보면 1999년말 현재 신축후 20년 이상 된 건축물이 약 3,500만평, 15~19년 된 건축물이 약 4,700만평 정도로 전체 건축물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리노베이션의 주 영업대상이 15~20년 이상 된 건축물임을 감안하면 리노베이션의 잠재 수요는 무궁무진한 상태다.

특히 노후 아파트의 경우 그동안 시세차익을 노린 재건축이 선호되었으나, 1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는 건설업체나 입주자 입장에서 경제적 매력이 낮아 고층 아파트를 대상으로 하는 리노베이션 사업이 점차 증가할 전망이다.

리노베이션의 또다른 성장 요인은 재건축에 비해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하다는 점이다. 즉 리노베이션은 철거에 따른 폐자재의 발생을 크게 줄이고, 신축에 소요되는 자원을 절약할 수 있어 비용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특히 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리노베이션은 재건축의 약 30~60% 정도의 비용으로 신축과 비슷한 효과를 거두는 장점이 있다.


대기업들 시장진출 적극 추진

이에 따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는 국내 리노베이션 시장 규모를 2000년 약 11조원에서 2005년에는 19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중 대형 건설기업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개수 시장이 2000년에는 2조원에서 2005년 8조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건축물 리노베이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건설기업, 특히 대형 건설기업의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경우 1999년초 ‘건물 성능 개선팀’을 구성해 리노베이션 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이미 서울대병원, 외환은행 본점사옥 및 상업은행 본점사옥 등의 리노베이션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또 삼성에버랜드도 ‘빌딩과학연구소’를 전담부서로 만들어 리노베이션 사업에 뛰어들었고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주택부문을 전담하는 ‘주택 리폼팀’과 빌딩, 오피스, 상가 등을 대상으로 하는 ‘빌딩 클리닉’을 통해 리노베이션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이밖에도 현대산업개발과 주택공사가 각각 자회사를 설립해 리노베이션 사업에 진출했으며 LG건설, 대림산업, 한신공영, 우방 등도 전담팀 구성을 통해 리노베이션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중이다.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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