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경기도 화성군 제부도

17년 전으로 기억된다. 제부도(경기 화성군 서신면)는 힘겹게 찾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용산에서 시외버스로 사강리에 간 뒤, 반나절을 기다려 감뿌리행 시골버스를 탔다. 감뿌리에서 마냥 바다만 쳐다보다가 썰물이 되어 길이 열리면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걸어 들어갔다. 운이 좋으면 소달구지나 경운기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민박을 치는 집은 마을에 달랑 한 곳. 주로 MT를 온 대학생들이나 낚시꾼들이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민박집에서 하루 이틀 묵다보면 모두 한가족처럼 친해졌다.

해가 넘어가면 민낚싯대로 잡은 망둥어로 매운탕을 끓여 대학생들과 낚시꾼들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함께 술을 마셨다. 대학가에 최루탄이 춤을 추었던 때. 낚시꾼들은 대학생들이 ‘빨갱이’가 될까봐 장탄식을 하며 걱정을 했고, 대학생들은 낚시꾼들을 안심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촌마을의 인심이 살아있던 시절, 밤이 깊어 안주가 떨어질 즈음이면 민박집 아주머니는 아무 말 않고 싱싱한 회를 한 광주리 썰어 슬그머니 술판에 디밀었다.

제부도는 자가용 승용차가 일반화하면서 급격히 관광지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진귀한 매력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제부도는 모세의 기적 외에도 섬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골고루 품고 있는 곳이다.

파도와 바람이 조각해 놓은 기암(奇岩), 넓은 백사장, 각종 조개와 게가 숨어 있는 갯벌, 늪지와 갈대밭….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서울서 불과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도시와 단절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시민에게 축복으로 여길 수 있는 섬이 있다면 바로 강화도와 제부도일 듯하다.

하루 두 번 열리는 2차선 연육(連陸)도로를 따라 제부도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것은 매바위(鷹岩). 섬 남서쪽 곶부리에 나란히 서있는 4개의 돌봉우리이다. 만조 때에는 3분의 1이 물에 잠기지만 물이 빠지면 모래밭으로 걸어들어가 바위에 닿을 수 있다.

과거 매 둥지가 많아 이름이 붙여진 이 바위는 30여년 전에는 두 개의 바위였다고 한다. 풍화에 갑작스레 깎여 두 바위의 가운데가 각각 패이더니 이제는 네 개의 기둥처럼 되어버렸다. 매바위는 제부도에서 용왕(龍王)과 속세를 연결하는 신령스러운 존재이다. 바위를 돌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매바위 서쪽에서 시작해 약 1.5㎞가량 하얀 모래밭이 뻗어있고 나란히 갯벌이 펼쳐진다. 갯벌은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 폭이 1㎞에 달한다. 굴 맛살 삐쭉 바지락 동죽 피꼬막 모시조개 등 조개들의 천국이다.

휴일이면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조개잡이가 장관을 이룬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바닷가재와 겉모습이 비슷한 ‘쏙’을 잡아내기도 한다. 돌맹이 하나 없는 완벽한 안전지대여서 아이들이 뛰어놀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배우기에 더없이 좋다. 갈아입힐 옷과 장화만 준비한다면 아이들에게 최고의 하루가 보장된다.

지난해 서해안 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이 개통되면서 제부도 가는 길을 더 빨라졌다. 성산대교에서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직진하면 서해안고속도로.

비봉IC에서 빠져 우회전 306, 309, 336번 지방도로를 연이어 갈아타면 감뿌리에 닿는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성산대교에서 40분이면 충분하지만 휴일에는 체증이 심하다. 길이 열리는 물때와 제부도 안내는 화성군전화자동안내(0339-373-2006)를 이용하면 된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0/06/1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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