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멀티 엔터테인먼트의 장을 변한다

서울 광진구에 살고 있는 무역회사 김모(43) 부장 가족은 매주 토요일 오후를 ‘가족 모임의 시간’으로 정해 놓고 온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회사일이 워낙 바쁜데다 아이들도 커서 가족이 자리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짐에 따라 만들어낸 궁여지책이다.

이날만은 전가족이 모여 음악회나 연극·영화, 놀이공원 등에 함께 간 뒤 저녁식사를 하며 한주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들어 김부장 가족이 가장 애용하는 곳은 걸어서 5분 거리인 CGV강변11 극장. 이곳에는 11개의 스크린이 있어 가족마다 좋아하는 영화 프로를 고를 수 있어 제격이다. 김부장은 액션이나 공포 영화를, 중2인 큰 딸은 서정적인 멜로물이나 코믹물,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 아들은 SF 영화나 블록버스터류를 즐긴다.

김씨의 부인은 영화 감상 보다는 주로 지하 2층 대형 할인점에서 쇼핑을 하는 편이다. 지난주 막내 아들은 컴퓨터 게임기를 사겠다며 영화 대신 테크노마트 전자상가에서 쇼핑을 했다.

김씨 가족은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한 뒤 지하 1층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비록 반나절이지만 김부장과 가족에겐 가장 단란한 시간이다.


선택의 폭 넓어진 가족문화공간

불과 5~6년 전만 해도 한 가족이 매주 극장에 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 문화가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극장에서 한 영화만 상영하기 때문에 야한 성인물을 볼 수도, 그렇다고 매번 만화 영화나 건전 가족 영화만 골라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최근 10개 관이 넘는 초대형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극장은 단지 연인만이 아닌, 가족의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국내 극장가에 처음 복합관이 등장한 때는 1989년. 당시 단관이었던 서울극장이 3개 스크린을 가진 서울시네마타운으로 변신했고 강남에서는 5개 관을 가진 시네하우스라는 복합관이 처음 탄생, 멀티 스크린 극장의 첫 문을 열었다.

이후 1994년 명보극장이 단관에서 4개 관을 지닌 명보프라자로 바뀌었고 이어 녹색극장 시네코아 씨네플러스 등과 같은 멀티 스크린 극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런 붐에 편승, 허리우드와 중앙극장 같은 기존 극장도 1990년대 말 개보수를 통해 스크린 수를 늘려 준 멀티플렉스 기능을 갖추었다.

국내에 본격적인 멀티플랙스 극장의 시조는 1998년 4월 제일제당(CJ)과 홍콩 골든하베스트(Golden Harvest), 호주 빌리지로드쇼(Village Roadshow) 등 3개국 회사가 투자해 만든 CGV강변11이다.

중간에 골든하베스트가 지분을 내놓아 현재는 제일제당과 빌리지로드쇼가 운영하는데 지난해 12월 14개 상영관을 보유한 CGV인천14를 오픈한데 이어 올해 4월 분당에 CGV야탑8과 CGV오리11을, 5월에는 부산에 CGV서면12를 잇달아 오픈, 국내 멀티플렉스를 선도하고 있다.

또 올해 5월에는 케이블TV의 3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동양그룹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과 연결된 아셈타워 지하 2층에 단일 극장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인 6,500평, 4,336석 규모의 메가박스 씨네플렉스를 개관, 멀티플렉스 시장 경쟁에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

현재 국내에서 멀티플렉스라고 할 수 있는 극장은 CGV, 메가박스 외에 동대문에 있는 MMC 등 세 곳을 들 수 있다.


쾌적한 시설, 원스톱서비스 제공

멀티플렉스(Multiplex)는 기존의 멀티스크린 극장과는 다르다. 멀티스크린 극장이 단순히 상영관 숫자를 늘린 것이라면 멀티플렉스는 최소한 10개 이상의 다양한 상영관 외에도 쇼핑, 외식, 오락 등 원스톱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기능 극장이다.

가족이나 연인이 와서 하루종일 쇼핑에서 여가생활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멀티 레저 문화공간을 말한다.

멀티플렉스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제든 쾌적한 조건으로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15~20분 간격으로 다른 영화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특정 영화를 마음에 두지 않아도 상영 영화관을 몰라도, 오랜시간 기다리지 않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관람 여건도 비교할 수 없이 좋다.

최근 지어진 멀티플렉스는 앞 의자와의 높이 차가 35㎝나 되는 계단식으로 돼 있어 아무리 키 큰 사람이 앞에 앉아 있어도 전혀 시야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또 의자 간격도 국내 기준 85㎝ 보다 훨씬 긴 105㎝나 돼 다리를 꼬고 앉아도 될 만큼 여유가 있다.

극장 운영면에서도 선진화된 예약 시스템과 좌석 지정제 도입, 돌비 디지털 사운드와 서비스 데스크 설치 등의 다양한 관객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밖에도 넓은 주차시설, 식당가, 오락실, 쇼핑가 등 호텔에 준하는 시설 수준을 갖추고 있다.

메가박스의 이성훈 마케팀장은 “멀티플렉스는 극장 중심이던 기존의 극장 문화가 다양함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춰 관객 중심으로 옮겨가는 자연스런 한 형태”라며 “멀티플렉스는 가족이라는 잠재적 관객층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수요 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평균 20%~30% 객석점유율 기록

본래 극장의 관객 점유율은 대다수 극장이 공개적으로 밝히기 꺼려하는 부분이지만 멀티플렉스의 경우 평균 20~30% 정도의 점유율을 기록, 기존 극장 중에서도 가장 마케팅을 잘하는 서울극장 보다 높다.

대부분의 국내 극장이 평균 10% 관객 점유율도 못 올리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영화 홍보기획사인 올댓시네마의 권소영 팀장은 “다양한 영상 매체가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단지 영화만 보기 위해 극장에 올 사람은 극히 드물다”며 “이런 관객의 욕구를 재빨리 파악해 변화에 뛰어 들었다는 점에서 당분간 멀티플렉스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때 TV 인터넷 비디오 같은 ‘안방극장’의 급격한 보급으로 금방 사라져 버릴 것 같았던 극장 산업.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이런 벼랑 끝에 섰던 극장 산업이 토털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제공라는 변신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프라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눈여겨 봐야할 대목임에 틀림없다.


등급외 전용관 요구 커져

헌법재판소의 영화 검열 위헌 결정을 계기로 등급외 전용관 설치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연합뉴스가 최근 인터넷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와 미풍 양속 사이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등급외 전용관 도입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을 한 네티즌 3,269명중 83%인 2,698명이 “찬성한다”고 대답했다. 반대 의사를 표시한 네티즌은 525명(16%)이었으며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46(1%)명으로 집계됐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김혜준 정책실장은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는 한 상영금지 처분은 불가능하다”며 “성표현물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바로 등급외 전용관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14 10:56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