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MS 다음목표 신용카드사

신용카드업계의 거물 비자USA와 마스터카드 인터내셔널이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서 승리, 기세를 올린 미국 법무부의 다음 먹잇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6월12일부터 뉴욕시의 맨해턴 지방법원에서는 이 두 신용카드회사와, 1998년 10월 두 회사를 반독점법의 경쟁제한 금지규정 위반 혐의로 제소한 미 법무부측 사이에 팽팽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첫날 법정에는 MS에 대한 독점금지법 위반 소송에서 맹위를 떨쳤던 조엘 클라인 법무부 독점금지국장이 참석, 법무부의 의지를 과시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연간 1조3,000억 달러 규모, 5억매의 신용카드가 발행돼있는 미 신용카드 시장에서 7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아멕스 카드 및 옵티마 카드를 발행하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17%, 디스커버리 등 다른 카드사들이 나머지 시장을 나눠갖고 있다.

올 여름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미국 신용카드업계의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만약 법무부가 승소하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다른 신용카드 회사들이 시장을 잠식해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쟁업체 카드 취급 못하게 했다"

미 법무부는 이들 신용카드 회사가 담합, 가맹은행에 대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디스커버리 등 다른 경쟁업체의 신용카드 취급을 금지하는 동일 약관을 시행하는 등 경쟁을 제한,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비영리 조직인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8,500여개 회원 은행사가 멤버로 돼있으며 약관에 따라 회원 은행들은 비자와 마스터카드를 함께 취급할 수는 있으나 다른 카드는 발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법무부는 특히 거대은행들이 이 두 회사의 이사회나 중요 위원회의 멤버를 겸하고 있어 두 회사의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두 회사는 외관상으로는 별개의 회사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기업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법무부의 판단이다.

첫 심리가 열린 12일 법정에서 법무부측 멜빈 슈워즈 변호사는 이같은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슈워즈 변호사는 “비자와 마스터카드 두 회사가 광고를 통해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하는 묵계를 했다”면서 “가맹 은행들로 하여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디스커버리 등 경쟁카드를 취급하지 못하도록 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슈워즈 변호사는 “결국 소비자들이 경쟁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없어 손해를 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마스터 카드측의 캔 갈로 변호사는 “법무부의 일부 주장이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마스터카드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반박했다.

비자측의 로렌스 포포프스키 변호사도 “신용카드 업계는 경쟁이 극심한 시장 가운데 하나”라면서 “비자의 한 임원이 한때 마스터카드를 죽이는 것이 회사의 목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스마트카드 도입 포기가 담합 증거

14일 속개된 심리에서 법무부는 존 엘리오트 전 마스터카드 이사를 증인으로 내세워 마스터카드가 은행들의 반대로 ‘스마트 카드’ 도입을 포기한 사실을 담합의 증거로 들었다.

스마트 카드는 컴퓨터 칩을 내장, 개인 신용 상태와 자금상황을 즉시 알 수 있게 한 카드로 신용카드 거래를 승인하는 기능만을 가진 현재의 마그네틱 카드보다 한 세대 앞선 것. 이미 유럽 몇 개국에서 실용화해 있다.

1984~1989년 마스터카드에서 전산분야 책임자로 근무한 엘리오트는 “스마트 카드 도입이 1987년 이사회에서 은행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면서 “스마트 카드를 도입했더라면 마스터카드가 비자보다 2~3년 가량 앞설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마스터카드 이사회의 멤버인 은행들은 마스터카드가 비자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비자와 동시에 그 프로그램을 추진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스터 카드측은 “스마트 카드 계획이 기대 수익에 비해 비용이 너무 많아 보류됐다”고 반박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당시 컨설팅기업인 부즈앨런&해밀턴에 용역을 주어 스마트 카드 도입의 타당성을 검토했는데 부즈앨런은 1988년 스마트 카드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신용카드업계 시장쟁탈전 양상

재판이 진행될 수록 이번 재판에서 법무부편을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제3위 업체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는 사실이 분명해져 이번 재판이 신용카드업계의 시장 쟁탈전으로 비춰지고 있다.

비자측 변호사인 켈리 프레스타는 “엘리오트는 1996~1998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이사로 근무했다”면서 “이는 이번 재판의 목적이 미 정부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공조해 비자와 마스트 카드를 공략하는 데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비자와 마스터 카드측은 언론 등을 통해 이번 재판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로비로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두 회사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은행과 공동 보조를 맞추는데 실패해 시장점유율이 저조한 것을 법무부가 나서 고치려 하고 있다”면서 독점금지법이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자와 마스터 카드는 이번 재판과 별개로 월마트, 시어스 로벅 등 대형 유통점을 포함한 400만 소매상들부터 80억 달러 규모의 집단소송을 당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 소매상들은 이 두 회사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 신용카드보다 위험도가 낮은 데빗카드(은행 예금을 직접 인출·예금 할 수 있는 직불 카드) 거래에 신용카드 거래와 같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재판은 오는 11월 뉴욕에서 열린다.

이번 법무부 대 비자, 마스터 카드 재판은 사실상 미국의 결제제도를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미 신용카드 업계와 정부가 뒤섞여 일대 결전을 벌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경욱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20 21:24


남경욱 국제부 kwna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