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

분노한 소비자들, 대기업 횡포에 맞서

“레지던트가 일반으로 수술을 하면…. 불안한 마음에 특진을 신청했는데 6월10일 오늘 임신 사실을 알았습니다. 불임을 했는데 어떻게 임신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병원(춘천의 모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불임수술을 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동의서를 받은 의사가 수술시 불임수술을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을 수술팀에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6월10일 이영태. www.antimedical.com중에서)

“홍보책자에는 에쿠스 운운하면서 소비자를 현혹시켰지만 우리의 차 트라제에는 싸구려 쇼바만 장착된 상태이며 매칭이 되질 않아 쉴새없이 통통 소리에 운전자들은 정신이 없어집니다. 홍보책자와 똑같은 부품으로 장착을 원합니다.” (참고로 에쿠스는 1,177,000원 트라제 쇼바 20,900원) 차액:1,156,100원(www.antitrajet.com 현대의 사기행각 중에서)

“오전 강의를 듣고, L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그 회사 직원이 전부 모인다는 그곳에 갔습니다. 자석요 깔구자서 불치병 치유된 사람도 처음 보고, 한마디로 사이비 종교집단을 보는 것 같더군요.(중략) 다시 그 회사로 돌아왔죠.(중략) 건장한 남자가 들어왔어요. 우쒸, 두려웠습니다. 그 사람도 버티다 나가더군요.(중략) 친구와 둘이 있게 되었을 때, 교육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경비든 보따리든 다 필요없다. 나 너 더이상 안본다’.”(짧은 체험기, 지옥이 따로 없었다. 6월13일 blue. www.antipyramid.org중에서)


소비자 스스로 주권찾기에 나서

분노한 네티즌의 글이 인터넷 사이트에 넘쳐흐른다. 특정기업이나 제품, 서비스에 항의하는 소비자가 스스로 반대모임의 구심점이 될 ‘안티사이트’를 만들어 주권찾기에 나선 것이다.

특히 대기업의 횡포에 항의하다 지쳐 그만 두곤 했던 소비자들은 이제 안티사이트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그 힘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중이다. 일부에서는 상거래를 바꿀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항의 대상도 대기업 제품에서부터 병원, 통신망 사업자 등 30여개에 이른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안티사이트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 초였다. 포항제철로 넘어간 삼미특수강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복직 투쟁을 기존의 언론을 통해서는 더이상 홍보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사이버로 눈길을 돌리면서부터다.

포스코를 반대하는 사이트(antiposco.nodong.net) 개설을 주도했던 이동신(삼미특수강 해고근로자)씨는 “선진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안티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이트 개설을 추진했다”면서 “투쟁목적인 고용승계가 이뤄지더라도 포항제철에 대한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사이트를 계속 운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인구가 늘면서 안티사이트도 증가

그러나 안티사이트가 주목을 받은 것은 인터넷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10월25일 안티FUJI제록스사이트(www.antifuji.org)를 개설한 허인씨.

서울 서초구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그는 복사기의 유지보수 관리를 FUJI제록스측에 맡겼는데 우연한 기회에 FUJI제록스가 소비자를 기만, 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 FUJI의 횡포를 고발하기 위해 나섰다.

그는 “FUJI 제록스가 복사기의 소모품인 토너를 교체 공급할 때 ‘제록스 330ET’에 적합한 순정품 토너(정품가 52,000원)값을 받아가면서도 비정품 토너(2만원선)를 납품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자신의 복사기에 비정품 드럼이 설치돼 있었다는 것까지 확인한 뒤 “그동안 복사기가 왜 그렇게 자주 정비를 받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를 더욱 격분시킨 것은 계약을 맺은 대리점이 아니라 FUJI 제록스 본사의 태도였다. 본사측은 대리점과의 관계라며 책임 자체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인터넷 회사를 운영중인 윤희성씨. 그는 현대 자동차 미니밴 트라제XG를 샀으나 고장이 잦고 서비스 센터에서도 ‘부품이 없으니 다시 오라’는 등 현대측의 횡포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안티사이트(www.antihyundai.pe.kr)를 열었다.

그리고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소비자들을 하나로 묶어 관계 당국과 제조사에 압력을 행사, 일정한 목적을 달성했다. 사이버 소비자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트라제 부품 환불 운동을 펴고 있는 또하나의 사이트(www.antitrajet.com)를 운영중인 류정수씨는 정밀한 분석을 통해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다양하게 올려놓았다. 그가 파악한 소비자 불만사항은 30여가지. 류씨는 “일일이 지적하기도 힘들다”면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싸구려 후륜서스펜션 쇼바를 지적했다.


건전한 사이버 소비자 운동

이같은 안티 사이트에 대한 해당기업의 반응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이지만 당사자들은 선진국가로 가기 위한 지름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씨는 “외국의 유수한 기업에는 이미 여러개의 안티사이트가 개설돼 있고 기업도 이를 다음 제품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외에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여러 분야에서 안티사이트가 활성화돼 있다.

우리나라에 개설된 안티사이트 중 특이한 것은 안티코리아사이트 (www.antikorea.pe.kr). 한국의 부끄러운 뒷모습을 보여주는 웹매거진(웹진)을 지향하는 이 사이트는 6월14일자로 쓰레기장으로 변한 신촌의 밤거리를 보여주면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안티사이트중 가장 활성화한 곳은 안티피라미드(www.antipyramid.org)와 안티의료사이트(www.antimedical.com)다. 안티피라미드 사이트를 운영하는 안티피라미드 운동본부는 피라미드 판매에 대한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정미현 담당간사는 “버젓히 등록돼 있는 100여개의 다단계 회사가 저지르고 있는 반윤리적 행위를 고발하고 피라미드형 판매의 무서움을 사회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30여명의 운영진과 400여명의 회원이 이 사이트를 운영중이다.

안티메디칼 사이트는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부도덕한 의료기관 고발이 목적.

이 사이트는 “의료기관의 과실에 의한 사고라도 의료지식이 적은 환자의 입장에서 전문가 집단인 의료기관과 대항해서 싸우기는 불가능하다”고 전제, “의료 피해자의 고통을 분담하고 막강한 네티즌의 단결력으로 의료기관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문을 열었다”고 개설 목적을 밝혔다.

그러나 안티사이트를 개설의도와는 달리 삐딱하게 보는 시각도 적지않다. 대중의 이익을 겨냥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거나 경쟁기업의 신뢰도를 훼손하려는 악의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에서 사이버팀을 맡고 있는 김형완 사무처장은 “안티사이트 운동은 기본적으로 공급자 중심의 기존 상거래 문화를 바꾸는 사이버 소비자 운동의 시작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정확한 정보와 광범위한 정보 공유만이 부정적인 시각을 일축하고 안티사이트 운동을 정착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06/2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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