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꽁꽁 언 자금시장, 부도대란 오나

적어도 주식시장에 관한 한 남북 정상회담은 신기루였다. 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그동안 억압당했던 악재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듯 터져나왔고 주가는 참담하게 거꾸러졌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주말에 허겁지겁 10조원 규모의 채권 전용펀드 조성, 단기 신탁상품 허용, 회사채 부분보증제 등 자금시장 안정대책을 내놨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특히 6월1~15일중 삼성전자를 7,000억원 이상 순매수했던 외국인이 16일 돌연 1,600여억원 어치를 순매도하는 등 보름만에 팔자로 돌아서고, 뉴욕증시도 약세를 면치못해 장세전망을 한층 어둡게하고 있다. 정상회담 주가를 잔뜩 기대하던 개미들은 또한번 통한을 씹고 있다.


중견기업 부도설, 신용경색 가중

최대요인은 쌍용 등 2~3개 중견기업의 부도설로 표현되는 자금시장 마비다. 이헌재 재경부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은 “최근의 신용경색은 몇가지 불안감 때문에 일시적으로 돈이 돌지않는 마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쌍용 등의 자금사정이 알려진 것만큼 나쁘지않다”고 시장을 달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의 자금 관계자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고, 자금시장의 애로요인도 그만큼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실제 삼성 LG SK 등 일부 대기업의 우량 계열사 20여개를 제외하고는, 회사채 신규발행과 차환, 기업어음(CP) 발행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작금의 자금경색이 단지 몇개의 한계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도(不渡)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증(重症)이라는 것이다.

전망은? 한마디로 어둡다. 6월말까지 추가 부실채권을 완전 노출시킨 뒤 2차 은행 빅뱅을 맞아야하는 은행권은 생존 차원에서 BIS 비율을 무조건 올려야 한다.

투신권도 아직은 살얼음판이다. 공적 자금으로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의 부실문제는 표면적으로 해소됐으나 신탁계정에서의 자금이탈이 계속돼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다. 종금사의 만성적 부실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요컨대 모두 제 코가 석자여서 기업의 핵심 자금줄인 회사채 차환과 CP 연장(리볼빙)을 해줄 여력과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금융권의 선처만 기대하며 손을 놓고 있다가는 금융부문이 실물부문까지 삼켜버리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은의 지급준비율을 낮춰 은행으로 몰려드는 수십조원의 돈이 기업으로 흘러가는 통로를 열어주고 중견·중소기업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에 대한 신용보증기금등의 부분보증을 확대하는 처방은 한 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실 기업 및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처리방침을 확고히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지않는 한 금융 및 자금시장의 불안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며 “일시적 시장충격을 우려해 퇴출원칙을 지키지 않고 부실부문을 연명시킨다면 제2의 파국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 주목되는 시점이다.


주가, 외국인 동향따라 급등락 예상

금주 주가는 정부의 자금시장 안정책에 대해 외국인과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급등락을 거듭할 전망이다. 애널리스트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20일 이동평균선인 740선에서의 반등 여부.

호재로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조치 완화로 표현되는 대북특수가 있고 악재로는 투신사의 100억원 이상 펀드 부실공개 등이 있다. 하지만 만성적인 수급 불균형과 주도주 부재현상이 해소되지 않아 혼조세를 면키 어렵다는게 대부분 전문가의 지적이다.

26일로 예정된 대우자동차 인수제안서 제출시한을 앞두고 현대자동차가 24일 이사회를 열어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문제를 최종 결정한다. 이로써 GM, 포드, 현대-다임러크라이슬러의 신경전이 불을 뿜을 것으로 보이며 세계 자동차시장도 격변에 휩싸일 전망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환호와 기대도 잠시,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료계의 폐업사태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경제상황도 먹구름이다. 의약분업, 채권시가 평가제 실시 등 6월말과 7월초에 걸쳐 새롭게 변하는 경제·사회적 환경도 많다. 금융권 짝짓기도 가부간 결론을 내야한다.

이유식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0/06/20 23:11


주간한국